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을 창경궁
가을은 가고 있는데, 감기는 여전히 헤어질 결심을 거부하고 있다. 멀리 갈 형편은 안되고, 그렇다고 스치듯 지나가는 가을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3년 전에 갔는데 또 간다. 2022년 버전 가을 창경궁이다.



명정문은 3년 전에도 보수공사를 하더니, 지금도 공사 중이다. 그때는 입구를 완전 봉쇄했다면, 지금은 출입이 가능한 상태다. 창경궁의 가을은 전각이 주인공이 아니라, 나무가 주인공이므로 명정문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왜냐하면 춘당지에 가야하니깐.


아침에는 안개가 심하더니, 오후가 되면서 서서히 파란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과 저녁 여의도를 지나가면서 봤던 공원의 단풍과 창경궁의 단풍은 장소때문인지 그 느낌이 새삼 다르다. 우선,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가을가을하다. 사실은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궁이 워낙 넓다보니 많아도 많은 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춘당지로 가는 길에 만난 연리목이다.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하나의 나무가 됐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나 연인끼리의 사랑을 상징하기도 하고 상서로운 일이나 길조를 상징한다고 한다. 회화나무는 18세기 초, 느티나무는 20세기 초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을 춘당지로 많이 알고 있지만, 사실은 여기가 아니다. 원래 이곳은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 짓는 의식을 행햇던 곳이다. 그런데 일제가 여기를 연못으로 만들고, 보트를 타고 놀이를 즐기는 유원지로 만들었다.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면 좋겠지만, 아직은 연못으로 남아 있다. 참, 춘당지는 여기를 지나 위쪽으로 올라가면 작은 연못이 나오는데, 그곳이 진짜다.



소나무를 일부러 하얗게 색칠을 한 것이 아니라 백송이다. 백송은 중국이 원산지인 희귀한 나무로 조선 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대온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당시에는 동양최대 규모였다는데, 창경궁에 대온실은 누가봐도 어색어색하다. 창경원은 사라졌지만, 대온실은 왜 그대로 보존을 하는 걸까? 원래 이곳에는 어떤 전각이 있었을까? 그게 몹시 궁금하다.

대온실을 중앙에 두고 오른편에 관덕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원래는 활을 쏘던 정자로 앞쪽의 넓은 빈터는 군사 훈련과 무과 시험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정자 뒤로 단풍 숲이 우거져서 여러 임금들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가 전해진다. 뒤쪽뿐만 아니라 앞쪽도 단풍이 멋스럽다.




춘당지를 나와 성종 태실비로 가는 큰 길이 아니 오솔길로 접어 든다. 나만의 창경궁 가을 단풍 포인트랄까? 녹색이 가득한 공간 속에 가을을 뽐내는 나무 한그루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라, 혼자서 가을 사색에 잠긴다.









창경궁은 명정전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춘당지와 대온실이 있는 공간이다. 화려한 오른쪽 공간과 달리 왼쪽은 천문을 관측하는 관천대 외에는 나무뿐이다. 동궁전이 있었다는데,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그 많던 전각은 다 사라졌다. 지금은 널따란 공터에 나무들만 빼곡하다.

일제에 의해 사라진 창경궁과 종묘의 사잇길을 조성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아마도 저기인가 보다. 현재는 원남동사거리에서만 출입이 가능하며, 창경궁과 종묘의 연계 관람은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길은 만들었는데, 지금은 갈 수 없는 길이다.




경복궁과 창덕궁과 달리 창경궁은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진다. 가을을 느끼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지만, 궁궐인데 궁궐답지 않아서 올 때마다 안쓰럽고 맘이 아프다. 경복궁 복원도 좋지만, 창경궁도 5대 궁궐답게 보수가 아닌 복원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깊어가는 가을 창경궁에서
2019년 가을 창경궁 단풍 시즌이 시작됐다. 올해는 어디를 갈까? 고민에 고민의 거듭하다, 3년만에 고궁으로 떠났다. 어느 계절에 가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가을 고궁을 제일 좋아한다. 창경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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