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베트남노상식당
매번 다짐을 하지만, 언제나 선택은 똑같다. 쌀국수가 아니 다른 걸 먹어보자, 들어가기 전 생각이다. 문을 열고 자리에 앉고 메뉴판까지 정독을 하지만, 늘 같은 말을 한다. "쌀국수 주세요." 목동에 있는 베트남노상식당이다.
만원이 넘지 않는 쌀국수 집이 생겼다고 해서 초창기에는 종종 갔는데,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그동안 없어지지 않았을까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모습 그대로 있다. 혼밥은 언제나 느즈막에 가야 한가롭게 먹을 수 있다. 베트남 노천 스타일의 로컬식당이라고 하지만, 노천에 있지않고 번듯한 목동드림타워 1층에 있다. 그때는 창가석이 따로 없었는데 혼밥러를 위해서인지 바테이블이 생겼다.
메뉴판 책자라고 할만큼 메뉴가 엄청 많다. 베트남은 기본, 똠양꿍의 나라 태국 그리고 나시고랭의 나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음식들이 많고도 많다. 그때도 지금도 이번만은 다른 걸 먹어보자 다짐을 하지만, 언제나 1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노상 프리미엄 쌀국수(7,500원) 주세요."
베트남 노상식당을 좋아하는 건, 고수를 맘껏 먹을 수 있어서다. 기본반찬을 셀프로 가져올 수 있는데, 언제나 고수는 잔뜩이다. 예전에는 3번정도 더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2번만 해야 할 거 같다. 왜냐하면 손님은 나 혼자이고,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고 있지만 주인장의 시선이 느껴진다. 멍석 깔아주면 어쩌고 저쩌고 한다더니, 자꾸 쳐다보니 부끄럽다.
고기는 양지와 우삼겹이 들어있고, 어묵이라고 하고 싶은데 메뉴판에는 피쉬볼이라 나와있다. 쌀국수 특유의 향과 함께, 전날 음주를 하지 않았지만 묵은 숙취가 사라질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고수 플렉스라고 해야 할까나. 쌀국수에 고수비 아니 고수장맛비가 내려온다. 고수로 가득 채운 쌀국수, 이거이거 느무 맘에 든다. 다른 곳에 가면 고수를 너무 조금 줘서 늘 아쉬운데, 여기는 아쉬움이 일절 없다. 왜냐하면 셀프로 가져오면 되니깐.
고수를 넣기 전보다 넣고 난 후, 쌀국수 향은 더 진하고 강해졌다. 역시 쌀국수에 고수는 과하다 싶을만큼 많이 넣어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기름많은 우삼겹에 비해 순살코기인 양지가 낫다. 피쉬볼은 그냥 어묵맛이다.
딱 꼬집어 이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쌀로 만든 면과 밀로 만든 면은 다르다. 밀면은 제대로 씹지 않아도 후루룩 목넘김이 부드럽다면, 쌀국수는 후루룩을 하다 중간에 두어번 정도 멈춰서 저작운동을 해줘야 한다.
쌀국수만 먹기 살짝 섭해서 짜조(4,500원)를 추가 주문했다. 비주얼은 바삭인데 찹쌀피라고 그런지, 바삭보다는 쫀득하다.
고기를 올려서 한입, 피쉬볼을 올려서 한입, 고명은 다르게 할 수 있지만 고수는 늘 함께해야 한다. 사실 고수를 너무 많이 넣어서, 고수를 빼고 먹기 힘들다.
숙주나물 리필이 안되는 줄 알았는데, 주인장이 뭐가 더 필요한 게 없냐고 물어본다. 혹시 숙주했더니? 가능하단다. 잠시 후, 숙주가 나왔는데 생이 아니라 살짝 익힌 숙주다. 쌀국수 국물이 뜨거울때 생숙주를 넣어야 하는데, 먹다가 나오는 바람에 국물이 살짝 식은 상태였다. 그래서 풋내나는 숙주를 먹겠구나 했는데, 살짝 데쳐서 풋내는 없고 식감은 살아있다. 주인장의 센스가 느껴진 순간이었다.
숙주로 인해 양은 1.5배가 됐다. 쌀국수면과 숙주나물, 면에 없던 아삭함을 숙주가 살려주고, 숙주에 없는 든든함을 면이 살려준다. 여기에 향이 좋은 고수에 뜨끈 시원한 국물 그리고 양파김치(?)까지 더해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고명이 다양하니 먹는 재미도 다양하다. 여기에 칠리소스로 만든 양파김치를 더하면 매콤함이 살아난다. 국물은 숟가락이 아니라 그릇째 들고 마시고,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바닥이다. 야무지게 먹어버린 쌀국수, 누가 다 먹었지? 범인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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