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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러면 안됩니다~ 버스 안에서 전화통화

겨울에는 이불 밖이 무섭고, 여름에는 에어컨 밖이 무섭다. 일주일에 하루는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 전시회를 가거나, 서울 혹은 기차를 타고 짧은 여행을 떠난다. 블로그에 올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다.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가고 있는데, 요즘은 잠정 휴업 상태다. 

 

이유는 더위에 약한 체질이기 때문이다. 10년 전인가? 지금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 날, 장시간 밖에 있었고 굳이 먹지 않아도 될 더위를 제대로 먹어버렸다. 그날 이후, 여름이 오면 밖으로 나가기 꺼려하는 겁쟁이가 됐다. 일주일에 5번 업로드는 나와의 약속인데, 잠정 휴업이 길어지다 보니 콘텐츠가 떨어졌다

 

밖으로 나가서 콘텐츠를 만들 수 없으니,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영화 해리포터를 보면, 덤블도어 교수가 해리에게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서 과거의 어떤 일을 보여준다. '직접 목격한 일인데 아직 에세이로 담지 않은 에피소드가 없을까?' 마법 지팡이는 없지만,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해서 하나를 찾았다. (이제야 서론이 끝났다. 야호~)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무지 덥던 어느 여름날 배롱나무꽃을 보기 위해 안동에 갔다~

작년 여름, 아니면 가을인 듯 싶다. 버스 안에서 통화를 하면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다. 하지만 통화를 하는 이는 개의치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동네방네 소문을 낸다. 공적인 업무는 기본, 사적인 통화도 서슴없이 한다. 누구랑 밥을 먹었고, 다음주에 휴가를 가고, 친구가 새로 염색한 머리가 별로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지만, 저절로 알게 된다.

코로나19가 없던 시절이라면, 전화통화를 두고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을 거다. 물론 긴 통화는 짜증을 유발하지만, 그렇다고 전화통화를 그만하라는 대놓고 말을 하지 않는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 여행객은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오래 산 듯한 외국인이 버스를 탔다. 잠시 후, 자리에 앉은 그에게 전화가 왔고 그는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서있던 아저씨가 그에게 소리를 친다.

"폰". "폰". "폰."

당황한 그는 스마트폰을 내리고 아저씨를 쳐다봤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통화를 하냐고 말을 했던 거 같은데 이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암튼 아저씨의 잔소리에 놀란 그는 전화를 끊었다.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 되는 줄 알았는데, 그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경북 안동에 있는 병산서원이라네~

그는 다시 전화를 받았고, 유창한 영어로 통화를 이어갔다. 혹시 했는데 역시나 아저씨는 다시 그에게 전화를 끊으라고 하면서, 더 크게 강하게 폰, 폰, 폰을 외쳤다. 전화를 받는 외국인도, 그걸 또 못하게 하는 아저씨도, 기가 팽팽하다고 해야 하나? 코시국이니 버스 안에서 전화통화를 지양해야 하지만, 그가 외국인이라서 더 크게 뭐라고 하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너도 통화를 하잖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보다는 주로 문자가 많이 와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통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어쩌다 전화가 오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한다. "지금은 버스 안이니, 내려서 다시 통화를 하겠다." 코시국 전에는 그냥 통화를 했지만, 요즈음 둘이 버스를 타도 톡을 할 정도로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감정이입이란 걸 하게 된다. 나는 아저씨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왜냐하면 비슷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퇴근 길애 함께 버스를 탔고, 나는 앉았고, 그녀는 내 옆에 서 있었다.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전화가 왔고, 내가 내릴때까지 통화는 계속 됐다.

 

병산서원의 8월은 배롱나물꽃으로 가득~

퇴근길이라 만원버스였는데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사 뒷담화를 시작으로 소개팅 이야기, 점심에 먹는 개구리반찬(?) 이야기 그리고 저녁에 누굴 만나는 내용까지 쉬지 않고 통화를 이어갔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만, 서서 통화를 하는 그녀에게서 엄청난 비말이 분비됐을 거고, 바로 아래 앉아있는 나는 최대 피해자가 된다.

 

창문을 열었다가, 그녀를 쳐다봤다가 나름 눈치를 줬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나에게도 전화가 온 듯, 받았다가 "지금은 버스 안이니까 내려서 다시 전화할게"라고 말하고 끊을까? 이런 생각까지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을 알고 있는데, 그걸 못하는 내가 어찌나 답답하던지. "코시국인데 전화 통화 좀 그만 하십다." 이 말이 머리 속에 계속 맴돌았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 애꿎은 창문만 열았다, 닫았다 했다.

 

아저씨로 빙의를 했어야 하는데, MBTI가 I(INTJ-T)라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통화는 자제했으면 좋겠다. 더구나 무선 이어폰으로 통화를 하면 자신의 목소리가 꽤 크다는 사실을 많이 모르는가 보다. 

 

 

쿠키 이야기랄까? 아까의 에피소드에는 반전이 있다. 아저씨의 강력한 잔소리에 그는 결국 통화를 멈췄다. 그렇게 작은 소동은 사라지고, 버스는 다시 고요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아저씨가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는 다시 출발을 했고, 아저씨가 없음을 확인한 그는 스마트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스스로 자각을 해야지, 옆에서 아무리 외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 그때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 지금은 코시국이라서.

 

2021.08.09 - 8월 배롱나무꽃으로 물든 병산서원 경북 안동

 

8월 배롱나무꽃으로 물든 병산서원 경북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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