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그리고 연꽃
연꽃의 키가 그리 큰지 몰랐다. 물 위로 잎과 꽃만 보여서 작은 녀석(?)인 줄 알았는데, 도심 한복판에서 만난 연꽃은 성장주사라도 맞았는지 죄다 키가 몹시 크다. 그동안 물 위에 핀 연꽃만 봤지, 저수지가 깊은 줄은 몰랐나 보다. 조계사에 핀 연꽃을 보려면 까치발은 필수다.
기후변화로 인해 역대급 장맛비가 한달이 넘도록 내렸다. 지난달에 물폭탄을 맞으면 조계사에 갔고, 미소를 잃은 연꽃만 보다 왔다. 원래 연꽃은 쨍하고 해뜬날에 봐야하는데, 태양을 피하고 싶어 비오는날 갔다가 개고생만 하고 왔다. 이번에는 태양보다는 비를 피해 흐림과 맑음이 왔다갔다하는 오전에 서둘러 종로로 향했다. 버스에 내려 양산을 쓰고 조계사로 가는 길, 그동안 비가 많이 내려 연꽃이 다 사라지고 연잎만 잔뜩 남았으면 어쩌나 했다. 하지만 괜한 기우였다. 일주문 앞, 커다란 화분 가득 연꽃이 활짝 웃고 있다.
칠석맞이 인연성취등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지난번에 못했으니, 이번에는 할까? 혼자서 힘들때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도 될텐데, 아직은 덜 굶었는지 그냥 지나쳐갔다. 인연도 좋지만, 연꽃이 먼저다.
연꽃을 제대로 보려면 저수지로 가야 하는데, 서울 한복판에 저수지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래서 나를 깨우는 연꽃향기라는 타이틀로 조계사는 매해 여름마다 연꽃축제를 한다. 경내 가득 수백개의 화분은 마치 저수지에 있는 듯한 착각 아닌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마치 물 위를 걷는 듯, 땅 위를 걷고 있다.
풍성한 연잎처럼 연꽃도 그랬으면 했지만, 아무래도 역대급 장맛비가 원인인 듯 싶다. 그래도 지난번에 비해 활짝 웃고 있는 연꽃이 많아 보이지만, 기대에는 살짝 미치지 못했다.
홍련이 있으면 백련도 있다는데, 조계사는 홍련뿐이다. 다양성을 추구해도 좋으련만,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연꽃을 볼 수 있다는데 감사해야 하는데, 사람 욕심이 끝도 없다. 이러니 무소유를 3번 이상이라 읽었는에도, 여전히 유소유를 실천하고 있다.
연꽃은 원래 키가 컸다. 저수지에 잠겨있어 몰랐을 뿐이다. 다같은 연꽃인데 화분에 있는 연꽃만 키가 크다면 이상할 거 같아서다. 그나저나 키가 커도 이렇게 큰 줄을 몰랐다. 까치발을 해야 볼 수 있는 연꽃도 있지만, 멀대처럼 키가 큰 녀석(?)들도 꽤 많다.
저수지에 핀 연꽃은 연잎 위로 핀 꽃만 보니, 그 키를 가늠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계사에서 만난 연꽃은 성장판에 가속엔진이라도 달았는지 키다리 연꽃이 많다.
두더지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누가 큰가 자랑을 하는 건 더더욱 아닐텐데, 불쑥불쑥 튀어 나와 있는 연꽃들이 귀엽다.
분홍 연꽃의 꽃말은 순결과 청순이라고 한다. 하얀 연꽃은 결백과 순수, 가시연꽃은 청정, 신성, 순결, 번영, 장수, 그대에게 행운을 이라고 한다. 그저 느낌적인 느낌상, 청순계열일 거 같았는데 예상이 맞았다.
대웅전에서 들려오는 불경소리, 음력 24일을 불교에서는 관음재일이라고 한다. 어릴때는 엄마 손잡고 모태불교인으로서 자주 갔는데, 요즈음 무늬만 불교인이다. 오랜만에 왔으니 법당에 들어가 절을 할까 하다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니 멀리서 합장만 했다.
혼자 오기도 했지만, 일주문을 지나 현재까지 때아닌 묵언수행 중이다. 눈은 연꽃을 바라보고, 카메라를 든 손은 연꽃을 담고, 귀는 스님의 불경 소리를 경청 중이다.
조계사 회화나무는 500년가량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회화나무는 가장 늦게 잎이 돋아 가장 늦게 잎이 지는 것으로 예로부터 군자의 성품을 닮았다고 해서 군자목으로 불리고 있다. 어렸을때 석가탄신일에 조계사에 가면, 늘 회화나무 주변에 앉아서 법요식을 바라보곤 했다.
조계사 법종루는 법고, 운판, 목어, 범종 등의 사물이 있는 곳이다. 매일 새벽 예불(오전 4시경)과 저녁 예불(저녁 6시경) 그리고 특별한 행사때 친다고 한다. 사물을 치는 순서는 법고, 범종, 목어, 운판이다.
창경궁에서 봤던 백송이 조계사에도 있다. 천연기념물 9호로 지정된 백송은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종이라고 한다. 조계사 백송은 조계사 전신인 각황사에 있던 것을 절을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함께 이전해 온 것으로, 수령은 5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가 오던 날에는 연잎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원없이 봤는데, 이번에는 보물찾기하듯 찾아야 했다.
연꽃을 만날 수 있는 서울 사찰은 조계사와 길상사 그리고 봉은사다. 봉은사를 제외하고는 직접 가봤다. 찾아보면 더 있을 거 같은데, 3곳만 알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여름이 남아 있지만, 봉은사 연꽃은 내년에 가야겠다. 왜냐하면 기나긴 장마가 간 후, 폭염이 찾아왔으니깐.
조계사도 좋고, 길상사도 좋고, 도심에서 연꽃을 만날 수 있어 좋지만, 2% 아쉬움은 있다. 산지직송보다 산지가 좋듯, 연꽃도 화분보다는 저주지에서 봐야 한다. 내년 여름에는 봉은사도 좋지만, 무안 백련지, 창원 주남저수지, 대구 반야월, 시흥 관곡지 등 연꽃단지에서 보고 싶다.
'멋을찾아서 > in seoul'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려하고도 쓸쓸하여라 가을 석파정 (22) | 2020.11.02 |
---|---|
70도짜리 소주를 원해 서울 양조장 삼해소주가 (16) | 2020.10.22 |
꽃무릇 가득한 길상사의 가을 (19) | 2020.09.21 |
이강주 받고 전통주 시음해 식품명인체험홍보관 (19) | 2020.09.17 |
우리 전통주 맘껏 시음해 식품명인체험홍보관 (13) | 2020.08.26 |
물폭탄에 조계사 연꽃은 방긋 웃지 않아 (16) | 2020.07.28 |
올해보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서울숲 수국길 (21) | 2020.07.08 |
뛰지 말고 걸어라 경춘선숲길 (feat. 화랑대역사관) (23) | 2020.06.24 |
뛰지 말고 걸어라 경춘선숲길 (15) | 2020.06.22 |
정전에서 종전으로 그날이 오길 전쟁기념관 옥외 대형장비전시장 (18) | 2020.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