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예박물관 전시1동 조선시대
조선은 개국 초기 중앙집권국가로서 법률을 통해 장인들을 관리하고 국가 의례에 필요한 공예품을 제작해 국가로서의 기틀과 품격을 갖췄다. 장인은 왕실뿐 아니라 민간에서 필요한 의식주와 관련된 다양한 일상용품도 제작해 국가 운영의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장인들은 전문성에 기반한 분업과 협업 체계를 형성하고 국가가 정한 제작기준에 따라 물품을 만들었다.
"장인은 자신의 힘을 들여 온 세상이 사용토록 이롭게 하니 그 공이 큽니다." (중종실록 47권) 경국대전은 중앙 관부에 129개 분야, 총 2841명의 경공장이, 지방 관부에 27개 분야, 총 3656명의 외공장이 속하도록 규정했다. 이러한 공장제는 16~17세기 일본, 중국과의 전쟁을 겪으며 느슨해졌고, 19세기 말에 이르면 해체되기에 이른다.
자유롭게 물품을 제작, 판매하는 사장이 늘어나고 지역 특성, 개인의 신분 재력 개성 등이 반영된 다양한 일상기물들이 제작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장인들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기술과 도구를 개량하고 새로운 양식과 문양, 유행을 만들었다.
조선시대에는 왕비, 왕세자, 왕세손 등을 책봉하거나 왕, 왕비, 세자, 후궁 등에게 특별한 이름(존호나 시호)을 올릴 때 그 사실이 담긴 기록물, 즉 어책이 제작됐다. 왕과 왕비는 옥으로 제작되어 옥책이며 왕세자와 후궁은 대나무로 만들어져 죽책이라고 했다.
어책은 그 시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남녀 장인들 100명 이상이 최고의 재료를 국가로부터 제공받아 재료의 가공부터 마지막 기물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긴밀한 협업을 통해 제작하는 최고 수준의 왕실 공예품이다.
화각함은 소뿔을 아주 얇게 저며 네모난 각지를 만들고, 그 뒷면에 그림을 그린 후 이를 나무로 만든함 표면에 붙여 장식한 것이다. 화각 기법으로 제작된 목가구들은 소재 자체가 희귀하고 공도 까다로워 주로 왕실이나 상류층이 사용했다.
이 화각함에는 기린, 학, 사슴, 거북, 소나무, 영지, 모란, 바위 등 불로장생과 부귀 등을 상징하는 각종 동식물과 자연물이 문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함 앞바탕의 장석 등에 조이질로 문양을 표현한 금속 장식기법은 왕실에서 제작된 작품들에서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복식은 착용하는 사람의 위계와 신분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복식을 포함한 왕실 공예품을 제작하던 관부는 상의원으로, 조선전기에는 비단 짜기, 바느질, 금박, 자수 등 복식 제작과 관련된 장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사진 오른쪽부터, 오조룡 왕비 보는 왕비의 초록색 원삼이나 당의의 가슴과 등 두 어깨에 부착해 장식하던 둥근 천이다. 당의는 조선시대 왕비가 평상시에 입던 옷으로 두 어깨, 가슴, 등 부분에는 발톱 다섯 개인 용이 수놓인 보가 붙여져 있다. 그리고 소매 끝에 남색의 끝동을 단 분홍색 저고리이다.
전행 웃치마는 조선의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대한제국의 황후나 황태자비가 예복인 적의나 원삼 안 대란 치마 위에 입던 치마이다. 앞의 1자락과 뒤의 2자락을 따로 만들어 하나의 허리 말기에 붙이고, 스란단에는 본에 따라 금박으로 용과 구름 무늬를 표현했다.
분청사기는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제작된 자기이다. 흙에 백토를 발라 문양을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 등장해 세종연간에 절정을 이룬 후 15세기 후반부터 쇠퇴했다.
15세기 중반, 국영 자기 생산 기지라고 할 수 있는 분원이 광주에 처음 설립되어, 400년 이상 유지됐다. 분원은 왕실 요리와 왕실용 자기의 제작을 담당하던 관천인 사옹원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조선만의 특징적인 백자와 청화백자가 본격적으로 제작되어 왕실과 관부에 납품됐다.
조선시대에는 가구 하나를 제작함에 있어서도 소목장을 집으로 불러 가옥과 방의 규모, 재력, 용도, 주인의 취향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만들도록 하는 주문 제작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풍조는 주로 사대부 집안에서 나타났다.
유교사회의 각종 제약 아래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은 오늘날 관점에서 볼 때 공예 제작사인 동시에 항유자였다. 나전, 화각, 대모 등 고급 재료를 사용한 침선구를 이용해 부귀영화, 불로장생 등 자신들의 염원을 담은 각종 생활용 자수 작품을 직접 만들었다.
조선 말기 왕실 화원인 채용신이 항일의병운동에 참여한 오계엽을 그린 그림이다. 녹색 단령을 입고 머리에는 사모를 쓰고, 부채를 두 손에 든 채 등메 위 의자에 앉아 있는 오계엽의 모습과 조선 말기 사대부들이 사용해 멋을 내던 일상 기물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 농업 생산성 확대와 상공업의 발달로 민간에서도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계층이 나타났다. 이 무렵 관청에 속하지 않고 활동하는 장인이 등장했는데 이들을 사장이라 불렀다. 이런 변화로 인해 사대부 이상 계층에 한정되던 고급품의 소비가 민간으로 확대되었다. 엄격한 규율에 따라 양식에 맞추어 제작되던 왕실 의례품과 달리 민간 소비자의 수요와 취향이 반영된 새로운 물품 제작양식이 등장했다.
받닫이와 소반은 값비싼 장이나 농과 달리 지역과 귀천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집에서 가지고 있던 대표적인 일상 가구이다. 받닫이는 다용도의 수납가구로, 소반은 임진왜란 이후 온돌의 보급으로 좌식 생활이 확산되면서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사람당 하나씩 놓고 식사를 했기에 그 수요가 많았다.
나전칠기는 조선 전기까지 중앙 관청인 공조와 상의원에 속한 극소수의 나전장이 중국으로의 외교 선물이나 왕실에서 사용될 의례용 기물에 한해 제작했다. 17세기 후반 이후 나전칠기 제작 환경과 양식은 크게 변화한다. 왕실차원에서 사치가 금기시되면서 나전장의 활동지는 통영이나 전주 등 지방으로 옮겨지고, 그 신분도 개인 제작자인 사장으로 바뀐다.
1879년 개항 이후 조선은 밀려드는 서구의 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 시기, 사회 전반에 나타난 근대화의 흐름과 함께 전통 방식의 수공예가 쇠퇴했고, 오히려 공예가 산업 기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재일기는 지규식의 일기이다. 그는 평민 신분으로 1883년부터 분원공소의 공인으로 일을 했다. 1891년부터 1911년까지 약 20개월 7개월 동안의 일기는 근대 사회로 전환해 가는 조선의 모습과 격변하는 도자공예의 현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분원공소에서 진상한 도자기는 궁궐의 수라간, 운현궁 등에서 사용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진상품의 수량이 늘고,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분원공소의 경영난이 가중됐다. 분원은 15세기 후반 경기도 광주에 설치된 이래 민영화되는 1883년까지 명실상부한 조선의 왕실 관요로서 자리매김해 왔다.
"지금 전국에 상업과 공업은 다 타국 사람에게 빼앗겼는데 입는 것과 쓰는 것이 다 외국의 물건이다. 밥 담아 먹는 그릇까지도 외국 것을 쓰니..." 독립신문 1897년 8월 7일
대한제국은 전통 공예의 가치를 재인식함으로써 전통 공예를 부흥시키고 공예의 산업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근대적 교육기관과 미술공장을 설립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공예품에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었던 대한제국의 노력이 담겨있다.
대한제국은 공예 기술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장인을 양성하기 위해 1907년 근대식 공예 교육기관인 관립 공업전습소를 설립했다. 경공장의 해체로 흩어진 장인들을 모아 전통 공예의 진흥을 위해 1908년에는 한성미술품제작소를 설립했다.
은제 오얏꽃무늬 발. 한성미술품제작소에서 제작. 오얏꽃은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이다. 고종 황제는 자주적인 강대국을 만들기 위해 외국에 사전단을 파견해 선진 문물을 견학하게 했다. 파리 만국박람회에는 독립관을 설치해 도자기, 나전칠기, 비단, 금속공예품 등을 출품하기도 했다. 그의 바람처럼 자주적인 강대국이 됐으면...
일제강점기 공예품은 관광 상품으로 주목받으면서 자본가들이 공예품의 제작과 판매에 참여했고, 백화점이나 상점을 통해 유통되었다. 상표나 고유 마트가 일반화되는 등 본격적인 산업공예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흙, 광석, 나무, 조개 등 흔한 재료가 장인의 손을 거치면 엄청난 공예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이듯, 공예는 세상을 좀더 이롭게, 좀더 아름답게 만들어 왔다.
2022.03.10 - 장인, 공예의 전통을 만들다 서울공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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