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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상사 

봄에 한번, 가을에 한번, 매해 2번씩은 길상사에 간다. 봄에는 금낭화와 모란을 만나러, 가을에는 꽃무릇을 만나러 간다. 늘 만개를 지나 꽃이 질무렵에 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늦지 않게 갔고 절정의 꽃무릇을 만나고 왔다. 구름 한점 없이 멋진 가을하늘 아래, 붉은 꽃무릇이 가득했던 길상사다.

 

나름 아침 일찍 준비를 했는데, 길상사에 도착을 하니 10시가 넘었다. 더 일찍 와야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꽃무릇을 만날 수 있는데, 아침형 아니 새벽형 인간은 너무 힘들다. 초록이 가득한 길상사에 붉은 무언가가 밖에서도 보인다. 곧 만나러 갑니다~

 

길상사 경내 곳곳에 꽃무릇이 피어있지만, 군락지는 2곳이다. 우선 들어오자마자 대웅전에 해당하는 극락전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법정스님을 만날 수 있는 진영각으로 가는 길이다. 꽃무릇이 만개이다 보니, 이를 담기 위해 온 분들이 겁나 많다. 망원에 삼각대에 엄청난 장비를 들고 온 사람들 틈에서 잘 담아내야 할텐데 걱정이다.

 

일년만에 다시 보니 반가워~

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붉은 양탄자. '너를 보기위해 일년을 기다렸는데 이렇게나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정말 고맙다.'

 

길상사 극락전

올 봄에도 같은 소원을 빌었는데,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계신 석가모니에게 다시 빌어본다. '코로나19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세요.'

 

예상은 했지만 사람이 겁나 많아~

꽃무릇을 찍으러 올때면 늘 같은 생각을 한다. 망원렌즈가 갖고 싶다. 주변 사람들을 보니,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삼각대에 연결하고, 멀리서 찍고 있다. 그들과 달리, 표준줌렌즈이다 보디 좀더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매번 같은 생각을 하는데,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망원렌즈에 삼각대까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자연햇살에 반짝반짝~

장비는 약하지만, 나만의 갬성으로 꽃무릇을 담으면 된다. 길상사는 나무가 많아서 이른 아침도 아닌데 마치 핀조명처럼 자연광이 너무나 근사하다. 

 

아름답다보다는 멋짐 폭발이다!

가을이면 길상사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 바로 너때문이야~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정읍 내장사가 꽃무릇 군락지로 유명하지만, 서울사람에게는 길상사가 가장 유명하다.

 

꽃무릇은 다른 식물과 달리 꽃이 진 후에야 잎이 돋아난다. 그래서 꽃과 잎은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다. 꽃말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인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길상사가 되기 전, 이곳은 요정 대원각이었다. 소유주인 김영한은 법정스님에게 당시 천억원이 넘는 7천여평의 절터와 전각 모두를 보시했다. 그리고 그녀는 법정스님에게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녀의 공덕비 앞에서 무소유를 실천하자고 또 다시 다짐을 해보는데,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한다. 

 

너의 이름은?

꽃무릇에는 전설이 있다. 먼 옛날 토굴에서 정진하던 스님이 불공을 드리러 온 여인에게 반해 가슴앓이를 하다가 상사병으로 쓰러진 자리에 피어난 꽃이 꽃무릇이라고 한다. 

 

보라보라한 누린내풀

스님 처소에도 꽃무릇이 가득이지만, 가까이 가지 않는다. 정진하는데 방해가 되면 안되니깐.

 

꽃무릇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대~
자연조명이 좋으니 보케놀이도 가능!
진영각으로 가는 길!
거미줄 따위가 감히~
랜선꽃구경도 좋지만 직관이 더 좋아~

진영각으로 가는 길은 계단으로 된 오르막이다. 5분도 안 걸리는 이 길을 10분이 넘도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너 때문이야~' 

 

진영각
법정스님 유골을 모신 곳에도 꽃무릇이~

지난 봄에는 덩그러니 의자만 있었는데, 이번에는 화분이 있어 그나마 덜 외로워 보인다. 진영각 끄트머리에 있는 오래된 나무의자는 법정스님이 앉으셨던 의자다. 

 

뜨거운 여름내내 활짝 피웠을 능소화는 이제 꽃무릇에게 자리를 내주고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안녕~ 나는 꽃무릇이라고 해!
길상사 범종

꽃무릇에 도토리까지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다. 

 

배롱나무 꽃 너머 보이는 길상사7층 보탑.

 

길상사는 10번 넘게 갔지만, 꽃무릇만을 보기 위해서는 올해가 4번째다. 매번 시기를 놓쳐 절정의 꽃무릇을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듯 그날의 꽃무릇 개화 정도를 확인했다. 9월 15일 즈음으로 만개를 한다더니, 9월 18일 가장 멋진 모습일때 만나고 왔다. 내년에는 새벽형인간이 되어 더 일찍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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