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광화문광장 (feat.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섬같은 광장이 공원같은 광장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차도 사이에 있어 섬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차도과 광장의 구분이 명확해졌다. 공간은 예전보다 넓어졌으며, 녹음은 예전보다 더 짙어졌다. 컴백은 반가운데, 세월호 기억공간이 사라진 건 못내 아쉽다.
광화문광장을 섬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광장 양옆으로 차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장에 가려면 무조건 횡단보도로 건너가야 했는데, 이제는 교보문고 건물이 있는 곳에서만 신호를 받으면 된다.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런데 참 아이너리한 상황은 그때 그 시장이 지금 그 시장이다.
다시 돌아온 광화문 광장은 기존 광장의 서쪽(세종문화회관) 차로를 없앴다. 총면적은 4만300㎡로 종전보다 2.1배나 넓어졌다. 그러다보니 광장폭은 35m에서 60m로 확대됐다. 녹지는 9367㎡로 3배 이상 늘어, 광장 전체 면적의 1/4수준이다.
넓어진 만큼 우리나라 고유 수종 중심으로 키 큰 나무 300그루를 포함해 5,000그루를 심었다. 공간은 더 넓어졌고, 나무는 더 많아졌고 굳이 기사 검색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진다.
곧 폭우가 쏟아질 듯한 날씨지만 지금은 가랑비가 오다가 말다가 하고 있다. 햇빛은 쨍쨍 모래알을 반짝같은 날보다는 요렇게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를 더 좋아한다. 사진 찍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햇빛도 자외선도 모두다 약해서 걷기에는 더할나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시간 후, 기록적인 폭우가 하루종일 내렸다는 거 안 비밀이다.
8월 6일에 재개장을 하고, 8월 8일에 잠시 들렸다. 찬찬히 둘러보고 싶지만, 하늘을 보니 여유롭게 다니면 안되겠다. 좀 더 기다렸다가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새로움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눔의 직업정신 아니고 블로그정신(?)이다. 시간이 없으니 디테일은 버리고 확 달라진 모습만 담아가야겠다. 세종대왕동상이 있는 공간은 이름처럼 넓디넓은 광장같다.
광장과 공원의 느낌을 다 갖고 있는데, 광장도 아니고 공원도 아닌 곳이 될까봐 걱정도 된다. 그래도 섬같았던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좋아졌다. 그나저나 광장 아래에 문화재가 엄청 많았는데, 나무뿌리로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 세대를 위해 한 곳만 남기고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세한 문화재 이야기는 글 하단에 링크 확인)
사헌문 터 전시장은 2020년 10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배수로와 우물, 사헌부 청사의 담장과 출입문 터, 행랑 유구 등이 확인됐다.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은 배수로, 비닐로 덮어 있는 곳은 담장 그리고 중앙에 우물과 행랑유구가 있다.
여기는 육조마당으로 조선시대 육조거리 모습과 현재 광화문의 아름다운 경관을 살리기 위한 넓은 잔디마당이다. 육조마당은 경복궁으로 이어진다.
마치 정해진 코스인냥,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기는 드론촬영을 못하는 지역이라, 내가 드론이 되는 수밖에 없다. 드론이 되기 위해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아는 곳이 여기뿐이다. 옥상정원이니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고, 드론처럼 경복궁 항공샷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경복궁 전경도 볼 수 있지만, 확 달라진 광화문광장도 볼 수 있다. 촬영하기에는 살짝 힘들지만, 이제는 섬이 아닌 진짜 광장답다. 비가 그치고, 더위가 한풀 꺽이면 광화문광장 한바퀴를 해야겠다. 이번에는 후다닥이지만, 다음에는 천천히 꼼꼼하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 못보던 전시물이 있다. 광복절을 맞이해 전시해 놓은 듯 한데, '일제는 무엇을 숨기려 했는가?' 박물관에 소장 중인 중외일부 검열본과 삭제본으로 국내 첫 공개라고 한다.
일제가 신문 검열까지 하면서 숨기고 싶었던 것은 일본 왕실을 모독하는 기사, 조선통치를 부인하고 방해하며 독립사상 및 운동을 선전하는 기사 그리고 쟁의를 선동하는 기사 등이었다. 요즈음 검열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외람이들이 알아서 하지만, 그때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기자님들이 노력을 많이 했다.
새하얀 이불에 덥히신 폐하. 1926. 12. 18.(34호)
다이쇼 일왕이 병환으로 누워있을 때 왕실 가족 및 신하가 병문안 온 모습은 담은 기사이다. 일왕의 병환에 대한 다른 기사는 검열되지 않았으나, 이불에 덥힌 폐하와 같은 묘사는 병세가 위독함을 의미할 수 있어 검열이 됐다. 같은 시기 일왕의 위독함을 알린 동아일보 기사는 모두 금지처분이 내려졌다고 한다.
새 봄을 맞는 태화관. 1927. 3. 1.(107호)
태화관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곳이다. 선언서 낭독 후 전국에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 8년 뒤, 3월 1일을 맞아 중외일보는 기사 대신 사진으로 의미를 되살리려 했지만 총독부는 그 뜻을 알고 삭제 명령을 내렸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 빛을 되찾은 날 광복절이 얼마남지 않았다.
2021.06.03 - 고고학자가 된 듯 광화문광장 발굴문화재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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