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동 굴뚝배기전문점모려
생김새는 그닥 끌리지 않는데, 한번 맛을 보면 그 매력에 퐁당 빠지게 된다. 숙성을 했다고 하지만, 그 맛과 향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더 진해진다. 굴을 보내고 멍게를 맞이하러 내수동에 있는 굴뚝배기전문점모려로 향했다.
겨우내 굴맛에 빠져 자주 왔는데, 봄에도 발길은 멈추지 않는다. 과메기와 굴은 보냈지만, 멍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생멍게가 아니라 숙성된 멍게를 사용하기에 굳이 봄이 아니어도 되는데, 그래도 제철이라서 봄이 오길 기다렸다가 왔다. 바쁜 점심시간을 피해서 오면 한가하게 혼밥을 즐길 수 있다. 브레이크타임은 오후3시부터 5시까지다.
굴시즌이 끝났으니 멍게비빔밥(10,000원)만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4월초까지는 굴이 계속 나온다고 하기에 멍게정식(15,000원)으로 주문했다. 그나저나 굴시즌이 끝나면 정식에 굴대신 뭐가 들어갈까? 담에 가면 꼭 물어봐야겠다.
기본찬은 늘 변함이 없는데, 지난번과 달리 부추무침이 없다. 부추무침과 굴전을 같이 먹으면 좋은데, 떨어졌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없으면 없는대로 나머지 반찬들을 먹으면 된다.
정식을 주문하면 굴전과 굴젓 그리고 생굴이 같이 나온다. 살짝 데친 굴로 만든 굴전은 단단해서 굴을 싫어하는 분들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주인장이 직접 담근 굴젓은 참기름을 넣어 살짝 비빈 흰밥과 같이 먹으면 된다. 따로 공깃밥을 추가하지 말고, 주인장에게 부탁을 하면 서비스로 밥을 조금 준다.
끝물이라서 살짝 비릿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초장을 더해서 먹을까 하다가, 그냥 먹었는데 끝물인데도 상태가 매우 좋다. 진항 굴의 풍미와 함께 관자의 식감까지 제대로다. 신선도가 좋은 생굴에 초장은 비겁한 변명이다.
살짝 예상은 했다. 비빔밥이니 국물이 필요할테고, 멍게비빔밥이니 멍게탕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작은 뚝배기가 쓱 들어오는데 코끝을 강하게 치는 멍게향을 맡으며 옳다구나 했다. 멍게밥에 멍게국,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
단촐하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멍게비빔밥에는 멍게가 원탑이니깐. 김가루와 무순은 그저 단역일 뿐이다. 사실 밥에 멍게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고소함과 상큼함을 추가해도 상관없다. 양이 적어 보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그릇이 무지 크다.
지난번에 왔을때, 주인장은 생멍게는 아니고 숙성되 멍게를 가지고 비빔밥과 탕을 만든다고 했다. 숙성이라고 해서 굴젓처럼 때깔이나 모양새가 변한 줄 알았는데, 생멍게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그대로다. 거제도식이라는데 거제도를 가본 적이 없으니 멍게비빔밥을 먹어본 적도 없다. 비교를 하려면 우선 거제도부터 가야한다.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듯, 밥알 하나하나 멍게가 스며들었다. 주황빛으로 물들였으니 이제는 저작운동을 할 차례가 왔다.
비빌때도 연신 멍게 풍미가 그윽하더니, 먹으니 장난이 아니다. 멍게 양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비비는 동안 번식(?)을 했는지 온통 멍게뿐이다. 숙성이라 멍게 질감은 거의 없지만, 풍미 하나만은 생물보다 월등하다. 멍게비빔밥 한번, 멍게탕 한번, 이 조합 무조건 대찬성이다. 밥으로 탕으로 온통 멍게 세상이다.
멍게의 강렬함에 생굴이 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멍게도 굴도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자신의 매력을 발산 중이다. 마치 멍게 나라에 국빈자격으로 굴이 방문한 듯하다.
생굴이 좋았는데 굴젓은 아니 좋을 수 없다. 단품으로 먹지 않고 정식으로 먹기 정말 잘했다. 굴시즌이 끝나는 관계로 당분간 이 조합을 만날 수 없겠지만,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알기에 고이 뱃속으로 보내버렸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묵밥과 두부국수를 시작한다던데, 이래서 모려를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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