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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일탈은 소소한 행복

여행을 일탈이라 하지만 출근길은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그런데 그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면, 원래대로 돌아가야 할까? 이대로 즐겨야 할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선택은 후자다. 왜냐하면 두번 다시 없을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이다. 

11월 어느 금요일 아침, 만원 버스에 올랐다. 지금은 앉을 자리가 없지만, 잠시 후 버스가 신도림역에 도착하면 대부분의 승객이 내린다. 그때까지 참으면 목적지까지 앉아서 갈 수 있다. 그런데 버스 안 기류가 수상하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고, 버스기사는 누군가와 통화를 멈추지 않는다. 이럴때는 밝은 귀가 도움이 된다. 주변의 소리를 취합한 결과,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다.

 

카카오맵을 통해 실시간 교통 CCTV를 확인하니, 사람들의 말이 맞다. 문래동을 시작으로 여의도까지 도로는 주차장이 됐다. 버스는 신도림을 지나 영등포, 여의도 그리고 마포역을 지나 광화문까지 간다. 나의 목적지는 마포역이다. 

버스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는지 버스기사는 원래 노선을 포기하기로 한다. 신도림역을 앞에 두고 기사는 "여의도 집회로 인해 차가 엄청 막히는 관계로 신도림까지만 정상 운행을 하고, 영등포로 가지 않고 문래동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서 양화대교로 간다. 여의도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니, 여의도에 가려는 사람들은 신도림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이용해 달라."

 

만원버스에서 텅텅 빈 버스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 커졌지만, 신기하게도 노선대로 가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신도림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를 포기하기로 결심한 버스기사는 버스전용차로를 나와 일반 도로를 달려 다른 버스에 비해 조금은 일찍 신도림역에 도착했다. 

긴급한 상황이기에 정류장이 아닌 인도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에 정차를 했고, 거의 모든 승객이 내렸다. 여의도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기에, 버스기사는 얼마나 시간이 지체될지 모른다 했다. 남들처럼 내려서 지하철을 탈까? 아니면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버스에 있을까?

 

영등포가 아닌 문래동으로 접어든 버스~

버스에 있기로 했다. 신도림역에서 영등포역으로 직진을 해야 하는데, 버스는 문래동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한다. 늘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간다! 이런 일탈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기에 늦게 도착을 하더라도 남고 싶다. 

버스에는 나를 포함해 총 4명이 남았다. 버스는 문래동사거리에서 직진이 아닌 좌화전을 한다. 이때, 누군가 벨을 눌렀고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겠다는 말에 기사는 버스정류장에 그녀를 내려줬다. 그리고 다시 문래동을 지나 영등포구청으로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무사통과를 하던 버스는 신호가 아닌 또다른 승객에 의해 다시 멈춰야 했다.

 

원래 노선대로 갔다면 선유중학교는 절대 볼 수 없어~

버스기사가 큰 목소리로 여러번이나 이렇고 저렇고 해서 노선을 변경한다고 했건만, 그녀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듣지 못했단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그 많던 승객이 다 내렸는데도 눈치를 못챘을까? 볼륨을 얼마나 크게 해서 음악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버스기사에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단다. 

 

여의도에 가야 한다는 그녀는 결국 영등포구청 부근에서 내렸다. 작은 소란이 지난 후, 버스는 양화대교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원래 노선이 아니니, 버스 정류장에 정차할 이유가 없다. 늘 보던 창밖 풍경도 아니니,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담기 시작했다. 유낳괴는 유튜브가 낳은 괴물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블낳괴인가? 

 

여의도를 통과해 마포대교를 달리던 버스가 양화대교를 달리고 있다. 당산철교 위로 지하철이 지나간다. 뿌연 하늘이 아쉽지만, 두번 다시 없을 소중한 추억이기에 셔터를 멈출 수가 없다.

 

버스는 양화대교를 지나 강변북로에 진입했다. 마포대교에서 측면으로 국회의사당이 보이는데, 강변북로에서는 정면으로 보인다. 출근길은 따분할 정도로 변함이 없는데, 지금은 신기함 그 자체로 뜻하지 않게 일탈을 즐기고 있다.

 

저 다리는 마포대교~

우회를 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 있다. 마포역을 그냥 지나쳐 공덕역으로 갈 수 있다고 버스기사는 말했지만, 말과 달리 강변북로는 막힘이 없다. 예정보다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을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곧 현실이 된다. 참, 이 버스만 우회를 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대 같은 노선의 버스는 여의도를 포기했다.

 

그나저나 여의도가 종점이거나, 기점인 버스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만약 좀 더 일찍 버스를 탔거나, 다른 노선의 버스를 탔다면, 나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을 거다. 소박한 일탈이라고 했지만 이를 위해 시간, 공간, 장소 등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기회는, 추억은, 블로그 컨텐츠는 없었을 거다.

 

서강대교가 보여~

강변북로를 나온 버스는 마포역에 도착을 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이번 경우는 현명한 버스기사를 만난 뜻하지 않게 일상 속 일탈을 했다. 참, 예상보다 훨씬 일찍 왔다는 거, 안 비밀이다.

 

많은 사람들이 웃는 얼굴보다는 화난 얼굴로 신도림역에서 내렸다. 그도 그럴것이 원치 않은 불편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떤 집회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욕부터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 그럴 수 있어 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물론 두번 다시 없을 기회로 받아 들이고 즐기는 이도 있다. 

변함없는 일상도 좋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일상 속 일탈을 하고 싶다. 단,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탈은 싫다. 그저 소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일탈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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