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동 영순관
혼자서 짬뽕이나 짜장은 부담없지만, 팔보채나 깐풍기같은 중국요리는 왕부담이다. 양도 많고 가격이 사악하다 보니 혼밥은 엄두를 낼 수 없었는데, 이제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영순관을 찾았기 때문이다. "왜 이제야 내 눈앞에 나타났니?"
식당 밖에 있는 오토바이와 내부에 걸린 커다란 지도를 보니 배달을 하는가 보다. 보문동 주민이라면, 방문에 배달까지 단골은 기본, 전메뉴 도장깨기도 했을거다. 입구에서 부터 노포의 느낌이 강하게 온다. 4인 테이블은 6개 정도이며 브레이크타임이 없어 늦은 오후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지도 옆에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접이문(?)이 있는데, 화장실은 저 문 너머에 있다. 노포라서 살짝 걱정을 했는데, 장실 상태는 괜찮다. 참, 영순관 휴무일은 화요일이다.
짜장, 짬뽕 등 식사류도 가격이 좋지만, 요리류를 보면 방실방실 웃음꽃이 핀다. 중국요리 1인분이 가능하다고 알고 갔지만, 메뉴판을 보니 정말 그렇다. 메뉴가 많지 않지만, 팔보채에 깐쇼새우, 깐풍새우 그리고 유산슬에 깐풍기까지 이정도도 충분하다.
중국요리 중 양장피를 가장 좋아하지만, 없으니 팔보채 1인분(13,000원)을 주문했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는 만원 정도 했다는데, 1인분뿐만 아니라 가격도 맘에 아니 들 수 없다.
테이블에는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가 있으며, 보이차가 아닌 보리차는 난로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에서 막 나왔다. 이날도 꽤나 추웠는데 뜨끈한 보리차로 온기를 가득 채웠다.
1인분이라고 해서 아담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꽤나 푸짐하다. 양이 적을까봐 팔보채와 함께 식사도 주문하려고 했는데 안하길 잘했다. 검색을 통해 어떤 곳인지 알고 왔지만, 그래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1인분이니 회전초밥 접시 크기만큼 나와도 감사히 먹어야지 했는데, 커다란 접시에 가득 채워질 정도로 수북하게 나왔다.
팔보채는 여덟가지의 귀한 식재료와 채소를 함께 볶은 중국식 요리이다. 전복, 해삼, 오징어, 새우 등의 해물과 청경채, 죽순, 표고버섯, 양파, 오이 등의 채소를 기름에 볶고, 녹말을 약간 풀어 엉기게 해 그릇에 담아내는 음식이라고 다음백과에 나와있다.
영순관의 팔보채에는 전복은 없지만 주꾸미, 새우, 해삼, 오징어, 낙지 등이 있으며, 채소는 파프리카와 죽순, 송이버섯, 건고추 그리고 특이하게 늙은호박이 들어있다. 1인분이라고 절대 우습게 보면 안된다. 푸짐은 기본에, 내용물도 알차고 다양하니깐.
건고추는 보이는 족족 다른 접시로 옮겨서 매운맛은 거의 없다. 양념이 강하지 않으니, 해산물과 채소 본연의 맛은 물론 다채로운 식감까지 맘에 든다. 더불어 기름지거나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다.
팔보채를 어찌 그냥 맨입으로 먹을 수 있을까? 늘 그러하듯 제로슈가 로이와 함께 했다. 혼자서 한병은 무리라서 텀블러(200ml 용량)를 챙기고 다닌다. 텀블러에 물만 담으라는 법은 없고 음식을 남기면 포장을 한다. 로이는 물이자 음식이며, 곧 몸값이 올라간다고 하니 포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남았다고 병을 들고 다닐 수 없는 법, 이럴때 텀블러가 딱이다.
전분을 적게 사용했는지, 걸쭉한 상태가 아니라 국물이 있다. 1인분이기도 하고, 어차피 혼밥이라서 젓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퍼먹는 중이다. 팔보채에 늙은호박은 낯선 재료인데, 꽤나 매력적인 재료이기도 하다. 푹 익히지 않아서 식감이 살아 있고, 단맛을 품고 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행복해진다.
팔보채만으로도 충분한데, 추운 날에는 뜨끈뜨끈한 국물을 먹어줘야 한다. 면은 부담스러우니, 짬뽕밥(7,500원)으로 주문했다. 처음 나왔을 때는 짬뽕이 아니라 빨간 계란국인 줄 알았다.
육개장에 당면이 있어야 하듯, 짬뽕밥도 그렇다. 팔보채도 그러하더니, 짬뽕밥도 자극적이거나 맵지 않고 국물이 깔끔 시원하다. 혼술에는 뜨끈하고 개운한 국물이 무조건 있어야 한다.
팔보채가 주는 임팩트가 너무 컸는지, 짬뽕밥은 무난했다. 국물과 당면만 좋았뿐, 나머지는 평범하다. 늙은 호박은 짬뽕밥에도 등장하지만, 빨간 양념으로 인해 호박 본연의 맛은 많이 약해졌다.
팔보채 하나만 주문해도 3만원이 넘는데, 영순관에서는 25,500원으로 요리 하나에, 식사 하나 그리고 로이까지 다 가능하다. 중국요리는 혼밥이자 혼술하기에 부담스런 메뉴였는데, 이제는 걱정 없다. 다음에는 깐풍기에 잡채로, 아직 먹고 있는 중인데 벌써 정해버렸다. 왜 이제야 알게 됐는지 살짝 서운하지만, 지금부터 전메뉴도장깨기(요리류에 한정)에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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