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 락희옥 마포본점
봄의 전령사로 도다리쑥국을 먹었는데, 사실 도다리의 제철은 6~9월이다. 그런데 왜 먹느냐? 여린 봄쑥은 지금이 아니면 먹기 힘들기 때문이다. 고로, 해산물을 기준으로 봄의 전령사는 도다리보다는 멍게다. 바다향 가득 품고 있는 주황빛깔 멍게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공덕동에 있는 락희옥 마포본점이다.
락희옥은 2020년에 처음 알았고, 그때부터 봄소식이 들려오면 어김없이 멍게비빔밥을 먹으러 간다. 왜냐하면, 별다른 양념 없이 오롯이 멍게만으로 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참기름은 인정, 하지만 초고추장과 같은 강한 녀석은 멍게 맛을 해쳐서 싫다. 락희옥은 브레이크 타임이 없어, 한산한 분위기에서 혼밥을 즐기기 위해 언제나 느즈막에 간다.
전체적으로 사악한 가격이지만, 식사메뉴는 나름 합리적이다. 메뉴가 많지 않으니 도장깨기를 할 만한데, 봄에는 멍게비빔밥을, 여름에는 김치말이국수를 주로 먹는다. 지금은 3월로 봄이 오고 있기에, 통영에서 직송한 멍게로 만든 멍게비빔밥(13,000원) 먹을 거다.
멸치볶음과 배추김치 그리고 알배추와 오이, 오이고추는 변함이 없다. 반찬 중에서 바삭하고 덜 달고 더 고소한 멸치볶음을 가장 좋아한다.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까지, 오이를 쌈장에 찍어서 와작와작 씹어 먹는다. 직접 만든 쌈장이라서 알갱이도 있고, 맛은 덜 짜고 덜 달다.
5년째 락희옥에서 멍게비빔밥을 먹다 보니, 진한 국물 속에 냉이가 들어 있다고 확신을 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또 다른 봄의 전령사 냉이가 진한 된장찌개 속에 숨어 있다. 시판용이 아니라 시골집에서 가져온 된장으로 끓인 듯한 된장찌개 같다. 때깔이 진한만큼 맛도 진하다(짜다)는 거, 안 비밀이다.
계절의 변화는 참 무섭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굴과 매생이 그리고 대방어회를 사랑한다 했는데, 이제는 주황빛깔 멍게를 사랑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하지만, 나의 입맛은 계절을 너무 탄다.
멍게를 중심으로 양쪽에 김가루와 상추 계통의 채소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아래에는 밥과 고소함을 담당하고 있는 참기름이 있다. 참, 멍게는 날 것 그대로이며, 양념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멍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양념이 되기 때문이다.
쐬주를 부르는 한입만인데, 함께하지 못하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탱글탱글한 식감은 거들뿐, 입에 넣자마자 퍼지는 진한 바다 내음에 취해버렸다. 캬~ 몸은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 있지만, 영혼은 경상남도 통영시로 공간이동을 했다.
멍게만 쏙 골라 먹고 싶지만, 배가 부르지 않으니 밥과 같이 먹어야 한다. 멍게가 다치면(?) 아니 되므로, 설렁설렁 비빈다. 작업이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달리자~
멍게비빔밥 한 입 먹고, 진한 된장찌개로 입가심을 하다 보면, 무한 루프에 빠지게 된다. 멍게도 향으로는 절대 뒤지지 않는데, 이 집 된장찌개도 만만치 않다. 이를 두고 용호상박이라고 할까나? 따로 노는 듯싶어도, 결국은 하나가 된다. 멍게가 조금 앞서 있다는 거, 된장찌개한테는 비밀이다.
국밥류에는 깍두기나 김치를 같이 올려서 먹어야 하지만, 멍게비빔밥처럼 개성이 강할 경우에는 단독플레이를 해야 한다. 반찬이 부실하다면 남기는 방안도 나쁘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면 밥대신 알배추에 반찬을 올려서 쌈으로 먹는다. 바로 한그릇 더를 외치고 싶지만, 이눔의 위는 주인 말을 너무 안 듣는다. 하지만 괜찮다. 봄은 이제 막 도착했으니깐.
2023.06.26 - 여름이니깐 김치말이국수 공덕동 락희옥
2021.03.10 - 봄을 먹다 도다리쑥국 공덕동 락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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