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 가옥 & 미술관
박물관을 좋아하지만, 업로드는 쉽지 않다. 우선 사진이 겁나 많고, 그만큼 자료도 방대하기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쉬운 길로 가려고 했다. 가옥과 미술관이 떨어져 있는 줄 알고, 이번에는 가옥만 담아야지 했다. 그런데 한 공간에 있다. 작품이 그리 많지 않음을 위안 삼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옥 가옥 그리고 미술관이다.
창덕궁은 자주 갔지만, 그 언저리에 있는 원서동은 처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마을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아는 동네이다. 70도짜리 소주를 마셨던 양조장 삼해소주가가 근처에 있다(하단 링크 참조). 암튼 종로01 마을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고희동 미술관이다.
춘곡 고회동 화백은 서울 비파동 출생으로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해방 그리고 6.25전쟁까지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인물이다. 역관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4세에 관리 양성 목적 기관인 관립한성법어학교에 입학해 프랑스어를 배우던 중 서양화를 처음 접하게 된다.
1904년 대한제국의 관리가 되고, 이후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선진 문하에서 취미로 동양화를 배우던 중 일본에서의 미술 연구 출장 명령을 받아 1909년 동경미술학교 양화과에 입학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가 됐지만, 서양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았던 탓에, 1920년 후반 동양화로 전향하게 된다.
이 집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 직접 설계한 한옥으로 41년간 생활한 곳이다.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의 절충을 시도했으며, 지상 1층의 안채와 사랑채로 나눠져 있다.
2000년대 초반 가옥이 헐릴 위기에 처했지만, 북촌 주민과 시민단체에서 보전운동을 펼쳐 2004년 등록문화재 제84호로 등록되었다. 종로구에서 매입해 복원 및 보수공사를 통해, 고희동 화백의 화실과 사랑방을 재현하고 가옥이자 미술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료실은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4개의 섹션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작은 고리를 당기면 사진 자료가 짠하고 나타난다.
고희동 가옥은 ㅡ자 형태의 안채와 ㄷ자 형태의 사랑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의 배치를 보인다. 1918년 건립당시에는 사랑채는 안채와 같은 ㅡ자형 평면이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화실과 사랑방을 덧붙여 증축하고 규모를 확장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고희동의 현존하는 유화는 3점으로 모두 자화상이다. 정자관을 쓴 자화상은 두루마기를 입고 정자관을 쓴 조선 사대부로 본인을 표현했다. 이는 신분을 명시함과 동시에 민족적 자긍심이 발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은 짙은 감색 두루마기를 점잖게 입은 모습이다. 다소 거칠게 칠한 점으로 보아 동경여대에 제출한 정자관을 쓴 자화상을 그리기 위한 습작으로 추정된다.
부채를 든 자화상은 전통적 표현방식의 틀을 깨고 본인을 더욱 개성 있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냈다. 이는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고희동의 근대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자화상이다.
한여름 휴식을 취하며 상의를 열고 부채를 든 구체적인 형상의 인물 뒤에는 서양식 책과 풍경화 등의 소품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당대 신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하기 위한 작가 새인의 개성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서양화가로서의 삶을 지속하지 못하고 1930년대 들어 완전히 동양화로 전향하게 된다. 서양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작가에 대한 후원이나 작품의 매매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경제적 어려움과 화가로서의 입지마저 불안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동양화로 전향했지만, 그간 습득해 온 서양화법을 적용해 기존 전통 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상의 사실적 묘사, 원근법, 서양화식 채색법 및 음영법 등이 가미된 새로운 형식의 회화를 선보였다.
그는 1960년 4·19혁명 이후 민주당 공천을 받아 오늘날 국회의원 선거에 해당하는 참의원 선거에 나섰고 당시 74세의 나이로 당선됐다. 영국의 화가이자 위대한 정치가였던 윈슨턴 처질을 롤모델 삼아 더 이상 미술계가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 정치인의 길을 택했다.
현대미술관 건립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그렸지만, 불과 8개월 뒤 5·16군사쿠데타로 인해 의원직을 상실하고 마지막 사회적 공헌을 실현하지 못한 채 1965년 향년 80세로 타계했다.
원서는 창덕궁 후원의 서쪽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그의 가족은 3대가 함께 살았다. 초기에는 64평 규모였으나, 한국전쟁 이후 지금의 마당 부지를 합필하고 건물을 증축해 나가며 163평 규모를 갖추게 됐다고 한다. 장문의 안내문을 정독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방에 앉아서 영상을 2번 봤다는 거, 쉿~ 비밀이다.
2020.10.20-70도짜리 소주를 원해 서울 양조장 삼해소주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의미는 투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권리는 포기하지 말고, 권력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하루가 됐으면 합니다. 참고로 저는 4월 5일에 사전투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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