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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만남의 장소 창천동 독수리다방 (feat. 구신촌역사)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강남역 뉴욕제과와 신촌 독수리다방은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다. 뉴욕제과는 2012년에, 독수리다방은 2005년에 폐업을 했다. 추억 속 그곳으로 남을 줄 알았는데, 독수리다방은 8년이 지난 2013년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는 2층 건물, 지금은 8층 건물 꼭대기에 전망 좋은 카페로 컴백을 했다.

 

독수리약국 아니고 독수리다방은 저 위에~

SINCE 1971. 독수리다방이 오래 된 줄 알았지만, 1971년에 영업을 시작한 줄은 몰랐다. 정식 명칭은 독수리다방인데, 7080년대 단골들은 독다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2005년에 문을 닫았으니 한번은 가봤을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다. 

신촌에서 누군가와 만나자고 약속을 하면, 독수리다방 앞이 아니라, 신촌역 현대백화점 앞에서 주로 만났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독수리다방 세대는 아니고, 민들레영토 세대라 할 수 있다. 옛추억은 없지만, 혹시나 예전 모습이 남아있을까 싶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간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2층 건물이었다~

1971년에 문을 연 독수리다방은 1970~80년대 대학생들의 아지트였다. 만남의 장소이자, 소설가 성석제, 시인 기형도 등 문인들의 단골집이기도 했다.

계단 입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포스트잇은 예전 독수리다방의 추억을 담고 있다. 지금이야 카톡이나 문자로 약속을 잡으면 되지만, 아날로그 시대에는 글로 남겨야 했다. 약속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되면 게시판에 편지로 써서 꽂아뒀다고 한다. 독다방은 다방의 역할을 넘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통의 공간이었다. 

 

다방 입구는 예스럽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영업시간 안내

독수리다방은 33년 동안 운영을 하다가, 2005년에 문을 닫았다. 이유는 별다방, 콩다방과 같은 수많은 브랜드 커피전문점의 등장때문이라고 한다. 8년이 지난, 2013년 건물주이자 창업자의 손자가 리모델링을 통해 재오픈을 했다. 그때는 아담한 2층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높디높은 8층 건물이다.

 

복층 구조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혹시나 예전 모습이 남아 있을까 했는데, 전혀 없다. 그때는 딱 다방이었을텐데, 지금은 독방, 수방, 리방으로 책을 읽거나, 쉬거나,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되어 있다. 전망 좋은 카페답게 테라스로 나오면, 신촌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그때에 비해 공간은 더 넓어졌을 것 같다.

 

주문하는 곳!
케익류는 직접 만들지 않는다고 함~

다방 커피치고는 가격이 은근 아니 꽤 사악하다. 아메리카노대신 블랙커피, 카페라떼대신 밀크커피로 그때 그 이름이지만, 가격은 별다방보다 더 비싸다. 당황 아닌 당황을 하고 얼음동동 블랙커피(5,800원)를 주문했다. 

 

이걸 흔적이라고 해야 할까나? 그때의 추억은 이제 사진으로 만나야 하나보다. 70~80년대는 아니더라도, 90년대 후반부터 2005년까지, 정말 한번도 간 적이 없나?

지금처럼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녔더라면 흔적을 남겼을 텐데, 머리를 쥐어짜도 독수리다방은 생각이 안나고 민들레영토만 생각난다. 아무래도 간 적이 없나 보다. 추억이 없으니 감상에 젖을 일도 없고, 그냥 신촌에서 유명하다는 카페에 놀러 온 느낌이다. 

 

8층이 높은 줄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겁나 어지럽다. 전망 좋은 카페 인정, 근데 더는 못 쳐다보겠다. 옆자리로 이동해서 얼음 동동 아메리카노(연하게 주문)나 마시면서, 17세기 로열패밀리의 결혼 이야기나 읽어야겠다.

 

신촌에서 연대로 이어지는 길 위에 기찻길이 있고, 칙칙폭폭 소리도 들었지만, 달리는 기차는 처음 봤다. 2층이었다면 볼 수 없었을텐데, 8층이니 겁나 잘 보인다. 저 기차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야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구신촌역사로 간다.

 

메가박스가 있는 건물은 운영을 안 하는 듯~

신촌에는 2개의 기차역이 있다. 하나는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이고, 다른 하나는 도라산역에서 지평역을 오고가는 경의중앙선 신촌역이다. 독수리다방이 만남의 장소였다면, 신촌역은 엠티의 장소였다. 그 시절 엠티는 대성리였고, 그곳에 가려면 신촌역으로 집합을 했다. 물론, 나의 이야기는 아니다.  

만자 역사가 생기면서, 구신촌역사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라지지 않고 신촌관광안내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외관은 그때 그모습이지만, 내부는 대합실이 아니라 여행자를 위한 안내센터가 됐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가장 먼저 안내데스크가 보인다. 사진 촬영은 괜찮지만, 이곳만은 찍지 말라고 해서 요렿게 담았다. 가운데는 잠시 쉬는 곳인듯 싶고, 오른쪽은 이곳의 역사와 추억을 찍을 수 있는 공간으로 되어 있다.

 

무료로 찍을 수 있지만 부끄러워서 안 찍어요~
많이 고친 듯 하지만 곳곳에 옛모습이 남아있다~
천장은 예전 모습 그대로~

옛 신촌역사는 1906년에 개통한 용산-신의주 간 경의선에 속한 철도 역사였다. 1920년대 이곳에 지은 이래 오랫동안 교외 역사로 사용되다가, 2006년 민자 역사를 지으면서 일부분을 옮겨 보존하고 있다. 이곳은 전형적인 식민지 근대 건축물로 그당시 조적법, 목재 지붕틀, 창호, 굴뚝 등의 원형이 남아 있다. 

예전 신촌역 사진을 보면서 혹시 이상함을 발견했나요? 이상함의 실체는 잠시 후 공개합니다. 참, 옛 신촌역사는 서울역사보다 5년이나 앞서 지은 건물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사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면, 왼편으로 안내데스크가 있고 오른편으로 요렇게 여행관련 책자가 진열되어 있다. 서울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시작으로 관광과 체험 그리고 지도와 가이드북이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주고객(?)은 아마도 외국인 관광객이 아닐까 싶다.

 

진열대 중간에 여행자 쉼터라는 이름의 또다른 공간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뜬금없이 기도실과 세족실이 나온다. 대체 여기에 왜 있지 했는데,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슬람문화권 관광객을 위한 기도실과 세족실이라고 한다. 기도를 하기 전에 손발을 씻어야 해서 세족실이 함께 있단다. 

 

앞보다는 뒤가 더 식민지 근대 건축물 같아~
역무실 외관과 원래 자리

원래 신촌역사는 왼편에 역무실이, 오른편에 대합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역무실이 오른쪽에 있다. 이유는 역무실이 민자역사의 출입구와 겹쳐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기도실과 세족실 공간이 바로 역무실이다.

 

그때는 용산에서 신의주까지 갔다는데, 지금은 도라산역에서 더이상 앞으로 갈 수 없다. 경의중앙선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라산역을 지나 평양역에 도착을 한다. 그 다음 일정은 무조건 옥류관이다. 왜냐하면 진짜 평양냉면이 먹고 싶으니깐. 한때는 헛된 꿈이 아닐 거라 믿었는데, 지금은 꿈조차 꾸지 않는다. 

 

독수리다방도 옛 신촌역사도 그 시절을 살았더라면, 그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 얘기를 했을 거다. 늦게 태어났으니 얘기할 추억은 없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메모대신 삐삐를 다방대신 민들레영토에서 많은 추억을 만든 세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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