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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리(Tully) | 육아는 전쟁같은 현실

 

넷플릭스로 놓친 영화 보기. 연애는 환상, 결혼은 현실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육아는 전쟁같은 현실 아니 현실 속 전쟁이랄까? 엄마가 된다는 건,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위대하다. 육아는 커녕 결혼조차 경험이 일절없는 나에게 툴리는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영화다. 82년생 김지영에게는 남편 공유가 있다지만, 마를로에게는 토끼같은 둘 아니 세 아이와 겜만 하는 남편이 있다. 여자에서 아내로 그리고 엄마로 험난함이 예상되는 길이어도 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글쎄다.

 

영화의 결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삶을 축복한다. 그런데 영화는 영화일뿐, 현실은 영화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회의적이 된다. 방구석1열을 통해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다 알고 있었기에, 툴리가 누구인지 알았다. 모르고 봤다면 툴리가 존재가 밝혀지는 순간, 깜놀했겠지만 아니 그 전에 미리 알았을 거 같다. 하지만 다 알고 봤기에 마를로(샤를리즈 테론)는 툴리(맥켄지 데이비스)가 자신이라는 걸 언제 알게 될까? 이게 가장 궁금했는데, 영화는 관객에게만 마를로가 만든 가상의 인물이라고 알려줄뿐, 마를로는 끝까지 몰랐던 거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별 장면을 넣을 필요가 없었을테니깐.

 

조카가 어렸을때, 울기 전까지는 이 녀석이 천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면, 천사의 탈을 쓴 00으로 변한다. 몇시간 돌보는 것도 겁나 힘든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24시간 내내 아이를 돌봐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온다. 왜 아이의 잠든 모습이 가장 예쁘다고 했는지 알겠다. 깨는 순간 지옥문이 열릴테니깐.

 

그런 아이를 하나가 아닌 셋이나 키우는 마를로(샤를리즈 테론), 첫째는 똘똘한 거 같고, 둘째는 보통 아이와는 다른 개성이 있다. 여기에 곧 태어날 셋째까지 엄마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그래서 부자 오빠는 그녀에게 야간보모를 선물로 준다. 즉, 비용처리를 다 했으니, 저녁에만이라도 편히 쉬라는 말씀.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길 수가 없다고 고집을 피우다, 끝내 툴리의 도움을 받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 기저귀를 갈고 모유수유를 하고 다시 재우기 위해 달래고, 영화는 이 부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반복처럼 느껴지지만, 이게 바로 육아의 현실이다. 반복에 반복이 거듭될 수록 엄마는 지쳐간다. 내가 낳은 새끼이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지만, 낮이건 밤이건 우는 아이를 돌보는 건 쉽지 아니 무지 어려운 일이다. 이래서 야간보모가 필요한 거다. 잠이라고 푹 자면, 아이를 미워하지 않게 될테니깐. 

 

"저는 엄마를 돌봐드리러 왔어요." "아기를 돌보러 온 줄 알았는데요?" "네, 그 아기가 엄마예요." 보모인데 엄마를 돌보기 위해 왔다는 툴리의 말, 참 생뚱맞다. 보모로서 첫날일텐데 어색항은 전혀, 마치 자주 놀러온 사람마냥 그녀의 행동은 너무나 익숙하다. 반전을 알고 보니, 자연스러운 툴리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전체를 치료하지 않고 부분만 고칠 수 없어요." 툴리는 아이뿐만 아니라 마를로에게도 빛과 같은 존재가 된다. 겜만 하는 남편과는 달리 살갑게 대해주는 툴리, 그녀에게 빠지지 않을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툴리로 인해 마를로의 일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우선 목욕가운을 벗고 옷다운 옷을 입게 되고, 더불어 화장도 다시 하게 된다. 출산 후 다이어트에도 신경을 쓰고, 막내로 인해 무관심했던 첫째와 둘째에게도 신경을 쓴다. 툴리가 만든 컵케익으로 아이에게 사랑스런 엄마가 되기도 하고, 하지만 아이는 안다. 툴리가 아닌 엄마가 만들었다는 걸. 모르고 봤다면, 컵케익을 들고 학교에 갔을때 아이가 한 말, "우리 엄마가 만들었어."는 엄청난 떡밥(복선)이다. 

 

20대 툴리와 30대 마를로, 전혀 다른 인물인데 마치 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툴리는 마지 자기 집인듯, 와인잔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아낸다. 늦은 밤 마를로가 결혼 전에 살았던 옛동네로 떠난 둘은 과하게 술도 마시고 살짝 일탈을 맛본다. 하지만 다시 집으로 오는 길에 졸음운전을 하게 되고, 결국 사고가 난다. 병원 직원이 남편에게 마를로의 처녀적 성을 물어보는데, 그는 툴리라고 대답을 한다. 이때서야, 툴리는 마를로가 만든 가상의 인물임이 밝혀진다. 야간보모로 툴리가 했던 모든 일은 사실 마를로가 스스로 했던 것이다. 

 

툴리를 보다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오버랩된다. 마를로는 툴리라는 가상의 인물을, 김지영은 빙의로 산후우울증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육아라는 전쟁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를 만들고 싶은 건, 아마도 남편 혹은 다른 가족에게 보내는 SOS신호가 아닐까 싶다.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자신의 병을 알게 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툴리는 다르다. 관객에게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알려주지만, 마를로 본인뿐만 아니라 남편도 아이들도 툴리가 가상의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다. 병원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을때 마를로는 알았을 거 같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붙잡지 않고 쿨하게 보내준 듯 싶다.

 

육아가 뭔지 일절 몰랐던 남편, 그래도 공유 남편은 그녀를 위해 의사라도 소개해줬지만, 마를로의 남편은 너무 무관심하다. 그래도 교통사고 이후 충격을 받았는지, 아이도 챙기고 함께 아침을 만드는 착한 남편이 되는데, 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짜였으면 좋겠다. 너무나 사실적이라 보면서 흠칫 놀라는 장면이 많았지만, 둘째 아이의 마지막 대사가 계속 맴돈다. "엄마랑 있는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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