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예박물관 전시2동 자연에서 공예로
빗살무늬토기도 공예라 할 수 있을까? 빗살 무늬가 들어 갔으니, 공예로 봐야할 것이다. 인류와 함께 공예는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그때를 빛낸 공예 작품을 만나러 서울공예박물관 전시2동에 도착했다.
관람은 순서대로 전시1동부터 했지만, 시간대는 전시2동이 먼저다. 인류 역사는 공예 발전의 역사이다. 인류는 돌, 흙, 나무 등 자연 소재를 가공하는 도구를 발명하고 기술을 개발해 환경의 제약을 극복해왔다. 아울러 일상생활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꾸리며 문명의 토대를 세웠다. 고대에서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주요 공예 소재와 장인들을 관리해왔다.
청동기 시대부터 제작된 금속기들은 그것을 가진 자에게는 권력과 풍요를, 못 가진 자들에게는 복종과 죽음을 안겨주었다. 특히 고대 국가 성립 이후 장인들이 제작한 동검과 동경 금관과 귀걸이 등의 금속공예품들은 계급과 신분을 보다 명확히 구분하고 드러내줬다.
고려시대 영국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에 1573년 조선의 유학자 조광조를 기리는 도봉서원이 세워졌다. 2012년 서원 터를 발굴하던 중 땅 밑에서 총 79점의 영국사 관련 금속공예품이 출토됐다. 대부분 11~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청되며, 고려시대의 세련된 금속 제작 기술을 보여주는 한편,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와 불교에서 유교로의 변화를 상징한다.
금강령은 사찰에서 맑은 소리로 인간의 마음을 정화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용도로 쓰였다. 금강저는 수행자의 번뇌를 깨뜨린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 석굴암의 석가모니불을 수호하고 있는 제석천이 왼손에 들오 있는 것이 바로 금강저이다.
고려시대에는 왕실뿐만 아니라 사찰과 일반인들 사이에 향 문화가 널리 유행했다. 왕실과 사찰에서는 국가 행사와 종교 의례 시법식에 따라 향로를 비치했다. 남성들은 박산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옷에 스미게 해 옷감을 보존하고, 여성은 향주머니를 많이 가질 수록 귀한 사람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신석기시대 이후 인류는 흙과 불을 다루는 기술을 발전시켜 토기에서 도기로, 다시 도기에서 자기로 그릇의 강도를 높여갔다. 도자기공예는 흙과 불로 역사와 예술을 창조한 것이다.
매병이라 불리는 이 기형을 고려때는 준이라고 불렀다. 매병은 감상용 혹은 꿀 기름 등을 담는 실용용기로 사용됐다. 몸 전체에 검은색 흙과 흰 흙을 태토에 박아서 학과 구름 무늬를 표현하고, 입구는 음각으로, 아래 부분은 상감으로 번개 부늬 띠를 둘렀다. 청자상감 구름과 학 무늬 매병은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전반 부안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청자의 장식 문양에는 학과 구름, 능수버들과 오리, 연꽃과 국화 모란 등의 꽃, 앵무새, 여의두, 번개무늬, 구슬이음무늬, 연리문 등이 있다.
빗살무의 토기가 청자매병이 되기까지 만여년이 걸렸다. 신선기시대에 인류는 토기를 만들어 잉여농산물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빗살무늬, 물결무늬, 융기무늬 등을 토기에 새기고 700~850℃ 온도에서 굽는 등 오늘날 공예의 기초가 되는 제작활동이 이루어졌다.
고려시대 금속과 도자기 공예를 지나, 오색찬란함을 재현한 나전칠기 목칠공예로 이어진다.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옻칠 사용의 흔적은 기원전 6~5세기에 제작된 요령식 동검 칼집에서 찾을 수 있다. 옻칠된 공예품들은 주로 국가와 왕실의 중대사에 사용됐으며, 역대 왕조는 전담관부를 설치해 옻나무 재배지와 옻칠 장인의 활동을 관리했다.
나전은 칠기에 자개를 붙여 문양을 표현하는 장식기법이다. 나전칠기가 활짝 꽃피운 것은 고려시대다. 고종31년 원 황후가 나전경함을 요청하자 고려에서 전함조성도감이라는 기구를 설치했다고 한다. 나전칠기를 제작할 때 칠을 입히고 갈아내는 일은 수 십 단계로 세분화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과 시간을 요구한다.
고려 나전칠 중 진수로 평가받는 보물 제1975호 나전경함의 제작 비법을 밝히고자 이를 재현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과정이 전시되어 있다. 1단계는 백골짜기로 잣나무를 도안에 맞게 재단한 후 부재 사이에 야교를 발라 부착한다.
나무를 가공해 상자, 가구 등 소품을 만드는 장인을 소목장이라 한다. 소목장은 백년 이상 자란 잣나무(홍송)을 오랜 기간 건조시키고 잘라 판재를 만들고 이를 짜맞추어 나전경함의 뼈대가 디는 백골을 제작한다.
왼쪽부터 2단계는 초질하기로, 옻칠과 송정유를 섞은 것(초칠)을 귀얄로 발라 백골 구석구석에 스며들게 한다. 3단계는 초칠 후 눈 메우기로, 나무의 결이나 나이테 등에 나타나는 패인 곳, 즉 눈매에 토분과 옻칠을 섞은 것(토회칠)을 주걱으로 엷게 발라 백골의 표면을 매끈하게 한다.
4단계는 베 바르기로, 함의 각 면 크기에 맞게 삼베를 재단한 후 옻칠에 찹쌀풀을 섞은 접착액(호칠)으로 기면에 붙인다. 나무 건조에 따른 뒤틈림을 방지하고 기면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옻칠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 주로 생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주산 옻칠이 가장 품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옻칠을 할때는 채취 후 불순물만 거른 생칠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제작 단계마다 옻칠에 송정유, 토분, 쌀풀 등을 혼합해 쓰기도 한다. 삼베는 옻칠 작업 중 나무가 터지거나 뒤틀리지 않게 하기 위해 칠기 전체에 발라진다.
왼쪽부터 5단계는 베 바르기 후 생칠로, 삼베를 바른 면 위에 옻칠과 송정유를 섞은 것(초칠)을 한 번 더 발라 견고하게 한다. 6단계는 생칠 후 토회칠로, 함 표면에 삼베를 붙이고 초칠을 바른 것 위에 토분과 옻칠을 섞은 것(토회칠)을 한 번 더 바른다. 7단계는 숫돌 갈기 후 생칠로, 토회칠로 바른 면을 숫돌로 매끈하게 다듬은 후 초칠을 한 번 더 바른다.
옻칠 채취는 6월 초부터 10월말까지 이루어진다. 그 시기와 방법에 따라 초칠, 성칠, 말칠, 뒷칠, 지칠, 화칠 등으로 나뉜다. 이 중 한여름에 채취되는 성칠의 품질이 가장 우수하다.
8단계는 금속선 감입으로, 황동선 두개를 꼬아 만든 금속선을 함 표면에 박아 넣어 장식한다. 9단계는 자개 붙이기로, 실톱으로 문양에 맞춰 세세하게 오린 자개를 아교로 함 표면에 붙여 장식한다.
전복, 조개 등의 껍데기를 갈아 오리고 끊어 문양을 만들고 이를 칠기에 붙이는 일을 하는 장인을 나전장이라 한다. 나전경함 제작 시 문양을 오리는 데에만 1년 이상 걸렸으며, 문양 개수는 모란넝쿨 무늬 426개, 귀갑 속 꽃 무늬 540개, 사슬 무늬 801개에 달한다.
조선시대까지는 제주나 통영의 자연산 전복을 가공한 색패가 주로 사용됐다. 일제강점기에 외국산 패가 수입되기 시작해 현재는 일본, 중국, 타이완, 멕시코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어 국내산 색패와 함께 나전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두석은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황동의 옛말이다. 두석장은 금속 합금과 장석 제작을 담당하는 장인이다. 나전경함 재현 작업에서는 옻칠과 나전 장식까지 마친 함에 앞바탕, 들쇠, 경첩 등 장석을 제작해 경함에 부착하는 마지막 작업을 당당했다.
앞바탕(사진 속 중앙)은 함의 여닫는 부분 옆면에 붙이는 장석, 경첩(왼쪽 앞바탕 아래)은 함을 여닫을 수 있도록 뚜껑과 물체를 연결하는 장석, 들쇠(앞바탕 좌우)는 함의 옆면에 위치해 운반하기 쉽게 손잡이 역할을 한다.
황동은 구리와 아연의 합금이다. 아연의 비율에 따라 그 색깔이 바뀐다. 전형적인 노란색의 황동은 구리 70%, 아연 30%로 구성된다.
도구는 장인의 손발과 같고 오랜 제작 과정을 함께 하는 장인의 삶의 일부이다. 오른쪽부터 소목장, 칠장, 나전장 그리고 두석장 도구다.
나전경함은 불교경전을 담던 함으로 현재 전세계적으로 9점만 남아있다. 잣나무로 만든 함에 전북을 얇게 간 나전으로 모란꽃 등의 작은 문양들을 표현했고 옻칠을 했다. 전시된 나전 모란넝쿨 무늬 경함은 김의용, 손대현, 정맹채, 박문열 장인의 작품이다.
돌, 흙, 나무, 불은 흔하디 흔한 소재인데, 장인의 손을 거쳐 광석은 금속공예로, 흑은 토기를 거쳐 청자와 백자로, 나무와 전복 껍데기는 나전칠기 등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소유하고 싶다기 보다는 우리 선조들의 위대함에 존경과 존중을 표할 뿐이다.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으로 갑니다~
2022.03.17 -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서울공예박물관
2022.03.01 -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서울공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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