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 화성행궁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5대 궁궐이 있다. 궁궐은 임금이 거처하는 집이고, 행궁은 임금이 잠시 머무는 집이다. 궁궐에 비하면 협소하지만, 구중궁궐 느낌은 제대로 나는 곳 화성행궁이다.
수원화성 화서문을 시작으로 장안문에서 방화수류정까지 잘 걸어왔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쭉 나아가려고 했으나 화성 한바퀴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남은 수원화성은 다음에 걷기로 하고, 화성행궁으로 장소를 옮겼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자 성곽을 촉조했다.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군,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했다. 이 중에서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다. 정조는 현륭원 천봉 이후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을 거행했고,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무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했다고 한다. 정조가 승하한 뒤 순조는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해 정조의 진영을 봉안했다. 화성행궁은 576칸 정궁 형태였지만, 일제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됐고,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완료되어 2003년 일반에게 공개됐다.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이라고도 한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여기서 거행했다. 이때 그녀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었다고 한다. 중앙은 처소로 꾸며져 있고, 오른쪽에는 진찬연 장면을 부분 연출한 공간으로 정조대왕이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드리고 있다. 이날 그녀에게 12기의 소별미와 70가지의 음식 그리고 42개의 상화가 바쳐졌다고 한다.
봉수당과 연결되어 있는 장락당은 혜경궁 홍씨의 침전이다.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였던 정조는 한나라 태후의 거처였던 장락궁의 이름을 따 행궁의 내전인 장락당의 편액을 직접 써서 걸었다고 한다.
장락당에서 옆에는 행궁의 내당인 복내당이 있다.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뜻이고, 평상시에는 화성유수의 가족들이 거처하던 곳이라고 한다. 저곳에 왠 어린 아이(장금이)가 있나 했더니, 화성행궁은 대장금의 촬영지였단다. 이외에도 이산과 왕의 남자, 구르미 그린 달빛도 촬영지였다고 한다.
유여택은 평상시에는 화성유수가 거처하는 곳으로 쓰이다가, 임금이 행차하게 되면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곳으로 이용되던 건물이다. 건물 한켠에 뒤주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놨지만, 딱히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정리소는 을묘원행에서 펼쳐질 각종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기관이었는데, 화성성역이 끝난 후 외정리소라하여 정조를 비롯한 역대임금이 행사할 때 화성행궁에서의 행사준비를 담당하는 관청이 되었다.
비장청, 서리청, 남군영을 지나쳐 다시 신풍루 안으로 들어왔다. 봉수당으로 바로 가느라 아까는 놓쳤던 커다란 느티나무를 발견했다. 600년 이상된 노거수로 화성 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온 신령스런 나무라고 한다. 영목, 신목, 규목이라고 불러왔으며, 예부터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목신의 노여움을 사 어려움이 닥친다고 했다. 높이는 30미터, 둘레는 6미터에 이르는 나무였는데, 화재로 인해 훼손됐다가 나무 살리기 작업을 통해 현재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느티나무를 지나 다시 봉수당으로 왔다. 아까는 왼쪽에 있는 장락당으로 갔지만,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간다. 정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화령전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저 멀리 화령전이 보이지만, 여기서 잠시 뒤를 돌아봐야 한다.
낙남헌은 일제강점기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유일한 건축물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다른 곳과 달리 확실히 오래됨이 느껴진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해 군사들의 회식을 이곳에서 했으며,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문과 5명과 무과 56명을 선발했다고 한다. 또한 정조는 어머니의 회갑연을 기념한 양로연을 열었다.
제정은 화령전의 제례에 사용될 정화수를 뜨는 우물로 어정이라고 한다. 높이는 5.5미터이고 바닥에서 물이 고인 높이는 약 4미터이다.
운한각은 화령전의 정전으로 정조의 초상화를 보인한 건물이다. 운한은 임금이 가뭄을 걱정해 하늘에 기우제를 올릴 때 불려졌다는 시경의 시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정조대왕의 초상화는 평생 세차례 그려졌는데, 화령전에는 융복 입은 초상화를 모셨다. 화령전은 정조의 뜻을 받들어 검소하면서도 품격 있게 만든 조선시대의 대표적 영전이다.
한때는 민들레를 엄청 좋아했다. 장난삼이 후~하고 불기도 했는데, 지금은 뒤로 물러나야 한다. 모든 준비를 끝낸 홀씨들은 봄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곧 닥칠 위험을 감지하고, 꽃가루 알러지로부터 내 코를 보호하고자 서둘어 화령전을 빠져나왔다.
수원화성 한바퀴는 이루지 못했으나, 창덕궁 후원같았던 방화수류정에 경희궁보다 더 궁궐스러운 화성행궁까지 수원으로 떠난 첫번쨰 여행 대성공이다. 그러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열심히 걷고, 보고, 배웠으니, 이제는 먹을 일만 남았다. 수원 왕갈비가 먹고 싶었지만, 화성행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팔달문시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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