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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는 아니고 강원도 강릉에서 한나절치기를 했다. 8월의 마지막날, 그냥 문득 갑자기 여름아닌 가을같은 여름바다가 보고 싶었다. 해수욕은 아니고, 그저 먼발치에서 바다가 보고 싶었다. 간 김에 바다도 보고, 먹부림도 하고, 여름의 끝자락을 강릉에서 보냈다. 동해바다를 보러가기 전, 식후경부터 해야 한다. 뜨끈뜨끈 부들부들 초당 순두부 맛보러, 토담순두부로 향했다.

 

지긋지긋한 폭염도 세월 앞에는 장사없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는 가을이 저만치 다가온 듯하다. 높아진 하늘과 불어오는 바람은 가을이 확실한데, 여름의 여운이 참 길기도 하다. 가을을 질투하는 여름, 참 짓궂다. 그나저나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3대의 KTX를 동시에 보는 건, 드문 일이니깐. 정확히 따지면 3대가 아니라, 총 4대였다. 강릉선 KTX까지 다 담을 수 없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두어시간을 달리고 달려, 강릉역에 도착을 했다. 까마득한 옛날같은데 올해 3월 평창 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기를 보기 위해 강릉에 왔었다. 2월 평화 올림픽에서 4월 남북의 만남과 6월 싱가포르를 지나, 9월 종전선언(개인적으로 될 것으로 예상)까지 기록적인 폭염만큼 잊지못할 2018년이 될 거 같다. 평화로 가는 시작점이었던 강릉(& 평창)에 또다시 왔다. 출발은 즉흥적이었으나, 기차에서 나름 여행 스케줄을 짰다. 강릉역에서 버스를 타고 토담순두부로 간다. 밥부터 먹은 후, 바로 옆에 있는 허균허난설헌기념관에 간다. 강원도에 왔으니 바다는 필수코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강문해변으로 걸어서 간다. 바다 구경 후, 분명히 허기짐이 느껴질테니 물회로 마무으리. 

 

강원도 한나절 여행코스는 서울역 - 강릉역 - 토담순부두 - 허균허난설현 기념관 - 강문해변 - 해파랑 물회 - 강릉역 - 서울역    

 

강릉역에서 202-1 버스를 타고 9번째 정류장(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에서 내린다. 파란하늘아래 발그레한 배롱나무꽃이 멋짐을 분출하고 있다. 자연이 만든 색의 조합은 안어울림이 없다. 처음에는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이내 조화로움에 끄덕이게 된다. 

 

예쁘니깐, 한번더.

식후경이니, 볼거리 코스로 가볍게 지나쳐, 토담순두부로 향했다. 알쓰신잡에 나왔던 곳이란다. 요즘 짬뽕 순두부가 대세라고 하던데, 담백하고 부드러운 두부 그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어, 여기를 선택했다. 

 

들어가는 내내 들어오는 차도 없고, 사람도 없기에 점심시간인데 평일이라 많이 한산하구나 했다. 그것도 잠시, 문을 여는 순간 헉~ 사람이 많아도 디따 많다. 빈자리가 없으면 어쩌지 했는데, 마치 나를 위한 남겨놓은 듯, 딱 한테이블이 비어있다. 지방에 오면 혼밥력이 급상승하는 1인이라,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는 주문을 했다. 전골은 2인부터이니, 순두부 백반(8,000원)을 주문했다.

 

두부는 대표적인 슬로우 푸드인데, 완전 스피디하게 나왔다. 주문을 하고 두부는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라, 새벽에 미리 다 만들어 놨으니 당연히 빨리 나올 수 밖에 없다. 1인분이라서 쟁반은 굳이 치우지 않은 거 같다. 쟁반채 나오는 밥상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요런 밥상을 많이 받게 된다. 처음에는 살짝 어색, 거북했는데,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한다. 

 

미역줄기 볶음과 양념이 거의 안된듯한 어묵은 구색용인 듯 싶고, 배추김치보다는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는 무말랭이가 좋았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건, 깻잎장아찌. 순두부는 간장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깻잎이 신의한수였다.

 

고슬고슬 밥에 따끈한 순두부 한 뚝배기, "한뚝배기 하실래요"는 이럴때 쓰는 표현일 듯. 강원도까지 가서 무슨 순두부야 할테지만, 어른이 되면 이맛을 알게 된다. (없을)무맛같지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으면 서울에서 먹던 두부와는 확연히 다른 맛이 느껴진다. 화려함을 알수도 없는 순박과 순수인데, 사실은 모르는게 아니라 모르는척을 하고 있었던 거 같다. 세상을 통달한 듯, 깊고도 깊은 맛이기 때문이다.

 

간수로 인해 어느정도 간이 되어 있으니 그냥 먹어도 된다.
하지만 간장을 더하면, 맛의 깊이가 달라진다.
두부에 없는 아삭아삭함은 무말랭이가 채워준다.

간장과 무말랭이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요물이 나타났다. 밥에 순두부를 올리고, 깻잎 한 장을 살포시 올리면, 순두부 3합이 된다. 정말 화려함이란 없는데, 친근하고 정겹다. 간장이 믹스커피라면, 깻잎은 티오피다.

 

먹다보면, 깻잎 리필은 필수다. "저기요"라고 가볍게 손을 들고 물어보니, 뒤쪽을 가리키면서 셀프란다. 뒤를 돌아보니, 떡하니 물이 아닌 반찬은 셀프라고 나와 있다. 부족한 깻잎과 무말랭이를 추가한 후, 다시 공격적으로 돌진했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았던 죄랄까? 만석이라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어김없이 내 옆, 내 앞에 사람들이 앉았다. 어르신이니, 딱히 이건 예의가 아닌 거 같은데요라는 말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먹기만 했다. 뭐라도 있어 보이고 싶어, 카메라는 치우지 않고, 테이블에 떡하니 올려놨다. 이래서 피크 시간대에는 혼밥을 피하는게 좋은데, 한나절치기이니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나의 먹성은 지치지 않고 앞으로 달릴 뿐이다. 깻잎 원정군의 지원아래, 먹고 또 먹고 그리고 또 먹는다. 어릴때는 양념없는 순두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참 많이 좋아한다. 

 

든든히 잘 먹은 후, 배롱나무꽃길을 따라, 토담순두부에서 바로 옆집으로 이동했다. 

짬뽕순두부에 대한 궁금증이 여전히 있지만, 그럼에도 순백의 순두부가 더 나은 거 같다. 나이탓일 수도 있고, 면이 아닌 두부에 대한 거부감일 수도 있고, 대세를 따르기 싫어하는 아웃사이더 기질때문에, 어찌됐든 순두부는 그냥 하얀 순두부일때가 좋다. 더불어 먹거리와 볼거리가 붙어 있으니, 최적의 동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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