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리동 역전회관
나름 열심히 도장깨기를 하는 중인데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역전회관은 바싹불고기가 대표 메뉴이지만, 점심메뉴도 꽤 훌륭하다. 국밥류를 지나 비빔밥류에 도착을 했다. 그중 첫번째는 고소함이 끝내주는 육회비빔밥이다.
3월 중순으로 접어드니, 사람들의 옷차림이 확실이 가벼워졌다. 봄이 오긴 왔나보다. 하긴 겨우내 입었던 패딩은 드라이를 끝내고 옷장 안으로 다시 들어갔고, 대신 입은듯 안입은 듯 가벼운 재킷이 옷장 밖으로 나왔다. 역전회관 앞 가로수는 벚나무이지만, 아직은 앙상하다. 하지만 곧 꽃망울을 터뜨리고 화사한 벚꽃을 보여줄 거라고 확신한다.
4층이지만, 거의 혼밥을 하다보니 2층도 못 올라가고 늘 1층에서 먹는다. 2인석은 4인석에 비해 비어있을때가 많아서 기다림없이 바로 앉을 수 있다. 손소독에 체온측정 그리고 QR코드로 명부작성까지 마쳐야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책이라 할 정도로 메뉴판이 묵직하지만, 혼자서 먹을 수 없는 세트 페이지는 무시하고 점심 한정 메뉴에 집중을 한다. 선지백반과 역전해장국은 먹었기에, 육개장으로 갈까 하다가 뜨거운 국물보다는 산뜻한 비빔밥이 나을 듯 싶어 육회비빔밥(12,000원)을 주문했다.
겉절이 김치와 무생채까지 역전회관 밑찬이다. 반찬은 변함이 없지만, 매일 아침 수제로 만든다고 메뉴판에 나와있다. 반찬 인심이 후한 곳도 있지만, 혼밥일때는 야박해도 된다. 단, 리필은 꼭 있어야 한다.
역전회관은 밥이 따로 나온다. 양을 조절해서 비비면 되는데, 굳이 남기지 않고 다 넣어서 비벼도 된다. 육회비빔밥에 선짓국을 주는 곳도 있는데, 여기는 소고기콩나물국이 나온다. 첫번째 국은 고기도 넘 부실하더니, 두번째 국은 커다란 고기 덩어리가 들어 있다. 콩나물 껍질이 많은 골라내는데 귀찮았지만, 깔끔하고 담백하니 양념이 강한 육회비빔밥과 잘 어울린다.
콩나물과 무생채 그리고 김가루가 아래에 포진되어 있어, 그 위에 주인공인 육회가 올려져 있다. 양념이 따로 있지 않고, 육회 자체에 양념이 되어 있다. 통깨가 아니고 갈은 깨에 적양배추도 있다. 육회비빔밥에 들어가는 육회 원산지는 국내산 육우다.
비빔밥용이니 간이 강한 건 인정, 매운맛이 살짝 스쳐 지나가기도 하지만, 단맛은 그리 과하지 않다. 부드러운 육회는 몇번의 저작운동만으로도 싹 사라진다. 육회만 더 즐기고 싶지만, 이건 밥과 함께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육회비빔밥이니깐.
양념이 부족한 줄 알았는데, 밥 한공기를 다 넣고 비벼도 거뜬하다. 그만큼 육회에 양념이 많았나 보다. 잘 비빈 육회비빔밥을 숟가락 가득 담는다. 양념에 가려 보이지 않던 육회 본연의 때깔이 보인다. 질김은 일절없고 부드럽고 고소하다. 여기에 밥의 단맛과 무생채,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까지 더해지니 조화롭다.
육회비빔밥으로도 충분하지만 반찬이 있으니 같이 먹는다. 양념이 강한 겉절이 보다는 육회 맛을 해치지 않는 아삭하고 시원한 무생채가 더 어울린다.
한입 한입 먹다보니 어느새 바닥이다. 유기그릇은 텅 비었지만, 나의 배는 포만감으로 가득 찼다. 시원한 자색고구마차로 입가심을 하고 일어난다. 요즘 바다먹거리를 주로 먹다보니, 육식이 그리웠는데 육회비빔밥으로 그리움을 채웠다.
쌀, 물, 누룩으로만 빚어 약 6개월 동안 자연발효와 저온숙성을 한 맑은 탁주 역전한주(15%, 31,000원)와 같은 재료로 약 100간 숙성을 한 수제막걸리 역전주(9%, 10,000원). 역전주도 참 좋았는데, 더 오래 숙성한 역전한주는 과연 어떤 맛일까? 매우 몹시 궁금하도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역전회관 작은 박물관이 있다. 앞으로 7년 후 역전회관은 100살이 된다. 1928년 순천 호상식당으로 시작으로, 1962년 용산 역전식당, 1990년 용산 역전회관 그리고 2008년 마포 역전회관까지 서울미래유산답다. 그나저나 5백원 지폐 참 오랜만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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