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 나주목문화관 - 나주목사내야 - 나주향교
강한 햇살은 없으나, 역시 여름은 여름이다. 금성관을 나와 본격적인 도보 여행을 시작하니, 바람은 불지만 습한 날씨탓에 기분 나쁘게 덥다. 그래도 지난해와 달리 폭염주의보가 없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가야할 곳은 많지만, 서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간다.
금성관을 나와 첫번째로 가야할 곳은 나주목문화관이지만, 가장 먼저 만난 곳은 정수루다. 이 누각은 나주목 관아문으로 선조 36년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동계 우복륭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정수루를 지나면 나주목 관아인 동헌인 외동헌(제금헌)과 내동헌(금학헌)이 있는데, 현재 내동헌이 목사내아만 남아 있다.
정수루에 있는 큰북은 나주 백성들을 위한 신문고였다고 한다. 정수루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나주목문화관이 있고, 왼쪽에는 나주목사내아가 있다. 지금은 완벽하게 알지만, 저때는 목사내아가 어디인지 몰라 나주향교부터 갔다. 순서는 달라졌지만, 골목골목이 연결되어 있어, 향교에서 목사내아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목(牧)이란 고려, 조선시대의 지방행정단위로 고려시대 중앙집권 정책으로 지방의 주요거점지역에 설치되었다. 성종 2년에 12목 중의 하나인 나주목은 현종 9년 8목으로 개편되면서 전남지방에서 유일하게 나주만이 목이 되어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나주는 조선시대의 나주목과 남평현이 합쳐진 고을이며 발라, 통의, 금산, 금성군으로도 불리웠다.
나주읍성은 고려 조선시대에 쌓은 성으로 조선 세조 3년에 성을 확장했고, 임진왜란 이후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성문은 4개로 동점문, 서성문, 남고문, 북망문이 부서져서 없어졌다가 현재는 모두 복원했다. 이중에서 2개의 문을 만났다.
나주 특산물로는 워낙 유명한 나주배, 나주평야에서 나온 나주쌀, 나주메론은 이날 처음 알았다. 흑산도에서 영산강으로 따라 올라온 돛단배에는 항상 홍어가 실려 있었다고 한다. 곰삭은 영산포 홍어는 나주만의 맛으로 자리 잡았다는데, 먹고는 싶지만 먹을 자신이 없다. 맑은 국물이 매력적인 나주곰탕과 영산강에 자리한 구진포는 예전에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곳으로 민줄장어가 많이 잡혔단다. 장어 한마리를 먹고 오는 건데,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포기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주목문화관을 나와 나주목사내아로 가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목사내아를 까묵었다. 문화관 근처에 있는 여행안내소에서 나주향교로 가는 길을 물어보니, 금성관을 오른편에 두고 쭉 가다보면 째깐한 박물관이 하나 나온다. 그 옆으로 골목이 있는데 거기로 가면 된다.
째깐한 박물관이라고 해서, 조그만한 박물관을 말하는 거구나 했다. 그런데 진짜 명칭이 째깐한 박물관이다. 신기함에 안으로 들어갔다가, 바로 얼음이 됐다. 무질서 속의 질서랄까? 뭔가 무지 많은데, 하나하나보면 다 소중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밀조밀하게 모아놓으니, 답답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째깐한 박물관의 전시물을 다 보려고 한다면, 하루종일 걸릴 듯 싶어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원래 목적이였던 나주향교로 가는 중이다. 해바라기는 8~9월에 개화를 한다고 하는데, 일찍 만나니 더 반갑다.
서성문을 지나니 나주향교가 나왔다. 여기가 분명 정문이 맞은 거 같은데, 문이 잠겨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라고 하더니, 아무래도 일반인은 관람을 할 수 없나보다.
아쉬움에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대성전을 바라봤는데, 어라~ 여기 작은 문이 하나 있다. 현재 나주향교의 출입문은 아까 그 문이 아니라, 이 문이다. 문이 잠겼구나 하면서 되돌아갔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 같다. 운 좋게 해설사 분을 만나 나주향교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칠한 국립 교육기관이다. 즉, 사립이 아니라 국립학교다. 명륜당은 강의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진에서 오른쪽 건물은 문과, 왼쪽 건물은 이과 기숙사라고 해설사 분이 알려줬다. 명륜관 양옆에 있는 작은 건물 역시, 오른쪽은 문과 선생이, 왼쪽은 이과 선생이 숙식을 하던 방이다. 그리고 명륜관 뒤로 보이는 산봉우리는 장원봉인데, 이름때문인지 장원급제한 나주향교 출신이 엄청 많았다고 한다.
금성관에는 65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면, 나주향교는 500년 된 비자나무가 있다. 나무 뒤에 보이는 건물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다. 문이 잠겨 있어, 여기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구나 했는데, 해설사분이 열어줬다. 아싸~~ 그런데 말만하면 다 열어주는 거 아닐까?
대성전은 향교의 중심건물로 공자를 중심으로 한 27위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대성전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다른 향교와 달리 나주향교만의 특징이 있는데, 우선은 규모, 그리고 대성전 벽흙은 공자의 고향에서 직접 가져왔다고 한다. 그리고 향교라면 유교적인 색체가 가장 강한 곳인데, 나주향교의 주춧돌을 보면 불교를 떠올리게 하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종교가 다르다고 배척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기 위함은 아닐련지.
나주목사내아는 조선시대 나주목사가 기거하던 살림집으로 상류주택의 안채와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일제때 군수 관사로 사용하면서 원형이 변형됐지만, 최근에 복원을 했다. 현재는 관람뿐 아니라 전통한옥 숙박체험 즉 민박이 가능하다.
당일치기 여행이니 숙박은 못하고, 대신 시원한 마루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혹시나 방문을 열고 누가 나오면 어떡하지 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구석구석 돌아 볼 생각은 안하고, 운동화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는 밖으로 나왔다. 왜냐하면 조선시대를 지나 일제강점기로 시간여행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독특한 나무구나 싶어 담았는데, 수령이 500년이 된 벼락맞은 팽나무란다. 두조각으로 갈라졌지만, 뿌리 깊은 팽나무의 특성에 따라 기적처럼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수미상관처럼 다시 정수루에 왔다. 다음 가야할 곳은 구 나주역이다. 옛추억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90년 전 그날의 함성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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