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장 투어 1탄 서울 삼해소주가
우리 전통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전국에 34곳이 있다. 모든 양조장을 다 가보고 싶기에, 양조장 투어를 시작한다. 비정기적으로 업로드 될 예정이므로, 2탄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양조장이라고 하면,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마을에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서울에도 양조장이 있다. 그리하여 가봤다. 양조장 투어 1탄, 서울 원서동에 있는 삼해소주가이다.
검색을 하니,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양조장으로 아담한 한옥건물이라고 나오던데, 막상 도착을 하니 한옥은 커녕 일반 가정집같다. 이런 곳에 양조장이 있다니 사전에 스페셜 시음 예약을 하고 갔기에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그냥 갈까?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을 해보니, 통화를 할때 양조장이라고 하기보다는 공방이라고 했던 거 같다. 자고로 양조장이라고 하면, 커다란 독이 수십 아니 수백개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딱봐도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술익는 냄새가 났다. 공방이라서 매일매일 술을 빚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2층으로 올라가는데 은은하게 술향기(탁주)가 난다. 범인(?)은 요녀석 지게미다. 지게미는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를 말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양조장보다는 공방답게 작지만 술을 빚는 기구들이 다 갖춰져 있다. 진짜 양조장은 지방에 따로 있고, 여기는 시음이나 아카데미용으로 술을 빚는다고 한다.
시음은 3층에서 진행된다. 참, 삼해소주가는 고려시대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 등장하는 삼해소주 제조방식을 그대로 계승한 김택상 명인이 술을 빚는 양조장이다. 삼해주는 음력 정월 첫 돼지일 해시에 첫술을 담근 뒤, 돌아오는 돼지일마다 세번 덧술을 쳐 저온에서 발효시키는 시양주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사이에서 널리 음용되던 서울의 대표 소주였다고 한다.
예약을 하고 갔기에 세팅이 다 되어 있다. 술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안주는 물과 참크래커뿐이다. 삼해소주는 워낙 독주가 많아서, 밥을 든든히 먹고 오라고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모든 시음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살짝 스포는 하면, 마지막에 마신 술은 도수가 70도짜리였다.
테이블에 있는 건 7병뿐이지만, 여기에 탁주와 약주를 더해 총 12가지 술을 마셨다. 시음이라서 양이 적어서 다행이지, 소주잔에 따라 마셔더라면 중간에 기절을 했을 거다. 삼해주의 주 재료는 맵쌀과 찹쌀, 누룩 그리고 물이다. 맑은 약주를 만든 뒤 숙성시켜서 증류하면 약주 투입 양의 30% 정도만 얻을 수 있는 고급 소주가 되는데, 이게 바로 삼해소주다. 장기 저온발효와 숙성 과정을 통해 약주를 증류하기에 풍미가 부드럽고, 뒷맛의 여운이 길며 첨가물이 일체 들어가지 않아서 숙취가 전혀 없단다. 하긴 취하기는 했지만, 다음날 숙취는 정말 없었다.
애피타이저로 얼린 야쿠르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또한 술이다. 떠먹는 탁주 이화주라고 한다. 조선시대때 마나님들이 주로 즐겨 마셨다는데, 수분함량이 적어서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아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좋아했단다. 배꽃이 필때면 집집마다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이화주를 빚었다고 한다.
탁주로 일반 막걸리는 4~5%인데 요건 마트에서 파는 녹색이랑 비슷한 17%다. 원래 탁주에는 지게미가 있지만, 이건 시음용이라 지게미가 없다. 그래서 다른 탁주에 비해 엄청 깔끔하며 단맛도 거의 없다.
상황주로 16~17%이며, 상황버섯 가루가 들어간 누룩으로 만든 약주다. 이 약주를 증류하면 소주가 된다.
국화약주로 도수는 상황주와 비슷하다. 일반 물대신 국화차를 우린 물로 술을 빚는다. 코로 느껴지는 국화향보다는 마실때 느껴지는 국화향이 훨씬 진하다. 향기가 입을 통해서 코로 전달되는 것인지, 입안에 머물고 있으면 그 향이 더더욱 진해진다.
포도약주로 물대신 포도즙을 우려서 만든 술이다. 포도생즙에 고두밥을 더하고 여기에 누룩을 넣으면 약주가 된다.
삼해소주가의 시그니처인 삼해소주다. 약주와 탁주는 16~17%였는데, 증류 후 소주가 되니 도수가 어마어마하다. 삼해소주는 45%로 그나마 약한편이다. 소주의 향은 대체적으로 곡향과 누룩향이다. 원재료가 같으니, 향도 비슷한 듯 싶다.
상황소주는 50%이며, 위스키 느낌이 강해서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5도 차이인데, 45도와 50도는 확실히 다르다. 즉, 겁나 독하다. 시음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국화소주로 역시나 50%다. 아까 시음했던 국화약주를 증류한 소주다. 개인적으로 약주가 마시기에는 편하지, 소주는 넘 힘들다. 중도에 포기할까 했지만, 무료가 아니라 유료시음(20,000원)이라서 꾹 참았다. 대신 소주로 넘어오면서 시음의 양을 줄었다. 그나마 약주는 마셨다고 할 수 있는데, 소주로 넘어가면서는 할짝할짝 대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독주는 독주다.
포도소주로 50%다. 국화나 포도 그리고 잠시후에 나올 귤소주는 재료로 인해 향은 다르지만, 맛은 똑같이 엄청 독하다.
귤소주로 50%다. 귤과육만으로는 향이나 맛이 부족해서, 말린 귤껍질을 같이 넣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삼해호박소주로 50%다. 호박석이라는 광물 가루가 증류단계에서 들어간다고 한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온다고 하더니, 귀주로 삼해소주를 다시 증류한 소주다. 알콜은 자그마치 71.2%다. 와우~ 입술이 타들어간다는 표현은 이럴때 써야한다. 살짝 대기만 했는데, 입에서 불이 나는 줄 알았다. 이렇게 독한 귀주를 즐겨마시는 분들이 있다는데, 그들은 정말 능력자다.
귀주 하나로 지금까지 마셨던 모든 술맛이 다 잊혀졌다.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시음이라고 하지만, 70도짜리 술을 마셔보다니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니 증류주는 우리의 전통방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고려시대때 몽골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증류 소주는 더 늦게 마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랍에서 출발한 증류기법이 서양으로 유입되어 위스키가 됐듯, 우리는 몽골에 의해 전파되어 소주가 됐다. 안동의 안동소주, 제주의 고소리술은 모두 다 몽골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전쟁 중에도 술은 마셔야 했으니, 그들이 지배했던 지역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증류방식이 전파됐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즐겨마셨다는 삼해소주, 개인취향은 아니지만 마셔봤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특히, 70% 귀주는 정말 정말 잊지 못할 거 같다. 70도를 넘는 술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양조장 투어 2탄은 언제 업로드 될지 알 수 없으나, 암튼 커밍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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