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명 서양술집
어느덧 아지트가 되어 버렸다. 정말로 맛있는 집은 숨어있나 보다. 대로변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은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그곳에서 멋진 사람들과 맛있는 저녁을 함께 했다. 광명시 철산동에 있는 서양술집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6시면 어둑어둑해졌는데, 확실히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졌다. 눈이 아닌 비가 내렸던 어느날, 한달에 한번 만나는 월간친구와 알파를 서양술집에서 만났다. 주로 혼자 다니면서 먹었던 곳들 중 월간친구가 찜을 하면 다음달 모임 장소가 된다. 우리끼리 월간 매거진이라고 부를까 말까 하고 있기도 하고, 암튼 모임을 위해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하니 스트레스라기 보다는 기분 좋은 부담감이다.
작년 12월에 이어 두번째 방문이다. 그때 어니언스프에 안심크림파스타를 먹고, 월간친구와 알파가 무척 좋아하겠구나 했는데, 역시나 다음달 모임을 여기서 하고 싶단다. 옳다구나 하면서 일주일 전에 인별그램으로 예약을 했다. 4인, 2인 테이블만 있는 곳이나, 서양술집은 무조건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먹고 싶은 맘에 무턱대고 그냥 찾아갈 경우, 못 먹을 수도 있으니 예약은 필수다. 공간이 좁아서 답답할 수 있지만, 이날은 운이 좋았는지 다른 손님은 없고 우리들만 있어서, 마치 식당을 전세낸 듯 두어시간을 여유롭게 즐겼다.
월간친구와 알파가 오기 전, 메뉴판 정독을 먼저 했다. 지난번에 왔을때 먹었던 어니언스프를 기대했는데, 메뉴판에서 사라졌다. 이게 바로 서양술집만의 매력이랄까? 올때마다 메뉴가 달라지니 늘 첫번째 방문같다. 어니언스프는 양파 볶기만 3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서, 추운 겨울에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1번부터 8번까지 다 먹어보고 싶으나, 그럴 수 없으니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이때 1일 1개 한정이라는 부야베스가 눈에 들어왔다. 해산물의 신선도를 위해 많이 준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8번은 무조건이고, 그 다음은 서양식 육회라는 비프 카르파치오다.
냅킨을 누르고 있던 작은 냄비에는 겁나 딱딱한 과자가 들어 있고, 물은 따끈한 보리차다. 와인이 있긴 하지만, 한국식 화이트 와인인 이즈 백을 주문했다. 잔을 보니, 와인보다는 샴페인이라고 해야 할 듯 싶다.
비프 카르파치오가 맞나 싶었는데, 웰컴샐러드란다. 싱싱한 채소에 짭조름한 햄 그리고 달달한 치즈 여기에 톡톡 터지는 석류까지 상큼하니 애피타이저로 딱이다. 입맛을 확 돋우면서 급 배고품이 찾아왔다.
서양식 육회라고 불리는 비프 카르파치오다. 지금까지 먹었던 우리식 육회, 육사시미와는 맛이 완전 다르다. 낯선 비주얼에 트러플 오일까지 들어갔다고 해서, 이상하면 어쩌나 했다. 트러플 오일과 페코리노 로마노치즈대신 노른자와 배가 더 어울릴 거 같은데 했다. 그런데 맛을 본 순간, 번쩍하고 무언가가 지나갔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 맛인데, 겁나 새롭다. 꾸리살은 소의 견걉골(어깨)에 해당하는 부위라는데, 차진 맛이 엄청나다. 적당한 찰기에 쫀득쫀득함 그리고 부드러움까지 갖고 있으며, 고기 잡내는 일절 없다. 대신 과하지 않지만 은은한 트러플 향이 맛을 더 증폭시킨다. 앞으로 트러플 오일은 짜파게티가 아니라 육회에 양보해야겠다.
따끈한 다시마버터빵 위에 비프 카르파치오는 누가봐도 반칙이다. 페어플레이를 지향하지만, 맛을 위해서라면 요런 반칙은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
피클도 주인장이 직접 만드는 거 같다. 지난번과 다르게 매콤함을 더했고, 양배추와 무 피클은 흔하게 먹을 수 있지만 사과피클은 처음이다. 첫맛은 사과의 달콤한, 뒷맛은 피클의 상큼함이다. 리필까지 해서 먹고 또 먹었다.
부야베스로 가기 전에, 월간친구에게 파스타 선택권을 줬다. 봉골레와 버섯크림 중 고민을 하다가, 부야베스에 해산물이 들어가니 버섯크림으로 결정했다. 이번에도 옳은 선택을 했다. 진한 크림에 적당히 잘 삶은 파스타 그리고 새송이와 양송이 버섯은 조화롭다. 크림 속에 빠져있는 건 익은 버섯, 고명처럼 위에 올려진 버섯은 생 양송이버섯으로 마치 가쓰오부시 같은데 춤은 추지 않는다.
프랑스 음식인 부야베스는 각종 해산물에 매콤한 토마토가 베이스인 스튜요리다. 왜 1일 1개 한정인지 알 거 같다. 고기는 진공포장을 해 숙성을 하면 되지만, 해산물은 신선도가 생명이다. 매일 장을 본다고 하더니, 잡내나 비린내는 일절 없고 다 익었는데도 마치 싱싱함이 살아 있는 거 같다. 원래 전복과 새우는 2개씩 넣어준다는데, 3명이 와서 하나씩 더 넣어줬단다. "사장님 센스 짱~"
비주얼을 보면 전복, 새우, 오징어, 굴 등 내용물에 푹 빠져야 하는데, 부야베스의 씬스틸러는 국물이다. 어쩜 이리도 화이트 와인과 찰떡 궁합인지, 정말로 술술 들어간다. 전복은 내장을 제거하고 먹기좋게 자르고, 새우 역시 내장은 없고 껍질도 까져있다. 개인적으로 해산물의 내장을 좋아하지만, 부야베스의 깔끔하고 맑은 국물을 위해서는 텁텁한 내장은 제거를 해야 하나보다.
킹 사이즈 새우와 전복을 같이 먹다니 이건 호사다. 여기에 깊고 진한 국물이 더해지니 남기고 싶어도 남길 수가 없다. 정말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채끝 등심 스테이크까지 도전해 볼까 하다가, 4월 월간매거진을 마장동에서 한우를 혼내줘야 하기에 여기서 멈췄다. 봄이 오는 3월에는 어떤 메뉴가 새로 등장을 할까나. 봄나물로 만든 파스타? 뭐가 됐든 인별그램에 새로운 사진이 업로드 되면, 가파른 골목을 오르고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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