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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동 성안마을 강풀만화거리

절대 빨리 걸을 수 없는 골목길이 있다. 골목마다 보물찾기를 하듯, 정감어린 그림들이 발길을 꽉 붙잡는다.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걸으며, 사람내음 가득한 벽화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만화를 종이책으로만 보던 나에게, 웹툰을 알게 해준 강풀작가.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 성내동 강풀만화거리다.

 

지하철 5호선 강동역 4번출구에서 도보로 150m

서울의 서쪽 지역에 살고 있기에, 서울의 동쪽은 늘 멀게만 느껴진다. 목동역에서 출발해 28개 정류장을 지나야 강동역이 나온다. 환승은 하지 않지만, 약 1시간이 소요된다. 같은 서울 하늘이지만 강동역도 처음, 강풀만화거리도 처음이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많은 벽화마을이 있다. 하지만 뚜렷한 컨셉이 있는 벽화마을은 여기뿐이지 않을까 싶다. 오로지 강풀작가의 작품만으로 이루어 벽화마을이기 때문이다. 강풀만화거리는 강동구에 살고 있는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시리즈 '바보', '순정만화', '당신의 모든 순간', '그대를 사랑합니다' 원작을 재구성한 골목이다.

순정만화를 통해 웹툰을 알게 됐고, 미생을 알기 전까지 웹툰 = 강풀이었다.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어김없이 찾아서 봤고, 얼굴의 반이 눈이던 여리여리한 순정만화 취향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그림보다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더 집중을 하게 됐고, 웹툰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마을 지도를 보니 60개가 넘는 작품이 있는데, 바닥의 별표시를 따라가면 될 거 같다. 원래는 1번부터 순대대로 볼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발길 닿는 대로 내맘대로 돌아다녔다. 책장을 넘겨 만화책을 읽듯, 그림들이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니, 굳이 순서를 지킬 필요는 없다. 

 

벽화마을에 간다면, 이거 하나만은 꼭 지켜야 한다. 집집마다 동네분들이 다 살고 있으니, 첫째도 조용, 둘째도 조용히다. 눈이 부시게 날이 좋았던 봄날, 승룡이를, 김만석 할아버지를, 조순이 할머니를, 수영이를 만나러 간다.

 

나들이 왔어요? 순정만화 시리즈 원작 속 여주인공들. 
당신의 모든 순간

순간적으로 따라 할 뻔했다. 소리 지르면 뛰어라는 의미는 "앞으로 뛰어"가 아니라, "위로 뛰어"일 듯.

 

그대를 사랑합니다 주인공인 김만석 할아버지와 송이뿐 할머니. 웹툰에 이어 영화까지 너무 감동적이라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벽화를 보는데 자꾸만 영화 천장지구가 생각이 난다. 혹시 유덕화와 오천련 따라 하기?

 

군봉의 오후 그대를 사랑합니다 장군봉 할아버지
우리는 모둔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버지

만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느낌적인 느낌상 강풀 작가같다. 역시 안내문을 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강풀 작가가 강동구 골목골목에 신문을 배달했었고, 골목과 풍경에 대한 그때의 기억이 작품을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폐 키보드 알맹이로 만든 순정만화 시리즈 주인공들

아무래도 그때의 감동이 너무 컸기 때문인 거 같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주인공이 등장하면, 순간 울컥하게 된다. 벽화가 아무리 밝고 명랑하고 행복해 보여도 뭉클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다른 골목에 접어들면, 또다른 벽화가 반갑게 인사한다.
순정만화 주인공인 연우와 수영
수영의 일상은 담장이 허물어져서 사라졌지만, 연우의 일상은 여전히 남아있다.

제목 소풍. 원작 그대를 사랑합니다. '아내의 시한부 선고를 통보받은 날, 장군봉 할아버지 내외와 김만석 할아버지, 송이뿐 할머니는 그들만큼이나 오래된 자동차를 꺼내 타고 처음으로 함께 그들만의 소풍을 갑니다.' 오래전에 읽었는데도, 그림이 보니 그 장면이 또렷하게 생각이 난다. 

 

지도의 도움 없이 그저 발길닿는대로 골목을 걷다 보니, 승룡이네 집에 도착을 했다. 만화 속 집을 그대로 재연해 놓은 건가 했는데, 아담한 카페다. 

1층은 카페
승룡이네 집이지만, 다른 주인공들도 만날 수 있다. 

1층은 카페, 2층은 만화방으로 되어 있다. 승룡이네 집이니 강풀 작가의 작품만 전시되어 있는 줄 알았다. 순정만화 시리즈를 읽은 지 좀 됐으니, 오랜만에 다시 읽은 겸 2층으로 올라갔다. 그전에 제로페이로 아이스 카페모카를 결제하는 중이다. 

 

승룡이네 집을 먼저 왔더라면, 비치되어 있는 골목 지도를 따라 조금은 수월하게 다녔을 거 같다. 하지만 보물찾기하듯 다닌 것도 나쁘지 않았다.

2층은 도서관같은 만화방

당연히 강풀작가 작품만 있는 줄 알았는데, 슬램덩크를 비롯해 미생, 명탐정 코난, 원피스, 심야식당, 미스터 초밥왕 등 레전드 만화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우리 동네였다면 출근도장을 찍었을 텐데, 겁나 아쉽다.

그냥 1층에 있을걸, 괜히 2층에 올라온 거 같다. 견물생심이라고 봤으니, 안 읽을 수 없다. 웹툰으로 이끈 순정만화부터 보고 싶은 만화를 읽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이 순삭됐다. 그래도 더 머물고 싶었으나, 아직 봐야 할 벽화에 가야 할 곳들이 남아 있어 아쉽지만 일어났다.

 

가족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강풀만화거리는 골목마다 따스함이 몽실몽실
바보 속 한장면

성내동 강풀만화거리는 기존의 벽화마을과는 확실히 다르다. 다른 곳에서는 수동적으로 벽화를 구경했는데, 이번에는 벽화 하나하나마다 이야기가 있고, 감동이 있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저편에서 소환되어 웹툰을 처음 봤던 20대 시절로 잠시나마 갔다 온 거 같다. 천천히 걸으며 시작한 동네 한바퀴는 시간여행으로 끝이 났다. 신과 함께를 끝으로 웹툰을 멀리했는데, 오랜만에 눈물이 날 거 같은 웹툰을 찾아봐야겠다.

 

성내전통시장

승룡이가 달려가는 조형물 오른쪽 옆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200m 정도 이어진 기다란 골목형 시장이 나온다. 주인장 얼굴을 캐리커쳐 한 독특한 간판이 눈길을 끈다. 강풀만화거리에서 눈이 즐거웠다면, 이제는 입이 즐거울 차례다.

 

오르락 내리락

천호 지하보도라 쓰고 문화예술 공간이라 읽는다. 다양한 미술 전시회에 열리는 작은 갤러리이자, 피아노가 비치되어 있어 누구든 자유롭게 연주와 노래를 할 수 있는 소규모 공연장이다. 강풀만화거리에서 성내전통시장 그리고 오르락 내리락까지 성내동은 볼거리, 먹거리가 넘쳐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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