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함흥냉면
겨울에는 평양냉면을 주로 먹지만, 가끔은 함흥냉면도 먹는다. 입맛 돋우는 빨간 양념 회냉면에 오이 가득 간재미 회무침까지 이건 밥이 아니라 완벽한 안주다. 깊은 밤 영등포에 있는 50년 전통의 함흥냉면으로 향했다.
1967년에 창업을 했으니, 올해로 53년째다. 유행에 민감한 영등포 뒷골목에서 반세기를 이어 왔으니, 구차한 설명은 입만 아플 뿐이다. 개인적으로 양념이 과한 함냉보다는 무채색에 가까운 평냉을 더 선호하지만, 영등포에서 냉면을 먹는다면 무조건 이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테이블이 얼마 없어 살짝 당황할 수 있다. 왜냐하면 50년이나 된 곳이라면서 보기와 다르게 너무 협소하니깐, 하지만 걱정을 접어두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디따 넓은 내부가 나온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저녁 10시까지다. 낮에 왔다면 밥으로 먹었을 테지만, 밤에 왔으니 안주다.
냉면 사리는 고구마 100% 전분이며, 회냉면에 올라가는 회는 간재미 선어(베트남산)로 만든다. 32년 근속의 주방장과 10년이 넘는 조리사들이 만들어 내는 함흥냉면이니 맛의 변함은 없을 거 같다.
혼자 왔으면 회냉면만 주문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둘이서 왔다. 고로 회냉면(10,000원)에 회무침(소, 20,000원)을 주문했다.
함흥냉면 먹는 방법이다. 테이블마다 참기름, 식초, 겨자, 설탕이 있으니 개인취향에 맞게 넣어 먹으면 된다. 개인적으로 식초와 겨자를 살짝 추가하는데, 이번에는 지인의 취향대로 참기름을 조금 추가했다.
냉면만 먹을때는 깍두기를 주지 않던데, 아무래도 회무침에 녹색이를 주문해서 나온 듯 싶다. 잘 익은 깍두기에 감칠맛 나는 육수, 본게임은 시작도 안했는데 녹색이가 자꾸만 줄어든다. 12각 성냥도 아니고 그저 조그만 물잔일 뿐인데, 이집의 역사가 보인다. 레트로 갬성이 아니라, 여긴 진짜다.
가장 먼저 나온 간재미 회무침이다. 우선 오이를 먹지 못한다면 절대 주문하면 안된다. 오이를 빼달라고 요청을 해도 되지만, 회무침 속에 좀 더 큼직한 오이가 들어 있다. 채썬 오이를 살짝 덜어내면 잘 삭힌 간재미 회가 나온다. 삭혔다고 해서 홍어회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홍어회가 주는 톡 쏘는 암모니아 향은 절대로 없다. 회냉면에 나오는 회가 면없이 오이를 더해서 나온 것이다.
빨간 양념이지만 전혀 맵지 않다가 아니라, 매운맛이 서서히 올라온다. 그렇다고 불닭볶음면처럼 미친듯이 매운맛은 아니고 육수로 진화를 하면 충분히 잠잠해지는 매운맛이다. 부드러움 속에 쫀득함이 있는데, 회무침만 먹기보다는 아식한 오이와 함께 먹으면 식감이 훨씬 좋다. 더불어 오돌뼈처럼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도 매력적이다.
참기름을 2~3방울 정도 추가를 한 후, 냉육수를 반정도 붓는다. 그냥 비비면 꾸덕꾸덕해서 잘 비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리저리 마구마구 막 비비면 된다. 비비기 전에 노른자가 풀어질 수 있으니, 삶은 계란은 따로 빼놓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오이가 가득이다. 오이를 못 먹는 지인이 있는데, 쏜다하면서 여기를 데리고 가면 욕만 바가지로 먹을 거 같다. 냉면을 먹을때 가위를 절대 사용하지 않지만,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먹어야 하니 배분을 위해 가위질을 했다. 회무침에 비해 회냉면은 빨간맛이지만 매운맛은 거의 없다.
탱탱한 면발은 파스타처럼 돌돌 말고, 여기에 오이와 간재미 회를 더한다. 제각기 다른 식감과 맛을 갖고 있지만, 하나가 되는 순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냉면을 먹다가 중간에 냉육수를 추가해 물냉면으로 먹어야 하는데, 이대로도 충분했기에 놓쳐 버렸다. 회냉면을 먹을때마다 늘 간재미 회를 더 먹고 싶어 했는데, 이번에 소원풀이를 했다. 만약에 회무침을 주문하고 냉면말고 면사리만 주문할 수 있다면, 녹색이를 옆에 두고 혼자서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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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2 - 영등포 함흥냉면 50년 전통의 냉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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