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동 동리장
유전적인 입맛이 있다면, 사회적인 입맛도 있을 것이다. 어릴때는 굴을 질색팔색하더니, 지금은 굴 바보가 되어 버렸다. 설음식으로 굴전을 했건만, 가족 중 먹은 이는 나뿐이다. 이런 가족에게 어리굴젓을 같이 먹자고 하면 욕이나 잔뜩 먹을 거 같다. 고로 어리굴젓은 혼자서, 도화동에 있는 동리장에서 먹는다.
점심에 오면 기계에게 주문을 해야 하지만, 저녁에 오면 사람에게 주문을 하면 된다. 메인은 어리굴젓이지만, 반찬 항목에 있어 식사류 중에서 하나를 주문해야 한다. 레트로 유리병에는 쥬스가 아니라 보리차가 들어있다.
어리굴젓(3,500원)에 공깃밥 하나 아니 둘, 이렇게 주문하면 딱 좋지만, 반찬만 주문이 안된다. 그래서 동리장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애호박찌개(7,000원)를 주문했다.
애호박찌개를 주문하면, 반찬으로 계란옷을 입은 분홍소시지와 오이 그리고 깍두기가 함께 나온다. 옛날소시지는 추가 주문이 가능하지만, 이번에는 안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어리굴젓이 있으니깐.
작년 동리장을 처음 갔을때, 큼직한 애호박과 돼지고기기 들어있는 찌개에 현혹되어 버렸다. 찌개를 시작으로 강된장 덮밥에 술국 그리고 애호박칼국수까지 고기메뉴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먹어봤다. 누가봐도 메인은 찌개지만, 지금은 그저 어리굴젓을 먹기위한 도구일 뿐이다.
반찬이 아니라 당당하게 식사류에 포함시켜도 될텐데, 아무래도 가격때문인 듯 싶다. 고소한 참기름이 더해진 어리굴젓은 진한 굴내음과 함께 밥을 엄청 많이 부르는 밥도둑이다.
누군가는 뜨거운 밥에 스팸을 올려서 먹겠지만, 지금 이순간에는 뜨거운 밥에 어리굴젓이 정답이다. 굴 냄새를 싫어한다면 기피음식이 되겠지만, 나에게 있어 너는 그 누구보다 더 사랑스럽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젓갈답게 짠맛이 강하다. 그래서 공깃밥 추가는 안 비밀이다.
메뉴에 어리굴젓수육이 있지만 혼밥이라서 무리다. 고로 애호박찌개에 들어있는 돼지고기를 이용한다. 그냥 먹어도 충분히 좋은 어리굴젓, 고기를 더하니 아니 좋을 수 없다. 아하~ 이래서 수육 메뉴가 생긴 듯 싶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족발과 어리굴젓을 함께 먹었던 적이 있다. 홍어삼합은 자신 없지만, 어리굴젓 삼합은 너무 잘 먹을 거 같다.
빈대떡에 어리굴젓 조합은 아주 잘 아는데, 분홍소시지전에 어리굴젓이라? 이또한 괜찮다. 젓갈이다보니 짠맛이 강한데, 담백한 계란에 소시지가 이를 잘 보완해준다. 밥을 사이에 두고 양쪽 다 빨갛고 간이 강하다 보니, 녹색이가 있어도 입안 가득 짠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공깃밥 추가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지난번에도 그리고 이번에도 어리굴젓을 먹을때 공깃밥 추가는 무조건 무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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