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영일분식 칼비빔국수
오랜만에 찾은 문래동, 노른자 동동 쌍화차만 먹고 갈 수는 없다. 좁은 철공소 골목을 걸으며, 가을을 만끽한다. 여기까지는 참 낭만적인데, 목적지는 참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배가 고프니깐. 일명 와썹맨 로드인 상진다방과 영일분식, 칼비빔국수 먹으러 출발이다.
파박파박~ 불꽃이 춤을 춘다. 철공소가 많은 문래동에서 용접을 하고 있는 모습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헌데 좁은 골목이라 튀는 불꽃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작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지금은 상진다방을 나와 영일분식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철공소가 많아 자칫 삭막해 보일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커다란 수세미가 덩굴째 주렁주렁 달려있고, 감나무에는 맛좋은 감이 있다. 삭막함 속 자연이 느껴지는 여기는 문래동이다. 왼쪽 감나무는 일러스트 효과로, 오른쪽은 미니 감나무인지 그냥 작은 열매인지 알 수 없으나 미니어처 효과로 담았다. 있어도 몰랐던 사진 효과, 종종 써먹어야겠다.
문래동이 예술촌이 되면서 젊은 감각의 신생 식당, 카페, 레스토랑이 많이 생겼지만, 개인적으로 터줏대감같은 오래된 집을 더 좋아한다. 영일분식은 예전부터 알던 곳인데 이제야 왔다.
유튜브(와썹맨)를 안봤더라면 더 늦게 왔을텐데, 상진다방에 왔는데 여기는 느낌적인 느낌상 코스처럼 느껴졌다. 점심 혼밥일때는 두가지를 명심하면 된다. 아주 늦게 가거나, 아주 일찍 가거나, 오픈 시간을 몰랐지만 11시면 한적하게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예상이 맞았다. 아직은 한산한 시간, 혼밥하는 분들도 은근 많다. 철퍼덕 앉아서 먹어야 하는 건 살짝 아쉽지만,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그나저나 맞은편에 앉은 엄마와 아들, 아이는 밥을 먹는둥 마는둥 관심은 온통 테이블에 있는 앞접시다. 아이에게는 마치 장난감처럼 보였던 거 같다.
같은 모양의 앞접시가 탑처럼 쌓여 있는데, 이를 하나하나 옮겨서 다시 쌓고있다. 아이의 손이 무지 깨끗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들이 사용할 그릇인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낭 두고 있는 모습이 거시기(?) 했다.
오픈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즉, 더 일찍 왔어도 될뻔 했다. 부담없는 가격인데, 국수와 밥이 무한리필이란다. 그런데 굳이 리필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양이 많다.
뚜껑이 없는 그릇이라고 해서 테이블에 올려진 김치 그릇에 바로 젓가락을 들이대면 안된다. 집게가 있다는 건, 앞접시에 덜어서 먹으라는 의미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텐데, 불편한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그릇 옮기기를 하고 있는 아이는 그나마 양반이다. 칼국수를 먹던 젓가락을 그대로 대접에 담긴 김치로 향했고, 그 다음은 안봐도 비디오다. "제발, 에티켓은 지키고 삽시다. 여기는 당신의 집이 아닙니다."
김치 위로 보이는 청양고수와 청양고추가 듬뿍 들어간 양념장은 아마도 칼국수용인 듯 싶다. 매운맛을 무지무지 좋아한다면 모를까? 칼비빔국수(7,000원)에는 굳이 양념을 더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완벽했으니깐.
만약 둘이 왔다면, 칼비빔국수와 칼국수를 같이 주문했을 거다. 비빔이 워낙 인기가 있어 주문을 했는데, 유부가 가득 들어있는 멸치국물을 마시자마자 여긴 칼국수구나 했다. 진한데 비릿하지 않고, 간도 강하지 않고 모든게 다 적당하다.
리필을 한번 해볼까 했지만, 기본 양이 어마어마하다. 상추를 살짝 옆으로 보내니, 알맞게 익은 김치와 오이가 있다. 주방에서 연신 오이를 썰고 있던데, 오이 인심 푸짐하다. 오이를 못먹는다면, 사전에 미리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워낙 얇아서 골라내기 어렵다. 푸짐한 고명에 칼국수 또한 푸짐하다.
파스타처럼 돌돌 말아서, 빨간맛이 강해 혹시 매울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비빔이니 달거나 새콤함이 강하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과함이 하나도 없다. 하루에도 수십그릇을 만들테고, 그렇게 몇십년을 했을테니, 양념보다는 간 조절이 비법이지 않을까 싶다.
양념뿐만이 아니라, 소면이나 중면이 아니라 왜 칼국수면을 사용했는지는 먹으면 바로 알 수 있다. 간조절 비법에 이어 면 삶기 달인이다. 탱탱함과 쫄깃함이 과히 압도적이다. 당분간 다른 식당에서 비빔국수를 먹지 못할 거 같다.
굳이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블로거의 숙명이랄까? 하나만 올리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칼국수는 자신 없지만, 만두는 남기면 포장이 가능하다. 비빔국수 마력에 빠져서 그랬는지, 만두는 그리 놀란만두가 아니었다.
빈 그릇을 찍을때 일러스트로 바꾸고 다시 사진 모드로 원위치 해야 하는데, 까맣게 잊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니 김이 모락모락나는 칼국수가 보인다. 서둘러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셔터를 눌렀다. 주방 모습과 함께. 다시 사진으로 되돌리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문래동 철공소는 밥시간이 정확한 거 같다. 이때가 12시 1분인데, 사람도 거의 없고 적막강산이다. 고요한 골목을 거닐며, 문래동을 지나 영등포로 향했다. 세차게 칼바람이 부는 어느날, 뜨끈한 칼국수 먹으러 가야겠다.
▣ 와썹맨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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