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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라산 1100고지 휴게소

겨울 여행을 왔으니 눈은 꼭 봐야하는데, 폭설로 인해 1100고지 휴게소로 갈 수 없다는 소식만 들려온다. 이러다 눈도 못 보고 서울행 비행기를 타면 어쩌나 싶었는데, 하늘도 이런 내맘을 알았는지 길이 열렸다. 등산으로 한라산 정상까지 갈 자신은 없지만, 1100고지 휴게소는 차로 갈 수 있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듯 눈꽃이 가득 핀 찐겨울을 만나고 왔다.

 

1100고지 휴게소로 가는 도로가 개방됐다는 소식에 서둘러 이동 중이다. 어제는 우박같은 눈이 내리다가, 비가 내리다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등 날씨가 널뛰기를 했는데, 다음날은 마치 초봄이듯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다.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가지만, 제주의 시간은 오락가락이다. 사진만 보면 여름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고, 현재 기온은 영하는 아니고 영상 3~4도 정도 된다. 제주답게 바람은 많이 불고 있지만, 온열시트로 등은 따습고,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서 배부르다. 솔솔 잠이 오기 딱 좋은 타이밍이지만, 이렇게 멋진 풍경을 두고 눈을 감을 수가 없다. 

 

길가에는 눈이 조금은 남아 있지만, 찐겨울의 풍경이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오빠~ 달려~~ 1100고지로..."

 

"나는 아직 눈고프당."

 

푸른하늘은 그대로이지만, 어느새 울창한 숲이 사리지고 휑한 나뭇가지만 나타났다. 목적지는 아직 좀 더 남았는데, 마음은 벌써 두근반세근반이다. 곡선코스가 많아 친구는 운전에 몰입 중인데, 뭐가 그리 신났는지 혼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심장아 나대지 마~

제주도가 처음은 아니지만, 겨울 제주는 처음이다. 눈을 만나러 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코너를 돌때마다 바뀌는 풍경에 엄청 신나있다. 

 

1100고지 앞으로 2km 남았다. 엄청 많은 코너에 멀미가 오고, 계속 오르막이라 귀가 멍멍했지만, 여기서 멈춤을 외칠 수 없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기에 지금 이순간을 영영 꽉 붙잡아야 한다. 그나저나 파랗던 하늘은 당장이라도 함박눈이 내릴 듯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밖으로 나가 눈사람도 만들고, 발자국도 남기도 싶지만, 여기서 차를 멈추면 사고가 날 수 있으니 그냥 가야 한다. 올해는 서울에도 첫눈치고는 눈이 꽤나 많이 내렸는데, 춥다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 베란다에서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봤다. 역시 눈은 따뜻한 실내에서 바라볼때가 가장 좋다. 집에서는 이불밖이 무섭듯, 차에서는 온열시트밖이 무섭다.

 

휑했던 나뭇가지에 살포시 눈꽃이 내려왔다. 아무래도 한라산 1100고지 휴게소에 거의 다 온 듯 싶다. 어쩜 세상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는지, 직접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가 않다. 하얀 눈이 만들어낸 겨울왕국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좋은데 직접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잠깐 스친 생각이다. 만약 저기까지 직접 가라고 한다면, 그렇게 무서운 소리는 집어 넣어달라고 정중히 부탁할 거다. 

 

거의 다 왔다~
제주의 겨울

불멍이 있으면 눈멍도 있다. 입은 반쯤 열려 있지만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순간을 사진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담기 바쁘기 때문이다. 창문을 살짝 내리고 겨울왕국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바람에 벚꽃잎이 날리듯, 바람을 따라 눈꽃은 다시 눈이 되어 내안으로 들어온다. 

 

멋지당~

해발 1100고지, 여기까지 왔으니 남들처럼 밖으로 나가 인증사진을 남겨야 하는 법. 하지만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올때는 몰랐는데, 1100고지에 도착을 하니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하긴 이 좋은 풍경을 다덜 놓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운전을 하느라, 제대로 감상을 하지 못한 친구는 밖으로 나가고 싶단다. 같이 나가서 인증사진도 찍고 해야 하건만, 카메라를 부탁했다. "선생님, 저는 여기서 차를 지키고 있을테니, 나가서 멋진 풍경을 여기에도 담아주세요." 무언가 엄청난 걸 부탁할때는 호칭이 선생님으로 바뀐다. 포토바이 친구 아니 슨생님!

 

눈의 세상
줌으로 댕겨댕겨~

친구따라 강남은 못가더라도, 밖으로 나갈까 잠시 고민을 했다. 여기까지 왔으면서 차안에만 있는 건, 나만 손해일 거 같아서다. 나가볼까나 하는 찰나에 친구가 돌아왔다.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로 인해 차가 앞으로 가지 못하는 바람에, 주차단속을 하기 위해 경찰차가 왔기 때문이다. 

 

절경이고요 장관이네요~

겨울왕국을 찐겨울을 좀 더 즐겨야 하지만, 더이상의 욕심은 과욕이다.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역대급 선물을 받았으니 더할나위 없다. 

 

내려갈때도 카메라를 놓을 수가 없도다~

내려가는 길조차 놓칠 수가 없다. 영원히 다시 못볼 풍경이라도 된 듯, 셔터를 멈출 수가 없다. 기억은 서서히 희미해져 가겠지만, 사진은 외장하드를 날려버리지 않는한 영원하다. 고로 남는 건 사진이다.

 

겨울풍경 조으당~

지금까지 제주도에 갔지만, 한라산은 그저 아주 먼 곳에서 바라만 봤었다. 1100고지까지 갔으니, 이제는 한라산에 다녀왔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직접 발로 걷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곳에 있었으니깐. 더불어 그날이 언제일지 혹은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라산 정상도 한번 찍어볼까나. 그 전에 21도 라산이나 정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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