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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면 재밌다, 감동적이다, 그러그렇다, 별로다, 개망작이다 등등 딱 떠오르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다른 영화는 그랬는데, 이번에는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때까지 멍했다. 말모이를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먹먹해졌다가 감동까지 받았는데도, 뭔가 불편했다. 이유는 어떤 캐릭터때문이다. 


싸우다 친해진다더니

영화 소수의견에서 변호사로 만났던 유해진과 윤계상은 말모이에서 다시 만난다. 까막눈의 소매치기 김판수와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으로 만난다. 영화 첫 장면에 류정환(윤계상)이 등장하기에 주인공이로구나 했는데, 둘다 주인공은 맞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은 김판수(유해진)이다.

둘이 만나야 사전을 만들텐데, 그들사이의 접점이 너무나도 없다. 그러다보니, 영화의 전체 맥락과는 살짝 어긋난 브로맨스가 초반에 펼쳐진다. 부잣집 도련님의 가방을 훔쳐라. 어리버리 소매치기다보니 자신의 흔적을 남기도 떠난다. 캐릭터 설정상 중요한 부분인 듯 싶으나, 굳이 싸움박질에 슬랩스틱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왜냐하면 둘 사람의 연결고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류정환이 김판수를 탐탁지 않게 봐야, 엄청난 오해가 쌓이고 풀리면서 절친이 되니 이해해주기로 했다. 싸우다 친해진다는 말처럼, 까막눈 김판수는 한글을 배우게 되고, 류정환과 함께 우리말사전을 만드는데 일원이 된다. 


말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뜻이 모인다

말모이는 말을 모으다라는 의미다. 즉,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느낌이 온다. 우리만 사전을 만든다. 사전쯤이야 쉽게 만들 수 있을데지만, 예상치 못한 강적인 시대가 등장하게 된다. 1941년, 일제강점기다. 4년만 기다리면 독립이 될테고, 그때 마음 편히 만들면 되겠지만, 아무리 용한 점쟁이도 광복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33년 북만주에서 류정환은 주시경 선생이 미처 끝내지 못한 원고를 들고 경성으로 와, 조선어학회 대표가 된다. 일제를 속이기 위해 서점을 운영하고 잡지를 만들고 있지만, 그들 몰래 우리말 사전을 제작중이다. 

영화 말모이는 뼈대는 사실이지만, 줄기나 잎은 감독의 상상으로 만든 허구다. 말모이가 진짜 있고, 주시경 선생이 완성하지 못했고, 1947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됐다. 여기까지는 팩트고, 영화 속 인물이나 스토리는 허구다. 그런데 일제가 대동아 전쟁으로 어린 학생들까지 총알받이로 내몰고 있었고, 창씨개명이 극에 달할때이니, 우리말 사전을 만든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반역일 것이다. 


한사람의 열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

말은 민족의 정신, 글은 민족의 생명이다. 일제가 창씨개명에 열을 올렸던 이유는 아마도 조선을 영구히 다스리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선의 뿌리를 뽑아야 하고, 정신을 빼앗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가 한글을 잊어버리고, 일본어가 자국어가 된다면, 우리는 한국사람이 아니라 일본사람이 되어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을 버릴 우리가 아니다. 글을 쓰거나 읽을 줄은 모르지만, 말은 할 줄 안다. 까막눈일지라도 사전을 만드는데 일등공이 된다. 왜냐하면 표준어를 정하기 위해서는 사투리를 모아야 하는데, 주인공답게 김판수가 영화 범죄와의 전쟁처럼 멋들어지게 등장을 한다. 이때만 해도 영화의 지분은 웃음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시대극답게 결말이 어떨지는 정해져있다. 시대가 시대이니, 해피엔딩일지라도 평탄하지만은 않을 거라는데 50원을 건다. 없으면 30원.

 

그럴수록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김판수에게는 가족이냐, 사전이냐가 발길을 잡고, 류정환은 다 지은 밥에 숟가락만 올리면 되는데 밥상이 엎어졌다. 김판수는 가족을 선택하고, 류정환은 시대의 흐름에 따르게 된다. 하지만 일본어 이름보다 순희가 좋다는 어린 딸, 엎어진 밥상대신 튼튼하고 단단한 찻상을 찾게되면서, 둘의 관계는 더 돈독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믿게 된다. 


류정환에게 한사람의 열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더 큰 걸음이라고 알려준 인물은 아버지다. 그랬던 그에게 30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던 것일까? 영화가 끝나도 불편했던 이유는 류완택(송영창)때문이다. "그때는 조선이 독립될 줄 알았다. 내가 어리석었다. 30년이 지나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그아버지의 그아들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그런데 30년이라면, 믿음을 저버릴 수 있을까? 헛된 희망이라고, 독립따위는 없다고 단정짓을 수 있을까? 4년 후 독립이 되고, 아들 보기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아니다. 우리말 사전을 만든 사람이 내 아들이라고, 그러니 나도 독립운동가라고 친일흔적을 속이고 친미가 되지 않았을까? 학교 이사장이라는 타이틀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을테니깐.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강한 캐릭터였기에, 그의 등장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설마, 설마, 설마... 말모이에서 그의 캐릭터는 스포이므로, 여기까지. 


말모이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에 갔을때, 영화 말모이를 봤을때, 같은 감정을 느꼈다. 우리 말과 글이 있어 참 다행이며, 이렇게 멋진 한글을 만들고 지켜낸 분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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