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흥 오이도 전통수산시장
오이도의 상징인 빨간등대가 바로 보이는데도 볼 시간이 없다. 주꾸미가 익어가는 타이밍을 놓치면 안되기 때문이다. 만들고, 먹고, 마시고, 찍고 혼자서 북치기 박치기 바쁘다. 절경보다는 맛이 먼저이기에, 이정도 고생은 고생도 아니다.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전통수산시장에서 제철 주꾸미 샤브샤브를 먹다.
오이도 함상전망대에서 빨간등대까지 제방길을 걷는내내 보이는 건, 바다와 식당뿐이다. 강한 바닷바람에 배고픔은 빠르게 찾아왔나 보다. 밥 달라고 난리이니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무작정 왔기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밥집은 출발 전에 미리 몇군데를 정하고 오는데, 이번에는 급 나들이라서 아무것도 모른다. 이럴때는 촉을 믿어야 한다.
괜찮아 보이는 조개 무한리필 식당에 전화를 해보니, 2인부터라서 혼자는 단품만 먹어야 한단다. 그냥 2인분으로(왠지 그정도는 충분히 먹을 거 같기에) 계산을 하고 먹을까 하던 중, 내눈 앞에 오이도 전통수산시장이 나타났다.
오이도 전통수산시장은 1999년부터 영업을 시작했고, 명칭을 바꾸기 전에는 오이도 수산물 직판장이었단다. 수산시장이 떡하니 나타났는데, 굳이 비싼 식당에 갈 이유는 없다. 제방길 아래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차가 많던데, 시장 안은 썰렁하다. 코로나19 영향도 있겠지만, 요즈음 시장보다는 식당을 찾는이가 많은가 보다. 1층에서 횟감을 산 후, 2층에서 세팅비를 내고 먹는 방식은 불편할 수 있어도 신선도는 시장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고로 오이도 전통수산시장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다양한 횟감이 있지만, 제철 주꾸미가 눈에 쏙 들어왔다. 1kg에 2만원이란다. 옆 가게에는 2만5천원이라고 했더니, 그건 어제 경매가격이고 오늘 경매가격은 2만원이란다. 그렇다면 구입은 고흥수산이다. 일부러 하라고 해도 못할텐데, 신기하게도 낯선 곳에 가면 남도 가게를 찾게 된다. 이번에는 간판도 안보고 가격으로 결정한 후, 주인장이 주꾸미를 담아주는 동안에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는데 역시나 남도 가게다. 그나저나 용기 또는 물 무게일 수 있지만, 1.5kg에 가깝다.
수산시장이 다 그러하듯, 1층에서 해산물을 구입하면 2층 어느 집으로 가라고 말을 해주는데, 이번에는 직원분이 직접 안내를 해줬다. 주꾸미를 산 곳은 고흥수산, 주꾸미 샤브샤브를 먹을 곳은 전라도양념이다.
창가석 경쟁이 치열한데, 한산하니 무지 여유롭다. 밖에는 여전히 바람이 매우 몹시 심하게 부는데, 여기는 겁나 따뜻하다.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스르륵 잠이 올 거 같은데, 주꾸미 샤브샤브를 앞에 두고 잘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창가석인데도 오이도 빨간등대는 한번만 본 거 같다. 더 멋진 장관이 테이블에 펼쳐져 있으니깐. 사실은 여기 오기 전에 빨간등대를 먼저 다녀왔다.
사진이라 보이지 않을뿐, 사부작 사부작 비닐 소리가 난다. 즉, 주꾸미가 살아 있다는 거다. 커다란 새우에 바지락 그리고 배추, 콩나물, 호박, 팽이버섯, 단호박 등등 채소가 엄청 많이 들어 있다. 이걸 혼자서 다 먹어야 하는데, 주꾸미만으로도 배가 찰 거 같아 채소는 조금만 먹어야겠다.
주꾸미가 어찌나 힘이 좋은지 집게를 이용해 들어올리는데 버겁다. 빨판이 비닐에 달라붙어서 힘이 들었지만, 먹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니 결국은 나의 승리다. 그나저나 혼자서 샤브샤브는 처음이라서, 언제 먹어야 하는지 타이밍을 모르겠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검붉은색이 되면 먹어도 된다는데 그 순간을 모르겠다. 몇초 혹은 몇분정도 둬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하니 모르겠단다. 그리하여 타이밍을 알기위해 묻고 또 물었다. 요 상태는 아직 아님.
3번 정도 거듭된 질문을 끝으로 먹으라는 신호를 받았다. 아하~ 검붉은색은 이정도를 말하는 거구나. 완전 감 잡았다.
윗니, 아랫니가 서로 만나지도 않았는데, 주꾸미는 사르륵 사라졌다. 오래 익으면 질겨진다고 해서 엄청 걱정했는데, 누가 했는지 질김은 일절 없고 부드러움만 가득이다. 여기에 바다에서 막 잡은 주꾸미를 먹는 듯, 신선도는 가히 최상급이다. 조개구이가 아니라 주꾸미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 간장, 초고추장은 그저 사치일 뿐, 그냥 먹어도 충분히 좋다.
혼자다 보니 한마리씩 냄비에 넣고 있는데, 사람이 참 사악하다. 비닐에서 주꾸미를 꺼내 냄비에 넣을때는 "미안해, 미안해"를 연발하면서, 얼마 후 검붉은색 꽃으로 바뀌면 "반가워, 반가워"하고 있다.
내장이 있는 건 구수하고, 알이 있는 건 퍽퍽하지만 고소하다. 그나저나 혼자 먹기에는 과함이 있다. 고로 머리보다는 다리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겠다.
맑았던 국물이 어느새 시꺼먼 국물이 되어 버렸다. 먹물이 터지지 않기 바랬지만, 그건 불가능이다. 비주얼은 거시기(?) 할 수 있으나, 이 맛을 알기에 개의치 않는다. 원래는 라면을 먹으려고 했는데, 수제비 반죽을 직접한다는 말에 바로 주문을 바꿨다.
플레이팅을 위해 주꾸미를 일부러 남겼다. 보기와 다르게 깔끔한 국물에 손으로 만든 야채 수제비 그리고 주꾸미까지 피날레로 딱이다. 면이 아니라서 후루룩 면치기는 못하지만, 수제비이다 보니 국물과 함께 꿀꺽 잘도 넘어간다.
두시간의 대장정이었다. 이렇게 기나긴 점심은 또 처음이다. 모든 걸 혼자서 해야하니 시간이 더 걸렸던 거 같다. 육수를 3번이나 리필을 했고, 타이밍을 맞추려고 신경도 엄청 썼다. 먹으면서 저절로 교육이 됐는지, 이제 주꾸미 익는 타이밍은 정확히 잡아낼 거 같다. 제철 주꾸미를 샤브샤브로 원없이 먹었으니, 당분간은 생각나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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