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상진다방
별다방, 콩다방 등 세상에 다방은 많고 많지만, 진짜 다방이 아니다. 그 세대는 아니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많이 봐왔다. 최고의 레시피라는 다방커피, 한번은 마셔보고 싶은데 기회가 없었다. 철공소가 밀집해있는 문래동 어느 골목에서 레트로, 뉴트로가 아니라 리얼 다방 '상진다방'을 찾았다.
상진다방을 향해 가던 중, 한집은 파스타(마음의 온도)요, 한집은 백반(가평식당)이다. 점심을 먹기에는 살짝 이른 시간이라 찜만 했다. 그런데 점심은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먹었다.
문래동 철공소답게 바람와 함께 철(가루)의 맛(향)이 느껴진다. 두 곳의 식당을 지나니, 목적지인 상진다방이 얼핏 보인다. 문래동이 예술촌으로 바뀌면서 대로변은 새단장을 해 많이 핫해졌다지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오면 여전히 옛느낌이 남아있다.
올 봄(3월)에 구입한 하이엔드 카메라에 일러스트 효과가 있는 줄 이제야(10월) 알았다. 주로 A모드로 찍고, 그외 다양한 효과들은 그닥 필요치 않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요건 은근 괜찮다. 후보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아주 살짝 있어 보이는 거 같다.
1970년대에 오픈을 했다고 하던데, 시간이 멈춘 곳이다. 진짜 리얼 다방이다. 칼라테레비와 정수기 그리고 전자렌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다 1970년에 고정된 거 같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다방이 눈 앞에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칡즙은 자신이 없으니 넘기고, 쌍화차와 냉커피 중 무엇을 마실까? 최고의 레시피라는 다방커피냐? 노른자 동동 쌍화차? 결정은 제목에서이 스포를 노출했으니, 쌍화차다.
다방커피 레시피를 위한 3개의 원형통, 검은색은 커피 나머지 하얀색은 프림과 설탕이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4개의 사각통에는 쌍화차에 들어가는 견과류가 들어있다. 특이한 찜통같아서 주인장에서 물어보니, 잔을 따뜻하게 보관을 하기 스댕용기란다. 다방이 전성기던 시절에는 다방마다 다 있었다는데, 요즘은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됐다고 한다.
창가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사진 한장이 눈길을 끈다. "와썹맨이 왔어. 여기는 어디?"라고 외치는 박준형과 주인장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다. 요런 다방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 유튜브에서 봤다. tvN 유퀴즈온더블럭에도 나왔다는데, 요즘 책을 읽느라 방송을 멀리해서 고건 못봤다. 방송에 여러번 소개되면서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더니, 레트로에 뉴트로 인기는 여전히 고공행진인 듯 싶다.
잔부터 촌스... 아니라 예스럽다. 한약냄새가 살짝 나지만, 견과류가 있어 약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노른자, 이렇게 보니 메추리알인가 했다. 아주 작아서 쉽게 호로록 넘길 거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겁나 힘들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몸으로 터득했다.
티스푼으로 노른자를 살짝 들어보니, 차 속에 잠겨있는 부분이 엄청나다. 쌍화차도 뜨겁고, 찻잔도 뜨겁다. 그리고 노른자는 가장 먼저 먹는게 좋고, 먹을때 터지면 안된다고 한다. 더구나 쌍화차는 뜨거울때 마셔야 한다며, 식기 전에 먹으란다. 이걸 두고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나보다.
노른자 먹기 첫번째 시도, 입술에 노른자 감촉이 느껴졌으나 입안으로 보내지 못했다. 뜨거운 차가 먼저 들어오는 바람에 멈춰야했다. 그렇게 두어번 계속 입술에서만 놀다가, 쌍화차만 연거푸 마셨다. 이러다 노른자가 익어버릴 거 같아, 뜨거움은 참고 쏘옥~ 입안으로 보내기를 시도했다. 물렁한 느낌이 나더니, 입안에 노른자가 터지지 않고 도착했다.
이대로 그냥 목넘김을 해버릴까? 노른자를 날 거로 먹은 적이 없으니 살짝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기에 과감히 혀를 입천장 가까이 갖다 댔다. 뭔가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입안 가득 노른자가 퍼진다. 비릿할 줄 알았는데 전혀 없고, 노른자 특유의 고소함과 부드러움만 느껴진다. 한번에 성공하지 못해, 아랫부분이 익었는지 날것보다는 수란 느낌이 강했다.
오전 7시 30분 오픈이라기에 10시쯤 도착을 했더니 손님은 나뿐이다. 인근 철공소로 배달을 나간다고 하더니, 주인장은 편히 마시고 사진도 찍어요라고 말을 한 후 사라졌다. 아무도 없으니, 혼자서 일러스트 놀이 중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즘 레트로 열풍을 따라 60~70년대를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 많다. 그런 곳에 상진다방을 고스란히 옮겨도 뭐하나 어색하지 않을 거 같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쌍화차를 마실 수 없고, 입담 좋은 주인장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시간이 멈춘 거 같지만, 상진다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ps... 개인적으로 다방에 대한 추억이 하나 있다. 몇살때인지? 거기가 어디인지? 왜 거기에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마셨던 따끈한 우유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맛난 우유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흰우유를 무지 싫어하는데, 그때 마셨던 다방우유는 최고였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 그때 마셨던 우유는 진짜 우유가 아니라, 전지분유 혹은 탈지분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니면 커피에 타는 프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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