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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만휴정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안동 출신 양반이고 싶다. 그래야 깊은 산 속에 정자를 짓고, 남은 여생을 보낼테니깐. 깊은 산속 옹달샘은 토끼와 노루가 주인공이지만, 깊은 산속 만휴정은 양반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다. 경북 안동에 있는 만휴정이다.

 

안동은 서울의 2.5배 크기라고 하더니, 시내에서 만휴정까지 거리가 좀 된다. 맘모스제과에서 30분 정도 달려 만휴정에 아니 임시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만휴정에는 화장실이 없기에, 급하다면 주차장 끄트머리에 있는 간이화장실을 이용하면 되는데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늘은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고 푸르지만, 땅은 계란후라이가 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폭염이다. 

 

주민차량외 외부차량은 출입금지!
사진은 선명해서 좋은데 실제는 겁나 더워요~
길안천에 놓인 하리교!

주차장에서 명부를 작성하는 곳까지 약 5분 정도 걸리고, 여기서 만휴정까지 오르막이라서 10분 정도 더 걸린다. 무지 천천히 걸었을때 기준이므로,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손소독과 명부를 작성하고, 다시 걷는다.

  

양산이 있어 햇빛은 가릴 수 있지만, 폭염은 가려지지 않는다. 모기 퇴치용 앱을 실행하고 다녔는데 성능이 좋은지 모기에 물리지 않았다. 그런데 앱이 아니라 앞에 가는 커플때문인 듯 싶다. 모기가 커플(남성분)에게 몰려갔는지, "모기가 많다, 또 물렸다" 등등 얘기가 계속 들려왔다. 덕분에 올라갈때는 모기로부터 안전했는데, 내려갈때는 커플이 없어서 집중 공격을 받았다. 모기에게 나의 피는 달달한 맛이다.

 

더워서 헥헥거리면 올라가다 보니, 저멀리 만휴정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폭포가 있다. 검색을 하니, 송암폭포라고 나온다. 날이 가물어서 세찬 물줄기는 아니지만 시원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만휴정에 대한 정보가 없이 왔는데, 이거 하나만으로도 왜 이렇게 깊은 산속에 정자를 지었는지 알겠다. 

 

외딴섬 아니고 외딴 정자!

흥선대원군의 별장이던 석파정도 서울이지만 나름 인왕산 자락 깊은 산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만휴정 앞에서는 명함을 내밀지 못하겠다. 어쩜 이런 곳에 이런 건물이... 보고 있는데도, 마치 신기루를 본듯 비현실적이다.

 

만휴정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라는데, 못 본 드라마라서 내용은 모르지만 촬영지를 할만큼 풍경 하나만은 기똥차다. 특히 다리에서 촬영을 했다는데, 그때문이지 저 곳에 서서 인증사진을 담으려는 사람들땜에 병목현상이 일어나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사람이 많으면 우선 피했다가 다시 찍어야 할텐데, 알면서도 뻔뻔히 사진을 담고 있다. 세명이 돌아가면서 인당 10컷 정도 찍더니, 원하던 사진을 다 찍었는지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 앞에 가던 커플이 본인들도 사진을 담아야지 하다가, 미안한지 나를 보고 사진을 찍어주겠단다. 나의 대답은 "인물사진 안찍습니다." 

 

속마음은 다리에 서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찍고 싶지 않았다. 인물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안 간 것은 아니기에 풍경사진으로도 충분하다.

만휴정은 늦은 나이에 쉰다는 뜻으로, 조선 초기 문신 보백당 김계행이 지은 정자다. 그는 연산군의 폭정으로 인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안동)으로 낙향했으며,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향하고자 했던 삶의 전형을 보여주는 올곧고 강직한 선비였다고 한다. 만휴정은 석축 위 끝단에 가로세운 낮은 담장 안쪽으로 위치하고 있다. 

 

주변 풍경에 비해 건물은 소박해~
올곧은 선비 느낌이랄까? 

멀리서 봤을때가 더 멋지다고 해야 할까나? 정자면 별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청백리의 정신을 유산으로 남긴 사람이 지은 곳답게, 소박하다. 만휴정을 제대로 보려면,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하듯, 정자가 아니라 주변 풍경과 함께 봐야 한다. 

 

일본의 정원은 인공미, 중국의 정원은 과장미라면 우리의 정원은 자연미다. 만휴정을 짓기 위해 축조한 석축과 담장, 소박한 정자 그리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원림(자연에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자신의 생활 공간으로 삼는 것)의 전부라고 한다. 

 

암반 위로 물이 흘러내려 송암폭포로 이어진다!

살마 나 여기 왔다 감, 누구 하트 누구는 아니겠지. 검색을 하니,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으로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문이라고 한다. 

 

만휴정에서 나와, 각자가 새겨있는 큰 바위 부근에 왔다. 날이 가물지 않았더라면, 시원하고 세찬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졸졸졸 물은 계속 흐른다. 

 

절경이네요 장관이고요 신이 주신 선물이네요~

역시 만휴정은 자연과 함께 봐야 한다. 인물사진에 약한 1인이지만, 이정도 거리라면 딱히 포즈를 취하지 않아도 되니 찍어도 됐을텐데 아쉽다. 앞으로는 내가 나인지도 모르게 인물사진을 담아봐야겠다.

 

암석조차 멋스럽다!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았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부동산 중개인이 있었을까? "나의 집에 보물이 없다. 오로지 청백뿐이다" 라고 청백리의 정신을 유산으로 남겼다고 하지만, 만휴정이야말로 엄청난 유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건물주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그래도 주님은 주님이니깐. 이상은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의 생각입니다.

 

푸르름이 가득한 여름도 좋지만, 만휴정의 진가는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 가는 가을이 아닐까 싶다. 깊은 산 속 만휴정, 조선시대로 돌아가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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