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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동 동리장

비가 오면 그사람이 생각나야 하는데, 사람보다 막걸리가 더 생각난다.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고, 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테이블에는 우유빛깔 장수누룩이가 있다. 그사람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마시자~ 마셔버리자~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동리장이다.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동리장

동리장의 시그니처는 전라도식 애호박찌개다. 빨간 국물에 비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돼지고기에 애호박이 잔뜩 들어있다. 비계를 못 먹는 1인이라 애호박찌개는 관심이 없고, 낮술환영 문구에 자꾸만 시선이 쏠린다. 비도 오는데, 비도 오는데, 이 말을 계속 되뇌이면서 혼밥이자 낮술하러 들어간다.

 

분위기는 응답하라 1988이랄까?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보리차가 커다란 훼밀리쥬스 병에 담겨있다. 늘 이걸 어떻게 구했나 싶었는데, 검색을 하니 병만 팔고 있는 쇼핑물이 은근 많다. 

낮술 환영이라고 하지만, 브레이트 타임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인장 왈, 여기로 이전하면서 브레이크 타임을 없앴단다. 고로 맘 편하게 낮술을 마실 수 있다. T.P.O는 time, place, occasion의 머리 글자로, 시간은 낮, 장소 밥집겸 술집, 상황은 비가 온다.

 

메뉴판 전체 샷~

늘 식사메뉴에 집중했는데 이번에는 안주가 메인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전을 먹어야 하는데, 애호박전이냐? 육전이냐? 둘 다 먹기에는 과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둘 다 먹기로 했다. 

안주 코너에는 나와있지만 않지만, 애호박전(5,500원)과 육전(6,500원)은 미니 사이즈로 주문이 가능하다. 여기에 옛날소세지전(2,000원)과 어리굴젓(4,000원)을 더하고 장수누룩이(5,000원)로 마무리를 했다. 참, 주문은 입구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하면 된다.

 

도화동 동리장 육전 분홍소세지전 애호박전 그리고 어리굴젓 등장이요~
기본찬은 깍두기와 알배추+쌈장

청주 느낌으로 맑게 마실까 하다가 흔들기로 했다. 그런데 탄산이 터지지 않고 여는 방법을 모른다. 조심스럽게 주인장에게 부탁을 드렸고, 네맘 알아요~ 라는 눈빛을 보내더니 친절하게 뚜껑을 따줬다. 

아스타팜이 들어있는 누룩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시고 난 후 자꾸만 트름이 올라오고, 그때마다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수뿐이니 어쩔 수 없다. 애호박전에 녹색이와 갈색이는 어울리지 않으니깐.

 

얇고 넓은 육전 3장~

육전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갓지은 밥처럼 방금 부친 육전은 아니 좋아할 수 없다. 고기의 고소함일까? 달걀의 고소함일까? 둘의 합작이라 하고, 여기에 부드러움까지 더해져 전도 누룩이도 술술 넘어간다.

 

식사 메뉴를 주문하면 기본 반찬으로 나오지만, 사이드만 주문하는 바람에 추가를 했다. 도시락 세대라서 반찬으로 많이 먹었는데도, 비엔나나 햄에 비해 분홍소세지는 여전히 좋다. 단, 계란옷을 필히 입어야 한다. 흰색 점박이 초록색 접시까지 더해, 살짝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 

 

미니 애호박전

생김새는 야채튀김인데, 잘 보면 애호박이 맞다. 애호박을 동그랑게 혹은 채를 썰어서 부침개를 하는데, 동리장은 감자튀김 느낌이다. 새우가 있어 고소함이 살짝 있지만, 대체로 애호박 특유의 달달함이 강하다. 굵직해서 아삭함에 바삭함까지 더해져 누룩이를 계속 소환하게 만든다.

 

어리굴젓

얼갈이 사과 겉절이와 어리굴젓을 두고 고심을 했다. 전과 함께 할 최고의 반찬은? 감히 신의 한수라고 하고 싶다. 녹두전과 어리굴젓의 조합은 알고 있기에, 다른 전도 괜찮을까 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다. 특히, 육전이 가장 어울렸다는 거, 안 비밀이다.

 

어리굴젓이 육전과 어울린다고 해도, 밥을 이길 수 없다. 흰쌀밥에 스팸이 아니라 어리굴젓은 사랑이다. 쿰쿰한 어리굴젓은 호불호가 있지만, 이 맛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 해산물 킬러라서 어리굴젓은 껌인데, 삭힌 홍어는 여전히 힘들다.

 

흰밥에 육전 그리고 어리굴젓, 아주 맘에 드는 삼합이다. 누룩이는 물론, 밥 한공기도 비우지 못하는 만행을 저지르다니, 전을 남기고 밥을 먹었어야 했는데,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했네"(영화 부당거래의 류승범 말투). 동리장에는 모둠전이라는 메뉴는 없지만, 요렇게 사이드로 주문하면 가능하다. 주식처럼 혼술 안주도 분산투자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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