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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 금성관

익히 그 명성은 알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날씨 때문인 듯 싶다. 화려함으로는 단연 으뜸이었을텐데, 지금은 황량하기만 하다. 여기도 일제가 훼방을 놓았다고 하니, 더 씁쓸해진다. 금성관은 나주를 대표하는 문화재이니, 100% 복원을 하면 어떨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금성관의 가장 바깥에 있는 외삼문으로 세 칸 규모의 2층 문루이다.

외삼문 옆에 있는 안내문을 보면, 1872년 나주목 고지도가 나와 있다. 지도를 보니, 금성관은 무궁화 5개 정도 되는 특급 호텔이었을 거 같다. 나주평야에 영산강 등 물자가 풍부했던 곳이니 객사도 그 규모가 엄청났겠구나 하면서 안으로 들어왔는데, 고지도에서 보던 거와 달리 황량하기 이를데 없다. 여기에 흐린 날씨까지 더해지니 을씨년스럽다.

참, 금성관은 조선 초기 목사 이유인이 건립한 것으로, 선조때 크게 중수했고, 고종때 목사 박규동이 또다시 중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는 금성관 건물을 일부 개조해 군청 청사로 사용했다.(쳐죽일~~) 그로인해 금성관의 동·서익헌과 망화루 등은 일제때 없어지고 금성관만 남았다. 

 

건물을 다 없어지고 덩그러니 우물만...
금성관의 외삼문과 내삼문의 중간 있는 중삼문이다.

다 열린 공간이라 굳이 문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문으로 들어왔다. 요즘 VR에 빠져있다보니,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 모습으로 100% 복원하기 어렵다면, VR 콘텐츠를 만들어 휑한 공간을 가상현실로 채우면 어떨까 싶다. 

 

파란하늘이 보일락 말락

외삼문을 거쳐, 중삼문을 지나왔으니 내삼문이 나와야 하는데 없다. 대신 요런 터가 있다. 여기가 바로, 금성관의 가장 안쪽에 있던 출입문인 내삼문이 있던 자리다. 

 

금성관
역사가 느껴지는 순간

금성관은 나주목의 객사 정청이다. 객사는 관찰사가 관할 구역을 순행할 때 업무는 보는 곳이며, 중앙의 사신이 묵던 곳이다. 특히 정청에는 전패와 궐패를 모셔두고 망궐례를 행하던 공간이기도 했다. 사신을 접대하고, 왕정의 위덕을 펴서, 관부의 위엄을 세우는 곳이었다고 한다. 안에 뭐가 있는지 무지 궁금했지만, 건물에 손을 대면 안될 듯 싶어 여기까지만 봤다. 

 

파란하늘을 감질나게 봐도 좋다. 비만 내리지 말아다오.
금성관 동익헌

나주목 객사의 동쪽에 있는 건물로 관찰사가 나주에 왔을때 집무처로 사용했으며, 품계가 정3춤 이상의 관리가 묵었던 곳이다. 복원한 곳이니, 신밧을 벗고 올라갈 수 있다. 나주곰탕을 먹은지 얼마 안됐기에, 소화도 시킬겸 잠시 누웠다 갈까? 그러다 깊은 잠에 빠질 거 같아 신발조차 벗지 않았다.

 

뒤뜰이라고 해야 할까나. 여기서 봤을때는 그저 커다란 나무구나 했는데, 그냥 그런 나무가 아니었음을 잠시후 알게 된다.

 

금성관 서익헌. 나주목 객사의 서쪽에 있는 건물로 품계가 당하관(종3품 이하)인 관리가 묵던 곳이다. 건물 뒤로 보이는 나무의 정체를 밝히러 간다.

 

동익헌에서 봤을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엄청나다. 딱봐도 예사롭지 않은 나무다. 느낌적인 느낌상 금성관과 함께 모진 풍파를 이겨냈을 거 같다. 역시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로, 수령이 650년이다. 그냥 은행나무가 아니라, 은행나무느님이시다.

 

여백의 미라고 하기엔 너무 휑하다. 금성관은 이렇게 외치고 싶을 거 같다. "나 다시 (조선시대로) 돌아갈래."

안녕~ 담에 또 만나자.
푸른하늘이 계속되길 바랬지만, 여기까지.

하얀집 나주곰탕을 먹고 금성관, 나주목문화관, 나주목사내아 그리고 나주향교까지 뚜벅뚜벅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라 좋다. 금성관을 봤으니, 정수루를 향해 출발이다. 나주로의 역사여행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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