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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동 락희옥 마포본점

5월 이달의 수산물로 멍게와 갑오징어가 선정됐다고 한다. 멍게는 식감보다는 향으로 먹는 음식이다. 한 입 먹으면 입안 가득 바다가 몰려온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에 먹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서울 한복판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락희옥에서 바다를 아니 멍게를 비빔밥으로 만났다.

 

락희옥 마포본점

락희옥 마포본점은 브레이크 타임이 없다. 그걸 입증이라고 하듯, 낮술환영이라는 문구가 눈에 팍 꽂힌다. 들어오니, 낮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저들처럼 한잔 생각이 간절했지만, 병원에 가야 하는 바람에 얌전히 밥만 먹었다. 

 

메뉴판

혼밥을 하기에는 가격이 상당히 착하지 않다. 불고기에 성게알, 문어숙회 그리고 만재도 거북손이 끌렸지만, 식사 메뉴가 아니기에 멍게비빔밥(13,000원)을 주문했다.

 

고급스런 곳임을 알려주려는 듯, 유기 수저다. 길다란 접시는 앞접시가 아니라 수저받침이다. 

 

멍게비빔밥 납시오~
밑반찬 클라쓰
덜 익은 배추김치 / 역시나 덜 익은 열무김치
짜지 않은 어묵볶음 / 달지 않은 콩자반

늦은 오후에 갔기에 배가 많이 고팠다. 밑반찬이 먼저 나왔다면 기다림이 그리 길지 않았을텐데, 음식이 나오는데 10분 정도 걸렸다. 한꺼번에 나오니 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좋지만, 배고픔은 더 깊어졌다. 그나저나 비빔밥 하나를 주문했는데 반찬 가짓수가 많다. 양은 혼자 먹기 적당하게 나왔는데, 오이고추와 배추, 오이는 푸짐하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몰랐다. 포만감을 느끼는데 반찬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높다는 사실을 말이다. 참 반찬은 전체적으로 간이 슴슴해서 밥없이 그냥 먹어도 짠맛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집된장 아니 어릴적 할머니 집에서 먹었던 시골된장이다. 진하디 진한 된장은 간이 강해서 맹물을 넣어 염도를 낮췄다. 국물 한숟갈만 먹어도 깊고 진한 된장의 풍미가 느껴진다. 따로 공깃밥을 주문해 말아먹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멍게는 우렁쉥이로 불리며 암수동체다. 옆에 구수함이 강한 시골된장이 있는데도, 역시 멍게는 멍게다. 모든 내음을 다 이겨버리기 때문이다. 마포에 강은 있어도 바다는 없지만, 지금 내 앞에 깊고 푸른 통영 앞바다가 있다. 멍게, 치커리, 김가루 그리고 밥 아래에는 참기름이 있는데, 고기 먹을때 후식용 냉면처럼 양이 일절 푸짐하지 않다. 

 

비비기 전에 멍게부터 살짝 먹어본다. 초고추장 도움같은 건 필요없다. 그저 멍게 자체만으로도 향에 맛까지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난 통영 여행때, 왜 현지에서 멍게를 실컷 먹지 못했는지, 두고두고 후회하는 중이다.

 

한입만~

이런 실수를 다 하다니, 아무래도 배가 너무 고파서라고 해야겠다. 각각의 재료가 서로 섞어서 비빔밥으로 변한 비주얼을 담았는 줄 알았는데 없다. 그래도 숟가락에 올려진 멍게비빔밥을 여러컷 담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암튼 맛깔나게 비빈 후 첫입은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내가 찾던 그맛이기에 그저 좋았고 매우 몹시 좋았다. 허나 양이 적어서 중간중간 된장찌개와 반찬의 도움으로 포만감을 쌓아가야 했다는 건, 안 비밀이다.

 

멍게비빔밥에 초고추장이나 양념장은 필수인 줄 알았는데, 락희옥은 참기름만 있을뿐 별다른 양념장이 없다. 아마도 멍게향을 최대로 살리기 위한 주인장의 센스가 아닐까 싶다. 노란 알배추 활용법은 된장에 찍어서, 멍게비빔밥쌈으로 어떻게 먹어도 다 좋다.

 

멍게비빔밥을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다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을 거 같으니, 김치말이 국수도 먹어볼까나.' 하지만 마지막 한숟갈을 먹고 난 후, 추가주문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된장과 함께 고추에 배추, 오이를 먹고, 짜지 않은 어묵볶음에 달지 않은 콩자반까지 생각외로 포만감을 주는 반찬이다. 멍게비빔밥은 화려할 필요가 없고, 그저 주황빛깔 멍게만 있으면 된다. 그나전저나 양이 적은 건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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