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마산 고현미더덕 정보화마을
하고 싶은 건 해야 하고, 먹고 싶은 건 먹어야 한다. 봄이 오면 꽃을 찾아 떠났는데, 이번에는 제철 먹거리를 찾아 떠났다. 봄꽃보다 더 설레게 한 녀석이 있기 때문이다. 벌교가 꼬막이라면, 마산은 미더덕으로 우리나라 미더덕 생산의 70~80%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가 담당하고 있다. 봄제철 먹거리의 끝판왕 미더덕을 만나러 갑니다.
마산에 간다고 하니, 아귀찜을 먹으러 가냐고 물어본다. 해산물킬러이지만, 유독 아귀에 약한 1인이다. 아귀간만 좋아할뿐, 다른 부위는 먹으면 바로 배탈이 난다. 예전에 매운 아귀찜을 먹고 심하게 탈이 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인지 아귀를 보면 배가 아프다. 트라우마도 있고, 혼자서는 아귀찜을 먹을 수 없기에 애당초 포기를 했다.
아귀만큼 트라우마가 심한 수산물이 있는데 미더덕이다. 아주아주 어렸을때 일이다. 온 가족이 모여 해물탕을 먹고 있는데, 장난이 심한 외삼촌이 뜨거운 탕 속에서 작고 오동통하게 생긴 무언가를 꺼내 먹으라고 했다. 너무 비싸서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거라면서 어른들이 먹기 전에 빨리 먹으란다. 얼떨결에 그걸 입안에 넣고, 아무 생각없이 씹었다. 그 순간 오도독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 들어 있는 뜨거운 국물이 나왔고, 그로 인해 입천장을 비롯해 혀까지 데였다.
외삼촌의 장난에 제대로 당한 후 미더덕은 먹지도 쳐다보지도 않게 됐다. 성인이 된 후에도 해물찜이나 탕에서 미더덕을 발견하면 먹지 않고 누군가가 먹겠지 하고 남겨두거나 그냥 버렸다. 그랬던 미더덕을 먹으러 마산에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기 싫은 미더덕이 이제는 먹고 싶어졌으니깐.
수신료가 아깝지 않은 한국인의 밥상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미더덕을 싫어했을 거다. 방송은 2014년에 2월이지만, 유튜브를 통해 최근에야 보게 됐다. 미더덕과 사촌뻘인 멍게는 미친듯이 좋아하면서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도 그동안 너무 멀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게도 봄이 제철이듯, 미더덕도 그렇다. 멍게비빔밥이 있다면 미더덕비빔밥도 있을 거다. 그런데 서울에서 미더덕 비빔밥을 만나기란 쉽지 아니 어렵다. 그래서 직접 산지로 떠나기로 결정을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을 했다. 오랜만에 기차여행이라 설레고 좋은데, 코로나19로 인해 객실 안에서 음식물 섭취가 안된단다. 서울역에서 마산역까지 3시간 걸리는데 맹물로 허기를 달래며 부족한 잠을 청했다. 드뎌 마산역에 도착을 했고, 진동면에 있는 고현미더덕 정보화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한다. 마산역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딱 한대 있는데, 세상에 배차간격이 190분이다.
혹시나 운이 좋아서 도착을 하면 버스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딴 행운은 없다. 역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다른 정류장에 진동시외버스정류소까지 가는 버스가 10분 이내에 도착을 한단다. 거기서 목적지까지 택시를 타면 6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옳다구나 하면서 서둘러 향했지만, 생각보다 정류장이 넘 멀리 있다. 스치듯 안녕이라고,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보면 다시 지도앱을 확인한다. 또다른 정류장에서 이번에는 급행버스(800번)가 도착을 한단다. 한번에 가는 버스는 아니지만, 역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우선 탔다.
서울에서 2~3번 환승은 기본인데 마산은 다르다. 급행을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 진동시외버스정류소까지 가는 버스를 다시 탔다. 30~40분을 내내 서서 가다가, 2정거장 전에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내렸다. 지웠던 카카오T앱을 다시 설치한 후, 택시를 타고 미더덕이 있는 고현마을에 도착을 했다.
KTX 3시간도 힘들다 했는데, 마산역에서 고현마을까지 온 1시간 20분이 가장 힘들었다. 잠시 후 이걸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지만 우선은 즐기자. 이렇게 한적하고 고요한 바닷가 마을은 또 처음이다. 갈매기도 많고 비린내가 진동할 거라 생각했는데 무향에 가깝다. 방송에서 미더덕 양식장은 여기서 약 5분 거리에 있다고 했기에, 양식장 구경은 힘들고 대신 마을 구경을 하기로 했다.
마을 구경은 거창하고 실은 찜해둔 식당 근처 주위를 산책했을 뿐이다. 그래도 하얀 등대가 있는 곳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간헐적 단식과 아침 공복으로 인한 급허기짐에 포기를 했다. 맞은편에 있는 빨간등대가 있는 부근에는 둘레길도 있고 공룡발자국도 볼 수 있다지만, 저기는 밥을 먹은 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마산 진동만에서 미더덕이 많이 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미더덕은 부착성 생물로 파도가 세거나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면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진동만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수많은 섬들로 인해 바다인데도 호수처럼 잔잔하다. 그래서 미더덕이 살기 딱 좋은 환경이다. 양식장에서 미더덕을 가져와 배 안에서 바로 손질을 하나보다. 손질에 판매까지 일사천리 배에서 행해진다. 그나저나 바닷물이 이리도 투명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 속이 훤히 보일만큼 청정하다.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손질된 미더덕은 이따가 식당에서 실컷 보겠지만, 원래 모습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어서다. 대형 다라이(?) 가득 미더덕 천지다. 그동안 국물용으로 치부했던 미더덕에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미더덕은 더덕 더덕 달린 모습이 마치 더덕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꼬리가 붙어 있는 건 미더덕이고, 미더덕보다 작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만둥이 즉 주름미더덕이다. 여기는 다 같이 모여있지만, 겉껍질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둘은 나눠진다.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든 옷처럼 미더덕을 먹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겉껍질을 벗겨야 하기 때문이다. 기계는 안되고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해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내용물이 터질 수 있기에 이태인 장인처럼 숙련된 고현마을 장인들은 하나씩 하나씩 미더덕 껍질을 벗겨낸다. 미더덕은 갑옷같은 두터운 겉옷을 벗은 후에야 밥상에 오른다.
미더덕을 봤으니 이제는 먹아야겠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미더덕을 먹기 위해서이니깐. 공룡발자국 찾기는 밥을 먹은 다음에 하려고 했는데, 끝내 하얀등대도 빨간등대도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왔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대로 택시를 타고, 버스를 2번이나 타야 해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택시(신형 그렌저 뒷자리가 넘 좋았음)를 탔는데 중간에 내리지 않고 바로 마산역으로 갔다.
마산역으로 가던 중 택시는 산복도로에 진입했다. 여기가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기사의 말에 냉큼 밖을 쳐다봤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기대했는데, 앙상한 나무가지 뿐이다. "벚꽃은 아직이네요"라고 말하려는 순간, 세상 밖으로 일찍 나온 벚꽃이 보인다. 머리는 어서 빨리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데, 눈은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고, 손은 축 늘어져 있다. 아무래도 가수면 상태였나보다. 목적달성을 했기에 벚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무지 후회가 된다. 택시에서 잠시 내려 사진이라도 제대로 찍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하지만 미더덕을 원없이 먹었으니 벚꽃은 서울에서 4월에 만나면 된다.
미더덕에 대한 트라우마는 완벽하게 극복을 했다. 고유의 향과 특유의 풍미 그리고 오도독 식감을 갖고 있는 미더덕, 그 맛은 커밍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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