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 한중문화관 & 화교역사관
인천역에 내리면 건너편에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패루가 있다. 140년 전 중국 상인들이 배를 타고 인천항에 발을 내딛은 것으로부터 한국 화교 역사는 시작됐다고 한다. 그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알 수 있는 곳 한중문화관과 인천화교역사관이다.
중국풍 건축양식으로 지은 한중문화관은 한국와 중국의 문화예술 교류를 목적으로, 국내 최초 최대의 화교촌인 인천 차이나타운 입구에 건립한 문화공간이다. 중국을 방문하지 않고도 중국의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와 중국의 교류전 지역예술인의 문화 예술활동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주제의 전시가 있는 곳이다.
중국 은괴의 화폐기능은 한나라 이전부터 시작되는데 당나라때는 은병, 송금시대에는 은정 그리고 원나라시대에는 원보(원나라보물)라고 불렀다.
인천광역시 중구는 중국과의 교류에 있어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곳이다. 1884년 지금의 차이나타운 자리가 청국조계지로 설정되면서 정착하기 시작한 화교들은 한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교촌을 이루고 100년이 넘도록 이곳을 지켜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중구는 1996년 요녕성 반금시와 최초로 자매우호도시 협약을 맺은 후, 중국의 여러 도시와 지속적으로 적극적인 우호교류 협력관계를 만들어 왔다. 한중문화관의 우호도시홍보관은 이들 도시로부터 기증받은 지역 예술품을 토대로 두 지역 간의 활발한 문화교류상을 전시하고 있다.
위에 있는 건, 명 청시대 유물로 청와연화사발(명), 청화파초무늬 도자기(청)이다. 왼쪽은 송나라 시대 꽃모양 접시, 꽃무늬 작은사발, 청색 꽃무늬 사발이며, 오른쪽은 청백유온주주자로 송나라 시대 술을 담는 주전자로 표면에 파르스름한 색이 도는 청백색의 청백유악을 바른 도자이다.
고강자기식기다. 중국의 도자기를 서양인들은 차이나라고 불렀는데, 서양식 도자기는 소뼈를 첨가했다고 해 본 차이나(Bone China)라고 불렀다.
내화예술은 청나라 제11대 황제인 광서 16년에 중국 산동성 치박시 박산구에서 전해지기 시작한 문화다. 내화예술이 표현된 내화유리병은 특별히 제작한 가느다란 변형 붓으로 입구가 아주 작은 병안에 산수화초, 인물, 새와 짐승 등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기에, 30분 정도 작업한 후에는 눈이 아파서 휴식을 취해야 하며, 하루에 2~3시간 정도밖에 작업을 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리산과 크기가 비슷한 태산은 중국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중국인에게 태산은 하나의 산으로서가 아니라 신앙과 믿음을 주는 영적인 산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때문에 중국의 제왕들도 태산에 올라 봉선제사를 지내야만 진정한 제왕으로 간주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한중문화전시관은 중국의 역사, 문화, 경제, 사회, 생활상을 소개하고 한중 문화교류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중국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 5대 황제 옹정제, 6대 황제 건륭제 모형이다.
진시황릉 2호 마차는 진시황이 전국을 순행할 때 타는 마차다. 길이는 3.17m, 높이 1.06m, 총 중량 1.214kg으로 3,462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청동재질의 부품은 1,742개, 황금 재질은 737개, 은 재질은 983개이다. 설계와 제작 모두 현대의 기술과 놀랄 정도로 유사한데, 마차의 문과 앞창에 사용된 경첩의 형태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경첩과 매우 유사하다.
화교역사관으로 가는 연결통로에서 만난 진시황릉 1호 청동마차다. 1호 마차는 입차라 하고, 고차 또는 융차라고도 불리우는 서서 모는 호위마차이다. 바퀴 2개, 수레 1개로 구성되어 4마리의 말이 끄는 구조이며, 청동우산이 세워져 있고 청동우산 아래에는 청동어관용이 서 있는 모습이다. 규격은 실제 마차의 1/2이다.
화교역사관은 인천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130년 간 이 자리를 지켜온 인천 화교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화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82년으로, 임오군란때 한국에 파견된 군대를 따라 40여명의 상인이 입국했는데, 이들이 한국화교의 시초이다.
인천에서 출발해 덕적도와 웅진반도를 거쳐 중국 산동반도의 동주에 이르는 항로는 2~3일 정도에 횡단할 수 있는 가장 짧은 거리로, 제주도보다 가깝다. 개항이 있기 훨씬 전, 백제나 고려시대에도 인천 지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중요한 관문이었다.
싼바다오는 채(식칼), 전도(재단칼), 체도(면도칼)의 세종류 칼로 각각 요리, 재봉, 이발 기술을 의미한다. 노동자로 왔다가 돈을 조금 모은 사람들은 이 업종에서 더 안정적이고, 수입 좋은 일자리를 찾았다. 무역상을 하다가 일본 상인에게 밀려 망한 사람들도 이 업종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다고 한다.
화교는 왜 인천으로 모였을까? 1883년 인천과 상하이의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1달에 한번 배가 들어오는 상황을 계기로 인천에 중국인들이 내항했다. 1년 뒤 선린동 일대의 구릉지대 약 5천평 규모의 청국 조계가 설정되면서 화교의 이주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다 1900년 의화단의 북청사변으로 산동성 일대가 전란에 휘말리자 이 일대 중국인들이 피난차 가까운 한국으로 대거 건너왔다. 주로 인천을 자신들의 집결지로 삼았기 때문에 인천은 부지불식간에 화교들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서울과 함께 화교들의 양대 세력권이 되었다.
한중문화축제는 한중 수교 10주년을 맞아 차이나타운의 활성화, 양국의 우호증진 등을 위해 2002년부터 열렸다. 중국의 3대 명절(춘절, 노동절, 국경절) 중 하나인 노동절(4월 30일~5월 2일)에 맞춰 개최되며, 행사기간 동안 차이나타운에서는 중국 문화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전통공연 등의 다양항 행사들이 진행된다.
한중문화관에서 화교역사관까지 대륙답게 볼거리가 넘쳐난다. 인천 중구는 중국과 우호도시를 많이 체결했다는 것과 차이나타운 및 화교에 대해 몰랐던 역사를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자연스럽게~ 짜장면 박물관으로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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