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카멜리아힐
명성을 알기에 겨울 제주 여행을 준비할때, 카멜리아힐은 무조건 필수였다. 나름 개화시기를 맞춰서 왔다고 생각했는데, 만발을 기대하기 힘들다. 동백을 보러 여수에 갔을때도 그러더니, 아무래도 나와 동백은 좋은 사이는 아닌가 보다. 절정은 만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동백을 봤으니 소원풀이는 했다.
카멜리아힐은 꽤 오래전 여름에, 동백이 아니라 수국을 만나러 갔었다. 이름처럼 동백이 가장 유명한 곳으로 겨울과 봄은 동백이라면, 여름은 수국이다. 그때도 참 좋았는데,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 내내 궁금했다. 겨울 제주의 대표 먹거리가 제철 대방어회라면, 대표 볼거리는 애기동백이 아닐까 싶다. 우박같은 눈으로 인해 흐렸다 개었다 하면서 날씨는 G랄라라~ 였지만, 만보를 투자할 만큼의 성과는 있었다. 입장료가 8,000원(성인)인데 모바일에서 예매하면 할인(6,500원)이 된다.
영화처럼 기대를 너무하면 안되나 보다. 입구에서부터 붉은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드문드문 보인다. 기대에서 실망으로 맘이 바뀌려는 순간, "이제 초입이잖아~" 내 안의 내가 나에게 말을 한다. 그래 더 안으로 들어가보자.
기대와 많이 다르지만, 이렇게라도 볼 수 있으니 아니 좋을 수 없다. 동백꽃이 많이 핀 곳은 어김없이 인생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도 붐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 왔으니 한번쯤은 인물사진을 찍어줄만도 한데, 나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각자의 감성에 빠져 정신이 없다. 인물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정체를 해야 하지만, 우리는 아우토반이다. 왜냐하면 바로 찍고 빠지면 되니깐.
"그냥 그렇다고요." 셀카봉이라도 장만해서 인물사진을 남겨야 하는데, 매번 풍경에 빠져 인물은 챙기지 못하는 나. 그냥 길이 예뻐서 찍었을 뿐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 중이다.
비와 눈의 콜라보랄까? 우산은 없지, 패딩에 붙어있는 모자를 쓰면 답답하지, 생활방수는 된다지만 무겁게 챙겨온 풀프레임 카메라는 가방에 넣어버렸다. 대신 고장이 나도 그리 아깝지 않을 하이엔드 카메라로 게릴라 작전을 펼치듯 찍고 바로 손수건으로 싸맨다. 몸은 젖어도 되지만, 카메라는 젖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카멜리아힐에는 80개국의 동백나무 500여 품종이 있으면, 약 600여 그루의 나무가 있단다. 요맘때 피는 동백은 애기동백이라고 불리는 외래종으로 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토종동백과 달리 꽃잎이 낱장으로 떨어진다.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 싶은데, 이렇게라도 동백을 볼 수 있으니 좋다. 참, 동백의 꽃말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한다. 그저 꽃말일 뿐인데, 부러운 느낌은 드는 건 왜일까? 부러우면 지는거라는데 KO패다.
이름대로 온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실내라 따뜻하니 좋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난 동백보다 온실에서 만난 동백이 많다는 건 안 비밀이다. 잠시나마 눈도 피할겸, 무지 느리게 천천히 걸을 예정이다.
구실잣밤나무를 안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데, 예전에 해봤고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무표정한 얼굴로 쓱 쳐다만 보고 지나쳤다. 오엔 겐바부로의 판타지 동화 2백년의 아이들에 천년 된 구실잣밤나무가 나온다는데, 소원보다는 책을 읽고 싶다.
저 멀리 보이는 건, 대온실(왼쪽)과 전망대(오른쪽)다. 대온실은 아까 들렸던 소온실에 비해 규모는 넓지만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 꽃은 그리 많지 않고, 전망대는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올라가지 못했다. 소온실 이후, 급격하게 떨어진 체력과 실망감으로 인해 전망대까지 가기 귀찮아졌다. 나와 달리 친구는 가고 싶어하기에, 다녀와서 어땠는지 말을 해달라고 했더니, 마치 다녀온 듯 친절하게 알려줬다.
나도 어른인가 보다. 어릴때는 눈이 오면 무조건 눈사람부터 만들었는데, 이제는 눈이 온다고 짜증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덕분에 잠시나마 동심에 빠졌다. 동백과 눈사람, 겨울 제주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은 꽃가루를 퍼뜨려 줄 나비나 벌이 없다. 다른 꽃들은 향기로 유혹을 한다지만, 동백꽃은 향이 아니 컬러로 동박새를 유혹한다. 동백꽃이 유독 붉은 이유는 생명연장때문이다.
온실에서의 추억만 갖고 가려고 했는데, 화장실을 다녀온 후 흐렸던 하늘이 갑자기 맑아졌다. 그러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 아니 동백꽃길을 만났다. 방금 전까지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큰 법이야 하면서 혼자서 투덜투덜대고 있었는데, 지금은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서둘러 하이엔드에서 풀프레임으로 카메라를 바꾸고, 날씨가 다시 흐려지기 전에 지금 이순간을 담아야 한다.
인물이듯, 꽃이듯 조명(자연광)은 필수다. 꽃도 잎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초입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배탈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밀당을 하듯, 계속 안 보여주더니 이런 보물을 보여주기 위한 큰그림이었나 보다. 기대에서 실망감이 아니라 실망감에서 만족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이런 풍경 앞에 셀피를 어찌 안찍을 수 있을까? 나름 잘 찍는다고 했는데, 고기도 구워 본 눔이 잘 굽는다고 셀피도 여러번 찍어봐야 잘 찍을 수 있나 보다. 큰바위처럼 얼굴만 크게 나오고, 멋진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얼굴사진은 망쳤지만, 햇살의 도움으로 그림자 사진은 건졌다. 구도는 맘에 들지 않지만, 인물보다는 풍경이 우선이니 어쩔 수 없다.
카멜리아힐에서 만나 베스트 장소이자 베스트 컷이다. 날씨의 도움으로 파란하늘이 짠하고 나타났고, 때마침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길에 서 있다. 겨울 동백을 원없이 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사진에서 만족했으니 충분하다. 겨울은 춥다고 이불 밖을 무서워 했는데, 찐여행은 겨울여행이지 싶다. 겨울 제주, 또 가고 싶을만큼 매력적이다. 2% 남아있던 아쉬움은 다음날 마노르블랑에서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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