황학동 서울중앙시장 옥경이네건생선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고 싶었다. 껌은 턱이 아프고 허탈해서 싫고, 뭔가 가치있는 씹을거리가 필요했다. 이럴때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에 생각을 하다보니, 그 집이 떠올랐다. 신당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서울중앙시장에 내린다. 시장 안으로 들어오니, 저만치 옥경이네건생선이 보인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세상이 내맘같지 않다는 거 알게 된 날, 하루종일 허탈했다. 마음의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온다. 차가운 커피를 마셔도, 얼음물을 마셔도 소용이 없다. 이럴때는 알콜에게 의지(?)를 해야 하기에, 질겅질겅 씹을 수 있는 안주거리를 찾아 서울중앙시장에 있는 옥경이네건생선에 왔다.
오후 1시에 오픈을 하고 브레이크타임은 없다. 고로 낮술이 그리고 혼술도 가능하다. 벽면에 맛깔난 사진들이 가득이다. 하나씩 다 먹어보고 싶지만, 추가주문을 하지 않는 한 올때마다 주문은 동일하다.
작년 7월에 왔을때에 비해 가격이 올랐다.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이곳을 처음 왔을때도 메뉴는 언제나 갑오징어 구이다. 혼밥(술)이니 갑오징어 소(23,000원에서 29,000원으로 인상)를 주문했다.
지난번에는 시원한 콩나물국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달한 배추를 넣은 슴슴한 된장국이다. 가스버너가 같이 나왔다는 건, 끓여서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된장국 옆으로는 아삭한 상추대나물과 곰삭은 듯 겁나 잘익은 갓김치 그리고 고사리나물이다.
갑오징어 구이는 옥경이네건생선의 시그니처 메뉴라 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듯 주인(?)을 기다리는 갑오징어가 겁나 많다. 대, 중, 소에서 소는 몸통 2개와 다리 하나다. 가격에 비해 양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퀄리티를 보면 바로 수긍이 된다. 참, 갑오징어 원산지는 100% 국내산이며, 주인장에게 허락은 받은 후에 촬영을 했다.
엄청난 두께를 봐라~ 갑오징어 맛에 빠지면 그냥 오징어는 주면 먹어도 내돈내산은 안하게 된다. 같은 오징어인데 갑이 붙었다고 퀄리티가 이렇게나 달라지나 싶다. 오동통한 두께라 질길거라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두께와 달리 식감은 연하고 부드럽다.
누군가를 씹는 대신 갑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면 되고, 여기에 녹색이를 더하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싹 씻겨 내려갈 거다. 요즘 너를 멀리하고 있지만, 지금은 너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 "캬~ 그래 이맛이다."
그냥 먹어도 담백하니 좋지만, 갑오징어구이의 화룡점정은 마약소스라고 부르고 싶은 청양마요네즈간장소스다. 청양고추가 마요네즈의 느끼함을 잡고, 여기에 간장을 더하니 짭조름한 맛이 살아난다. 과하게 짜지 않으니 소스를 듬뿍 찍어서 먹어야 한다. 매콤함이 입안을 스치는데 이게 또 매력이다.
굳이 반찬을 더할 필요는 없는데, 곰삭은 듯 푹익은 갓김치와 갑오징어는 은근 궁합이 맞다. 고추의 매운맛과는 또다른 갓김치의 알싸함이 갑오징어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몸통은 연하고 부드럽다면, 다리는 쫄깃하고 부드럽다. 갑오징어의 사촌은 한치인가? 오동통한 다리는 맞는데, 길이는 한치처럼 짧다. 다리나 몸통이나 감칠맛은 엄청나다.
청양마요간장소스를 리필하면서 공깃밥을 추가한다. 밥에 슴슴한 된장국이나 고사리나물을 더해 먹어도 되지만, 갑오징어 초밥(혹은 덮밥)이 먹고 싶다. 소스가 중독성이 강한데 계속 먹다보면 매운맛이 올라온다. 이럴때 흰밥을 깔고 소스를 올리고, 갑오징어를 살포시 덮는다. 치킨마요덮밥을 즐겨먹지 않지만, 갑오징어마요덮밥은 놓칠 수가 없는 별미다.
김치에 밥이 빠지면 서운한 법, 고로 따끈따끈한 밥에 갓김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충분히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지만, 일부러 조금 남긴다. 코시국 전에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야금야금 먹으면서 갔는데, 지금은 꾹 참았다가 집에 도착한 후 꺼내서 먹었다. 옥경이네건생선에 갈때는 많이 우울했는데, 씹고 마시면서 스트레스가 풀렸나 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마음이 또 답답해지면 질겅질겅 씹으러 가야겠다.
2020.07.20 - 갑오징어구이는 필수 민어구이는 선택 황학동 옥경이네건생선
2019.11.25 - 황학동 옥경이네건생선 우럭젓국 그리고 갑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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