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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문학관 2017년 촬영

2권이 더 많은 아리랑은 두달만에 다 읽었는데, 태백산맥은 4달이나 걸렸다. 아리랑은 작년에 처음 읽기 시작해 끝을 봤지만, 태백산맥은 1권만 대여섯번 정도 읽었던 거 같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추천으로 무조건 읽어야 했기에 시작을 했다가 100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어려워서 포기를 했다. 몇 년 후 다시 도전했다가 또 같은 이유로 포기, 그렇게 몇번의 거듭하다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 3년 전 벌교로의 여행에서 태백산맥 문학관을 시작으로 영화 촬영지처럼 소설에 등장한 곳을 찾아다녔다. 이번에는 기필코 꼭 성공하리라 다짐했건만, 역시나 2권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 여름 아리랑부터 태백산맥 그리고 한강까지 이번이 아니면 죽을때까지 성공하지 못할 듯 싶어, 즐겨듣는 팟캐스트에 게임앱까지 다 삭제하고 밀리의 서재를 통해 책읽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두달만에 아리랑을 읽었고, 드디어 태백산맥 10권의 마지막 장을 읽었다. 스스로에게 무지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은데, 맘이 우울하고 눈에 그득그득 눈물이 고였다. 그저 소설일 뿐인데, 이상하게도 감정 조절이 안된다. 아리랑은 절망같은 희망에서 끝이 났지만, 태백산맥은 희망은 개뿔 죽음같은 절망에서 끝이 났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

 

16,500매 조정래 작가의 육필원고

소설 태백산맥은 여순사건이 있었던 1948년 늦가을 벌교 포구를 배경으로, 제석산자락에 자리잡은 현부자네 제각 부근에서부터 시작해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 늦은 가을 어느 날까지 우리 만족인 겪었던 아픈 과거를 반추해내고 있다고 태백산맥 문학관 팸플릿에 나와있다.

 

《지식인 출신 염상진과 그를 따르는 하대치, 회의하는 지식인이지만 역사로부터 끊임없는 선택과 실천을 강요당하는 김범우, 이성적인 국군장교 심재모, 우익 청년단장 염상구, 손승호, 서민영, 안창민, 소화와 이지숙, 외서댁, 들몰댁 등 그들이 엮어 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씨줄이 되고 날줄이 되어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베로 짜여진 것이다.≫

3년 전 소설을 읽지 않고 봤던 팸플릿의 내용은 그저 영화 소개 문구처럼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문구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떻게 살았고 죽어갔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아프고 슬플뿐이다.

 

현부자네(좌) / 소화네집(우)

"현부자가 제각과 별장을 신축하면서 그들이 거처할 조그만 집을 바깥 터에다 마련해 준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소화와 어머니)은 현 부자네 전속 무당인 셈이었고, 무당 월녀의 굿은 신통력이 높기로 근동에 소문이 짜했다."(본문중에서)

 

김범우의 집

"어떤 주의를 따르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요. 그러나 그것이 곧 민족 전체를 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미국이다. 소련이다.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우리에게 필요한 생활의 방편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족의 발견입니다. 그 단합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해요."(본문중에서)

 

태백산맥에서 주인공을 꼽으라면, 이념대립이 아니라 민족의 단합이 먼저라는 김범우와 빨치산으로 공산주의자 염상진이다. 영화 태백산맥에서 김범우 역에 안성기, 염상진 역에 김명곤이 나왔다. 그리고 형제이지만 형은 공산주의 동생은 빨갱이를 잡는 우익 청년단장으로 염상구라는 인물도 있다. 그리고 나약한 변절자 지식인에서 끝내 투철한 빨치산이 된 손승호에 올바른 국군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진급은 못하는 심재모도 있다. 염상진의 든든한 부하에서 빨치산을 이끄는 마지막 전사가 된 하대치와 근친인지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진 소화와 정하섭도 나온다.

 

중도방죽

태백산맥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역사의 진실, 원자폭탄은 일본에 떨어졌는데, 왜 우리가 분단국이 됐을까? 

"미국과 소련이 전범국인 독일을 분할점령한 것은 승전국으로서 전리품을 처리하는 당연한 권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그런 권한은 또 하나의 전범국인 일본에게 행사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들은 우리나라를 분할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팽창주의는 소련의 팽창주의가 일본에까지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생략) 그래서 미국은 일본 열도를 독일식으로 나눠먹지 않고 독식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건 태평양으로 뻗치는 소련의 힘을 견제하는 동시에 태평양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당연히 한반도 분할이 필요했고, 독일에서와 달리 일본 쪽에 전적이 미미한 소련은 반이나마 차지하는데 동의한 것입니다"(본문중에서)

 

철다리

반민특위가 실패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는 해방 후 첫단추부터 잘못 됐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이 쫓겨 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인력공백 상태가 발생했는데, 그 빈자리를 친일파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조직 인력부족 사태는 친일 공무원이나 경찰을 재등용시키는 그럴듯한 명분과 구실이 됐다.

 

"친일반역자들의 처단은 해방이 된 그날부터 민중들의 손에 의해서 감행됐어야 했던 거야. 그자들은 거의 몸을 숨겨 스스로의 죄를 입증했으니까 골라내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 미군이 점령하기 전까지 우리 민중들에겐 20일이 넘는 절호의 시간이 주어져 있었어. 거기다가 건준이 신속하게 조직구성을 했지. 그런데 민중들도 그 아까운 시간을 허송했고, 건준도 전국방방곡곡에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민중조직을 결속시켜 그 일을 단행하는데 소홀히 하고 말았어."(본문중에서)

 

홍교

해방 후 6.25전쟁까지 5년동안 반민특위에 이어 농지개혁까지 실패로 돌아갔다. 북쪽에서는 무상몰수, 무상분배했지만, 남한에서는 지주에게 돈을 주고 농지를 몰수하며, 소작인은 돈을 내고 농지를 분배받는다는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했다. 농지개혁의 성패는 정부의 존립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였지만, 돈 많은 지주들은 쉽게 땅을 내놓지 않았다. 정보가 빠른 자들은 벌써 남의 이름으로 소유권을 넘기거나, 팔거나 등등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이러니 소작인들 사이에서는 우익보다는 좌익을 더 좋다고 했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빨치산이 되고자 했던 이들도 많았다. 

 

또 몰랐던 역사의 진실, 그건 주인인 대한민국 국군이 객에 불과한 유엔군에 편입이 됐다는 거다.

"마침내 12월에 이르러 국군의 통수권을 미군에게 이양하는 협정이 체결되었다. 심재모는 무릎이 꺾이는 절망을 느꼈다. 헌법에 따라 국군의 통수권은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행사하는 절대적이고 고유힌 권한이었다. 그 권한을 미군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국권의 포기이고 주권의 상실이었다."(본문중에서)

"작전권이양서라는 것은 이름만 다른 또 하나의 한일합방조인서인 것이고, 작년 7월 12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라는 걸 공인한 날입니다."(본문중에서)

 

"아이고메. 징허고 징헌 눔의 시상. 일정 때넌 일정 때라고 끌어가고, 인공 때넌 인공 때라고 끌어가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라고 끌어가고, 나라라고 생긴 것은 해주는 것 암것도 읎음시로 못 묵고 못 입고 보존해 온 생목심덜 끌어다가 쥑이는 일만 헌당께로. 냄편이고 아덜이고 열썩이라도 못 당허겄다. 요런 징글징글한 눔에 시상!"(본문중에서)

그때와 달리 지금은 대한민국이 있어 뿌듯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시상은 그때와 달리 많이 달라졌고, 잠시 그때로 돌아갈뻔 한적도 물론 있지만,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그러니 손주, 손녀때가 되면 보리고개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꼭 말하고 싶다. 

 

태백산맥을 읽으면 생기는 좋은 변화가 있다. 그건,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거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능력도 갖게 된다. 아리랑에서 태백산맥에 왔으니, 이제는 한강(10권)이다. 그리고 장기 프로젝트의 마지막은 천년의 질문(3권)이다. 

 

▣ 조정래 작가의 소설 아리랑 리뷰

 

조정래의 아리랑 | 소설이 아니라 역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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