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동 광화문미진 본점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으면, 차갑게 먹어야 하는 음식도 있다. 그리고 뜨겁거나 차갑거나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먹어도 좋은 음식이 있다. 냉메밀, 온메밀이 있기에 멀티인 줄 알았는데, 메밀국수는 차갑게 먹어야 한다. 온메밀을 먹고 나니 더 확실해졌다. 청진동에 있는 광화문미진 본점이다.
비도 오고 그래서 메밀국수 생각이 났다. 늘 시원하게 판메밀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날씨땜에 뜨끈한 온메밀이 먹고 싶어졌다. 브레이크 타임이 없어 바쁜 점심시간을 피해서 도착을 했다. 덕수궁 근처에 있는 유림면도 메밀국수가 있지만, 거기보다는 여기를 더 자주 찾는다. 이유는 개인취향이랄까!
밖에 있는 명패는 가짜, 진짜는 카운터 옆에 있다. SINCE 1954. 미진은 청진동에서 개업을 하고 3대째 이어가고 있는 메밀 전문식당이다. 대대로 이어져 오는 조리법으로 우려낸 육수에 미진만의 특별한 배합으로 뽑아낸 면을 담아 내는 메밀국수는 담백한 육수와 은은한 메일향이 감도는 부드럽고 쫄깃한 면이 특징이라고 아래 안내문에 나와 있다.
늦은 오후는 혼밥하기 좋은 시간이다. 2층도 있지만, 1층에 자리가 많은데 굳이 올라갈 필요는 없다. 코로나19 시국이라 일반컵이 아니라 종이컵이다. 종이컵을 안쓰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물은 마시지 않는다. 물대신 뜨끈한 육수를 마시면 되니깐.
미진에 오면 언제나 그러하듯 냉메밀(판메밀)을 주문했지만, 블로거이니 새로움에 도전을 해야 하고, 선선해진 날씨로 인해 냉보다는 온이 끌린다. "온메밀(9,000원)과 메밀전병(6,000원) 주세요." 직원 왈, 메밀전병은 2줄이 나오는데 한줄만 주문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한줄(3,000원)만 주세요."
기본찬은 열무김치와 단무지뿐이고, 간장은 메밀전병을 주문해서 나온거다. 요즘 종이처럼 얇은 단무지도 있지만, 미진의 단무지는 여전히 두껍다. 의미없는 반찬은 없다고 달달한 단무지와 새콤한 열무김치는 메밀국수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메밀의 맛과 향을 느끼기 위해서는 바삭함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만두는 튀기듯 바삭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메밀전병은 지지듯 부쳐야 한다. 순박한 메밀전 안에는 만두소처럼 고기와 김치가 들어있다. 내용물은 풍미만 더할뿐 양념이 강하지 않아 구수한 메밀전 맛이 더 살아난다.
메밀전에는 달달한 단무지보다는 새콤한 열무김치가 더 어울린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입맛 취향이다. 남으면 포장을 하려고 했는데, 한줄이라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쑥갓향이 이리도 좋았나 싶다. 지극적인 맛이 일절없는 온메밀은 쑥갓향으로 인해 기분좋은 자극을 준다. 쑥갓을 치우니, 어묵국수라고 해도 될 정도로 어묵와 유부가 잔뜩 들어있다. 너의 이름은 온메밀인데, 자꾸만 어릴적에 먹던 가락국수가 생각난다.
밀가루 국수였다면 가락국수라고 해도 됐을텐데, 온메밀답게 메밀국수가 들어 있다. 100% 순메밀은 아닐테고, 비율은 알 수 없지만 메밀국수 특유의 뚝뚝 끊어짐이 있다. 아무래도 뜨거운 육수라서 더 그런 듯 싶다.
메밀전병도 그러하더니, 온메밀 역시 자극적인 맛은 일절 없다. 간이 부족하라 싶을 정도로 슴슴하다. 직원은 김가루를 넣어서 먹으라고 했지만, 쑥갓향이 사라질까봐 우선은 김가루 없이 단백함으로 먹는다.
메밀전병과 달리, 온메밀은 열무김치도 단무지도 잘 어울린다. 새콤하게 한입, 달달하게 한입, 슴슴한 온메밀이 자칫 심심하게 느껴진다면 반찬으로 맛의 변화를 주면 된다.
차갑게 먹을때는 몰랐는데, 뜨겁게 먹으니 메밀국수가 물먹는 하마(?)가 됐다. 어찌나 국물을 잔뜩 빨아들이는지 육수부족 사태가 왔지만 괜찮다. 미진은 냉도 온도 육수 리필이 다 된다.
뜨거운 육수때문일까? 젓가락질을 몇번 하지도 않았는데, 면이 심각하게 뚝뚝 끊어진다. 차갑게 먹을때는 몰랐던 단점이 뜨겁게 먹으니 확 느껴진다. 이래서 메밀국수는 차갑게 먹어야 하나보다.
싱그러운 쑥갓향이 사라질 때쯤, 김가루로 고소함과 약간의 가름층을 더해준다. 처음부터 넣어서 먹어도 되지만, 김가루가 모든 맛을 다 잡아먹기에 쑥갓향을 즐긴 다음에 넣었다. 확실히 김가루가 들어가니 살짝 부족했던 맛이 꽉 채워진다.
파는 냉메밀 전용일 테지만, 워낙 파를 좋아하기에 온메밀에도 넣어봤다. 혹시나 실패할까봐 마지막에 넣었는데, 김가루를 넣지 않아도 될 뻔했다. 파는 쑥갓과 다른 또다른 싱그러움 향에 아삭한 식감까지 준다.
날이 선선해졌다고 냉대신 온메밀을 먹었지만, 겨울에 냉면을 즐겨먹듯 메밀국수도 뜨겁게 보다는 차갑게 먹어야 한다.
2020.08.17 - 투박한 메밀면 슴슴한 장국 서울미래유산 광화문미진
'맛을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벼운데 든든해 칠리베이컨 웜볼 샐러드 도화동 샐러디 (23) | 2021.10.19 |
---|---|
걸어서 태국 가요~ 용강동 코타이키친 (19) | 2021.10.18 |
양파맛 가득한 콘브래드와 어니언크림치즈소보루 통인동 효자베이커리 (22) | 2021.10.15 |
50분 동안 무제한 회전초밥 어촌계 타임스퀘어 영등포점 (25) | 2021.10.13 |
육즙 가득 군만두 좋을시고 서촌 취천루 (24) | 2021.10.11 |
곱고 달달한 단팥죽 삼청동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18) | 2021.10.06 |
비계가 일절 없는 제주흑돼지 안심카츠 도화동 아소비바 (22) | 2021.10.04 |
힙지로에서 홍콩을 만나다 을지로3가 장만옥 (25) | 2021.10.01 |
무화과에 빠져 목동 나폴레옹과자점 (17) | 2021.09.29 |
나에게 주는 선물같은 밥상 내수동 대접 (16) | 2021.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