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천재 작가 이상, 이상의 집
문학교과서에서 처음 본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 그때 감상문은 이랬다. 겁나 어렵다. 그래서 시험을 앞두고 무작정 외웠다. 지금은 외울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작품은 어렵다. 특히 오감도, 최근에 아주 살짝 봤는데 오호호~ 겁나겁나 어렵다. 이상은 저항시인이기보다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가 아닐까 싶다.
이상의집이 여기에 있었는지 정녕 몰랐다. 서촌 우리은행 골목이면, 꽤 자주 왔던 골목이다. 그런데 여기에 그의 집이 있었다니,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더니, 그동안 내눈에는 음식만 보였나보다. 더구나 지난번에 혼자서 고기를 구워먹었던 그집이 바로 옆에 있다. 자괴감에 한동안 멍하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
지붕 위에도 이상의 집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는데도 몰랐다. 작년 12월에 재개관을 했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후에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으니 스스로가 무지 한심하다.
이상의 집은 그가 3살부터 20여 년간 머물렀던 집터의 일부다. 원래 집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집터도 여러 필지로 나뉘었고, 한때 철거 위기에 처했지만, 시민모금과 기업후원으로 매입해 보전을 했다고 한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3살때, 큰아버지 김연필이 데려와 이곳에서 성장을 했다.
1929년 경성고등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그해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면서 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당선됐다. 그러나 각혈로 건축기사를 버리고,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차려 경영을 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1934년에 발표한 오감도는 난해시로서 당시 문학계에 큰 충격을 일으켜 독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연재를 중단한 작품이다.(혼자만 어려웠던 게 아님을 그나마 위로받는 중) 1936년에는 날개와 지주회사 그리고 동해(1937년) 등의 소설도 발표했다.
거울 - 이상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고 /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 내 말을 못 알아 듣는 딱한 귀가 두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오 /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오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 못하는구료만은 / 거울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 가졌소만은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 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사업에 골목할께요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요만은 /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건물은 'ㄷ'자 형태의 한옥으로 되어 있다. 마당으로보이는 저 곳에 흉상이 있고, 안쪽에는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
이상 본인 그린 자화상은 아니고, 누가 그렸다고 알려줬는데 몹쓸 기억력이 문제다. 사인이 YSHO라고 되어 있으니 본인은 아닌 거 같고, 친구였다고 했던 거 같은데... 인물 검색을 해보니, 오호~ 꽤 닮았다.
'ㄷ'자에서 '|'에 해당되는 공간이다.
공간에 비해 책이 별로 없구나 했는데, 요렇게 숨어 있다. 시 75편, 수설 21편, 수필 19편, 서신 5편, 그림과 삽화 16점, 기타 자료 21점 등 150여점이 있다고 한다.
문학사상 창간호로 친구인 화가 구본웅이 그린 19세 무렵 이상의 초상화다.
한옥과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철문이 가운데에 뙇! 설마 혹시 감옥을 재현한 것일까? 이상은 구속은 됐지만, 감옥에서 죽지않았다. 일본에서 사상불온혐의로 구속됐고, 그로인해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1937년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럼 저 곳은 어떤 곳일까?
이상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나저나 겁나 어둡다. 극장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일까?
졸업앨범에 이상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니,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극장이라면, 계단 위에 있는 저 빛은 또 뭐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영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은 맞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이 주로 사용하던 공간을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즉, 이상은 어두운 공간을 좋아했고, 조그맣게 구멍을 뚫어 한줄기 빛만 들어오게 했다. 실제로는 계단이 보이지 않을만큼 엄청 어두워서, 아경모드로 촬영을 했다.
그의 작품이 어둡고 무겁고 어려운 이유가 혹시 공간때문은 아닐까 싶다. 밝은 곳에 있어야 성격도 밝아질텐데,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뿐이다.
어두웠던 공간을 나와, 다시 밝은 세상으로... 밤이 되면 자동적으로 어둠이 찾아오는데, 굳이 인위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역시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줄기 빛이 들어왔던 공간 밖에는 조각가 최수앙이 제작한 이상의 흉상이 있다.
시 제1호 - 이상
13人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길이적당適當하오.)
제第1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2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3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4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5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6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7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8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9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10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11의아해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제第12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제第13의아해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兒孩는무서운아해兒孩와무서워하는아해兒孩와
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中에1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운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2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운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2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워하는아해兒孩라도좋소.
그중中에1인人의아해兒孩가무서워하는아해兒孩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適當하오.)
13人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총 15부로 이루어진 이상의 오감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겁나 어렵다. 오감도는 조선중앙일보에 1934년 7월 24일 1호 ~ 8월 7일 15호가 연재되었다.
"반논리 그리고 반논리의 언어를 통해서 새로운 삶의 세계를 찾고, 그로부터 인간가치의 회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심층적 의미라 할 수 있다. 문제는 13인의 아해가 서로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아무도 남을 믿지 않고 서로를 무서워하는 현대인의 인간 관계를 인식함으로써 불신이 짓밟아 놓은 인간의 회생을 모색하고자 하는 꿈을 역전의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다. (출처- Daum백과)"
그가 직접 그린 삽화로 만든 엽서와 뒷면에 나와 있는 설명문을 봐야 알 수 있는 또다른 그림엽서까지 구입했다. 입장료는 없지만, 입장료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이상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오감도는 읽을 자신이 없으니, 날개나 다시 봐야겠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이상의집 옆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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