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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는 모기 무덤 (faet. 홍제천의 봄)

이상 고온현상으로 인해 벚꽃이 2주가 앞당겨 개화를 했다. 대체로 4월 10일 전후로 벚꽃나들이를 갔는데, 이번에는 거짓말도 아니고 만우절에 홍제천으로 향했다. 제목과 다르게 벚꽃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두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합쳤기 때문이다. 왜 엘리베이터는 모기 무덤인지, 쭉 읽다보면 알게 된다.

 

홍제천 인공폭포

동네에 있는 안양천, 출퇴근길에 만나는 여의도 그리고 엄청 멀지만 절대 실패하지 않는 석촌호수까지 벚꽃 나들이로 즐겨 찾는 곳이다. 올해는 어디로 갈까 나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데, 자다가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됐다는 말처럼 번개불에 콩 구워 먹듯 짠하고 벚꽃이 만개를 했다.

 

홍제천은 개나리와 벚꽃의 앙상블

이번에는 익숙함이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어 홍제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벚꽃보다는 개나리를 더 봤다는 거, 안 비밀이다. 사실 저 위로 올라가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만날 수 있는데, 귀차니즘이 제발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귀차니즘뿐만 아니라 초여름같은 날씨로 인해 겁나 더워서 마스크를 벗었다. 사방이 뻥 뚫린 야외에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에 사람이 많은 곳은 자체적으로 거리두기를 하면서 다녔다. 왜냐하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은 1인이기 때문이다.

 

줌으로 당겨서 찍어요~

대체로 개나리가 지고 벚꽃이 피는데, 올해는 둘은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긴 하다. 그런데 이게 꿀벌에게는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일찍 핀 봄꽃은 꿀벌 등 벌의 생태계에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개화한 꽃은 매개 수분을 해줄 벌이 없고, 뒤늦게 땅 밖에 나온 야생벌은 먹이가 부족한 상황에 부딕친다는 것이다.

 

진달래를 보면 화전이 먹고파~

꿀벌에게 악몽같은 올 봄이 모기에게는 천재일우가 아닐까 싶다. 

홍제천으로 가기 위해 버스는 탔는데 너무 더워서 창문을 많이 열어두고 마스크를 벗었다. 버스에서만은 아무리 더워도 벗지 않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에어컨을 가동했다.

4월 1일이면 시원보다는 서늘한 봄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더운 바람이 분다. 이렇게 더우면 모기가 빨리 등장하지 않을까? 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함께 TV를 보던 어무이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설마, 4월에 무슨 모기가 있어."

  

홍제천 벚꽃은 천변이 아니라 산 중턱에 있다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다음날 엘리베이터에서 죽어있는 모기를 발견했다. 빨라도 5월에 등장했던 모기가 4월에 컴백을 하다니, 전혀 반갑지가 않다. 그나저나 왜 엘리베이터는 모기 무덤일까? 아파트에서 모기의 이동경로 중 한 곳이 엘리베이터다. 밝은 붉빛은 기본, 시원한 바람도 나오고, 사람이 끊이지 않으니 모기가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자기 집인 듯 눌러 사는 녀석(?)들도 종종 있을 거다. 굳이 수고스럽게 날개짓을 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깐. 그러나 뛰는 모기 위에 나는 인간이 있는 법. 엘리베이터에서 모기가 보이면 무조건 잡는 나와 같은 인간이 여러 있다.

 

손바닥을 쳐서 모기를 잡으면, 사체는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나오는 편이다. 다음날 출근길에 전날 잡은 모기를 보면 왠지 모를 뿌듯함에 빠진다. 그러다 한번은 별생각없이 엘리베이터를 두리번 거리다 엄청난 걸 발견했다. 맞은편 거울에도,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도 사체가 하나, 둘, 셋을 넘어 다섯을 지나 아홉으로 가고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기를 잡는 현장을 목격한 적은 없지만, 다음날이 되고 또 다음날이 되면 사체는 계속 늘어난다. 모기 무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모기가 좋아하는 달달한 피를 보유하고 있는 인간이다 보니, 더더욱 싫다.  

 

사람도 많고 계단도 많고~

벚꽃이 만개를 하면, 꽃잎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일주일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루 아침에 개화를 하더니, 주말 이후 빠르게 벚꽃엔딩으로 가고 있다. 여의도에서 잠깐, 홍제천에서 멀찍이, 올해 벚꽃 구경은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보다.

모기의 빠른 컴백과 함께 봄을 밀어내고 여름이 올까봐 두렵다. 왜냐하면 사계절 중 4번째로 여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즉, 제일 싫어하는 계절이다. 벚꽃의 이른 개화는 꿀벌뿐만 아니라 나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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