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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보(Trumbo) | 누구를 위한 블랙리스트인가?

넷플릭스로 놓친 실화영화 보기. 가장 진보라고 할 수 있는 할리우드에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시대가 만든 슬픈 현실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자막으로 시작을 한다. 

"1930년대 대공항의 영향으로 파시즘이 기승을 부리자 수많은 미국인이 미국 공산당에 합류했다. 2차대전 중 미국이 소련과 동맹을 맺는 후엔 더 많은 이들이 미국공산당으로 몰려들었다. 오랜시간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싸워온 각본가 달튼 트럼보도 1943년 미국 공산당의 당원이 되었다. 하지만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모였다."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반미활동위원회는 트럼보에게 공산주의자들의 할리우드 장악음모를 조사하기 위해 소환장을 보낸다. 그리고 민주적 가치를 오염시키고 국가전복을 도모한 음모로 배심원단은 그에게 의회모독죄로 유죄를 선고한다. 시대가 낳은 슬픈 현실이라지만 그렇다고 수감은 너무 한 거 같다. 정부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던 할리우드,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로마의 휴일을 쓴 트럼보

감옥에서 출소 후 일자리가 막힌 그가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이름을 버리는 거였다. 지금도 명작으로 손꼽는 로마의 휴일은 친구의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졌고, 개봉을 했고, 아카데미 각본가상까지 받았지만, 그 어디에도 트럼보의 이름은 없다. 트로피를 받은 친구가 트럼보에게 찾아와 상은 내가 아닌 네가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트럼보는 그에게 너의 이름으로 나온 영화이니 네가 진짜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트럼보의 슬픔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가 가장 잘 하는 건 글을 쓰는 거다. 그런데 할리우드는 공산당원의 꼬리표가 있는 자에게는 일을 절대 주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그가 뛰어난 인물이어도 공산당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그런 시대였다. 1940년대 미국 할리우드는...

 

공산당을 끔직하게 싫어했던 무서운 아줌마 
로마의 휴일 대리작가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들에게 일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건, 가짜 이름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거다. 할리우드 최고 작가는 바닥으로 내려와 B급 영화 제작자와 손을 잡고 글을 쓴다. 한두편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글을 쓴다. 그가 쓴 창작물이기 보다는 누군가의 시나리오를 더 잼있게, 더 황홀하게 각색을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일을 차질없이 하기 위해 트럼보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11개의 가짜 이름으로 활동을 한다. 작업한 글이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대의 전화기를 놓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제작사에 작품을 직접 배송한다. 바닥으로 떨어졌으니 수입은 예전에 비해 형편없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는 술에, 담배에, 약까지 먹으면 글을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 욕실 장면은 욕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나저나 아직은 담배가 유해하다는 인식이 없던 시절인지, 폐암에 걸렸다는 친구 앞에서 담배를 피고, 환자 역시 스스럼없이 담배를 핀다.

  

더 브레이브 원으로 또다시 트럼보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는다. 로마의 휴일처럼 가짜 이름(로버트 리치)이고, 그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 2번의 아카데미 각본가상을 받은 그에게 은밀하게 러브콜이 온다. 그리고 드디어 가짜 이름이 아닌 작가 달튼 트럼보로 영화가 개봉을 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스파타커스다. 

 

대작가를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손과 발을 묶으려고 했던 시대, 하지만 그는 스스로 살아남아 능력을 인정받고 아카데미 트로피도 다시 찾게 된다.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편가르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영화 트럼보를 보면서, 지난 정권이 생각나는 건 나만은 아닐 듯.우리가 남이가를 외쳤던 김00이 자꾸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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