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을 축하해~" 서울의 지하철 (in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지하철이 반세기를 맞이했다니, 놀랍군 하고 싶지만 그리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태어나기 전에 지하철이 있었고, 기억조차 없는 아기였을 때 지하철을 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로 버스를 더 이용하고 있지만, 약속시간을 지켜야 할 때는 무조건 지하철을 탄다. 50년 동안 800억 명을 싣고 지구 5만 바퀴를 달려온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 서울의 지하철이다.
50주년이니, 그 시작은 언제일까? 1974년 8월 15일로, 광복 29주년이다. 최초의 지하철은 종로선으로 노선은 서울역 - 시청앞 - 종각앞 - 종로 3가 - 종로 5가 - 동대문 - 신설동 - 제기동 - 청량리이고, 나머지 경인선(서울-인천), 경수선(서울-수원), 경원선(서울-원산) 노선은 철도를 전철화해 지하철 열차와 직통 운행하도록 했다.
전시는 땅속을 달리는 열차, 레일 위의 서울 그리고 나는 오늘도 지하철을 탑니다로 3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땅속을 다리는 지하철이 생기기 전, 땅 위를 달리는 전차가 있었다. 69년을 운행한 전차는 1968년 운행을 중단했지만, 지하철은 네버 엔딩 운행이지 않을까 싶다.
땅속을 달리는 열차
1970년 10월 30일 양택식 서울특별시장이 종로 네거리의 보신각 앞에서 수준점을 타정할 때 사용했던 망치이다. 측량기준점이 되는 수준점을 설정하는 것은 지하철 1호선 건설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 수준점을 기준으로 지하철 선로의 깊이와 터널 등의 높이를 정했다.
서울 지하철 개통은 1863년 런던에서 최초의 지하철이 탄생한 이후 111년 만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1927), 중국(1969) 그리고 북한(1973)에 이은 네 번째 탄생이다.
지하철을 두고 찬성보다는 반대가 많았다. 왜냐하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땅을 뚫고 이루어지는 대공사이기 때문이다. 경제부총리는 서울에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할 정도로, 지하철 건설은 큰 모험이었지만, 교통난 대책의 유일한 해결책이기도 했다.
동대문역 4호선 문화유산 보호 공사를 설명한 조감도이다. 문화유산 보호 공법이 시작된 것은 1호선 남대문, 동대문 지하 공사 때이다. 지하철 노선이 확정된 이후 문화재 관리위원회는 국보 1호인 숭례문과 보물 1호인 동대문 옆을 가까이 지나가는 노선에 강력히 반대했고, 공사는 결국 중단됐다.
기술진단, 타당성 심의 등을 거쳐 지정유산 현상변경을 허거 받고, 코르크를 샌드위치 구조로 만들어 진동을 방지하는 방진공법을 도입해 문제를 풀어나갔다.
3년 4개월 만에 9.54km에 이르는 종로선 구간을 완공했다. 광복절을 기해 이루어진 지하철 1호선 개통식은 광복절의 감격과 더불어 시민들의 큰 기대 속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개통식 한 시간 전 제29회 8·15 경축 기념식에서 육영수 여사가 총격을 입으면서 개통식은 대통령의 참석 없이 치러졌다.
1호선 건설은 오랫동안 기술이 집약된 일본의 기술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고, 차량 역시 일본에서 수입했다. 하지만 1977년부터는 국산 전동차를 제작해 운행했고 점차 토착화된 건설기술력을 확보해, 2기 지하철부터는 순수한 우리 기술로 건설하고 해외 건설공사에 기술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전동차는 공중에 설치된 전선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바다 레일 위를 운행한다. 차체는 운전실을 갖는 제어차와 동력을 가진 전동차, 동력차에 끌려가는 부수차로 구분된다. 차량 1칸은 연결기로 연결해 1개의 편성을 이룬다. 1칸은 20m의 길이로, 초기에는 6칸 1 편성이었으나 점차 많은 인원을 수송하기 위해 지금은 10칸에 이른다.
지하철은 자동차와 달리 정해진 레일 위를 달리기에, 운전대에는 방향을 조종하는 핸들이 아니라 속도를 제어하는 레버와 브레이크가 있다. 앞, 뒤로 운전실이 있는데, 앞은 기관사가 전동차 운전, 차량 고장 시 조치 업무를 하고, 뒤는 전실에서 차장이 승객의 승하차 확인 및 출입문 취급, 안내방송 등을 담당한다.
레일 위의 서울
1호선 개통 후 약 10년 뒤, 강북과 강남을 순환하는 2호선과 도심과 교외를 X자로 연결하는 3·4호선이 완공되면서 본격적인 지하철 시대가 열렸다.
지하철-버스 환승권은 지하철 이용객의 버스 이용 편의와 연계수송체계의 정착을 위해 1989년 10월부터 발매되었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할때만 사용할 수 있었단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1991년부터는 지하철 승차권과 버스 환승권을 함께 판매했다. 그나저나 가격이 250원이라니 놀랍군!
시청역에서 을지로입구와 을지로 3·4가를 지나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 지하철이 아니라 걸어서 갈 수 있다. 을지로구간의 완공과 함께 을지로 지하도상가가 생겼는데, 3.3km를 지하로 걸어 다닐 수 있게 했다. 을지로 지하도상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지하도상가이다.
지하철역으로 계획되어 만들어졌으니 계획이 바뀌어 이용되지 않은 역이 있다? 없다?
정답은 있다! 유령 승강장은 신설동역, 영등포시장역, 신당역, 신풍역으로, 뮤직비디오 촬영현장, 게임회사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은 일상의 모습이지만, 그때는질서 캠페인이 필요했다. 1987년 4월 20일에 있었던 지하철 질서 지키기 캠페인 모습으로 102개 역에서 승객들을 승차 지점에 두 줄로 세우고 내린 뒤에 차례로 타도록 유도했다.
강남역 뉴욕제과와 신촌역 그레이스 백화점 그리고 종각역 종로서적은 만남의 장소였다. 빵집과 서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레이스는 현대 백화점으로 변했다.
나는 오늘도 지하철을 탑니다
지하철은 신문 읽기 참 좋은 장소였다. 스포츠 신문보다는 무료로 나눠주는 무가지 신문을 정독했는데, 지금은 내 손 안의 디지털로 신문이 아니라 게임이나 영상을 본다. "낱말 퍼즐이 깨끗한 스포츠 신문을 만나면, 기분이 조크든요~"
강남역은 1997년부터 27년간 가장 이용객이 많은 역인데, 올 상반기에는 잠실역(155,229명)이 강남역(151,607명)을 역전해 1위가 되었단다. 환승 인원이 가장 많은 역은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신도림역(277,033명)이고, 2위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222,447명)이다.
혹시 푸시맨이라고 아시나요? 1990년 신도림역과 잠실역 등 혼잡도가 심한 지하철역 20여 곳에 질서 안내요원을 배치했다. 승객을 열차 안으로 밀어 넣어서 푸시맨이라 불렀다. 지옥철이던 시절에 있었던 실화로, 푸시맨은 2000년 통계청의 한국 표준직업분류에서 정식 직업으로 인정받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배에서 급한 신호가 오면, 모든 신을 소환해서 착하게 살겠다는 빌고 또 빌었다. 지하철을 1시간 이상 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던 시절에는 역마다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조사까지 했다. 좋은 추억도 있을 텐데, 지하철 하면 화장실이 가장 먼저 생각나지만, 운이 좋게도 불상사는 없었다.
전차와 달리 지하철은 백세 인생은 살지 않을까 싶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그리 빨리 등장하지 않을 테니깐. 서울 지하철 개통 50주년 지나온 반세기를 축하하며, 앞으로의 반세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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