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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광화문국밥 평양냉면

뭐든지 때가 있다. 추운 겨울에는 뜨끈뜨끈한 국물이 딱인 거 같지만, 이맘때 먹어줘야 하는 찬음식이 있다. 맹물같지만 강한 육향을 품고 있는 국물에 순수한 자태를 뽐내는 메밀면 그리고 고기와 약간의 고명. 추울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평양냉면이다. 겨울 즉, 평양냉면의 계절이 돌아왔다. 정동에 있는 광화문국밥으로 출발이다.

 

8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돼지국밥을 먹고,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여름에도 냉면을 먹지만, 개인적으로 평양냉면은 겨울이 제철이다. 메밀을 수확하는 시기가 11월이니, 묵은 메밀이 아니라 햇메밀을 먹을 수 있어 여름보다는 겨울이다. 햇메밀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여름보다는 겨울에 먹어야 좋다고 누군가에게 배웠다. 다른 음식과 달리, 평양냉면은 오랜 학습을 통해서 먹게 된 음식이다. 행주 빤 물맛에서 제대로된 육수맛을 알게 되기까지는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계산을 할때 찍은 사진이라서 빈 테이블이 있지만, 처음에는 자리가 없어 줄서서 기다렸다. 인원이 많았다면 더 오래 기다렸을테지만 혼밥이고, 여기는 혼밥러를 위한 바테이블이 있다. 그래도 바쁜 점심시간인지라, 5~7분쯤 기다린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여름에 왔을때 없던 메뉴가 추가됐다. 메밀온면이라 평양냉면의 뜨거운 버전이랄까? 온면도 좋을 거 같지만, 여기 온 목적은 하나다. "평양냉면(11,500원) 물냉면으로 주세요."

 

주문을 하고, 화장실에도 다녀오고, 그렇게 한참을 더 기다렸는데도 음식은 아직이다. 돼지국밥이라면 벌써 나와서 먹고 있을텐데, 아마도 주문을 받은 후에 면을 뽑고 삶고 해서 그런 듯 싶다. 돼지국밥과 동일한 사기그릇에 평양냉면이 나왔다. 새콤한 무김치가 같이 나왔고, 돼지국밥을 먹을때 나오는 오징어젓갈과 고추마늘&쌈장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국밥에 올려 먹었던 깍두기는 냉면과 같이 먹어도 된다. 깍두기는 테이블 위 작은 항아리가 있는데 직접 덜어서 먹으면 된다.

 

삶은계란대신 계란지단이다. 초인종도 아니고, 가장 위에 있는 건 대파다. 대파의 흰부분인데, 굳이 먹을 필요는 없다. 만약 먹을 생각이라면, 처음보다는 마지막에 먹으면 좋을 거 같다. 왜냐하면 초생강처럼 텁텁한 입안을 상큼하게 만들어준다. 

 

행주 빤 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 맛을 너무나 잘 안다. 기름층은 전혀 없지만, 온전히 고기 국물이라는 걸 알고, 맑고 깔끔한 비주얼과 달리 마시면 진향 육향이 넘실댄다는 것도 안다. 

 

어느 부위인지 모르지만, 고기는 3점이 있다. 처음이라서 다 먹긴 했지만, 다음에 가면 먹지 않을 예정이다. 색이 진할수록 고기향은 더 강하다. 그래서 강한 맛을 잡기 위해 고기를 먹자마자 깍두기를 엄청 먹어야만 했다. 국물은 좋은데, 평양냉면 속 고기 고명은 여전히 힘들다.

 

고기를 걷어내면, 백김치와 무절임이 나온다. 동치미라고 해도 될 거 같지만 정확하지 않으니, 암튼 냉면 먹을때 나오는 그 무절임과 비슷하다. 

 

햇메밀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너무 바빠 보여서 묻지 못했다. 알려줘도 묵은과 햇을 구분하지 못할테니 그냥 햇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때깔 참 좋다. 사진을 빨리 찍어야지 이건 고문이다.

 

평양냉면 그 시작은 육수부터 흡입

면을 풀기 전 육수부터 마신다. 그 전에 육수 추가가 되냐고 물어보니 된단다. 안심하고 꽤 많은 양의 육수를 들이 마셨다. 면을 풀기 전이라 육수가 품고 있는 짠맛과 함께 육향이 고스란히 입 안으로 들어온다. 찬 육수이다보니, 으스스 몸은 떨리지만 그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다. 

 

맘껏 국물을 마셨고, 리필로 추가까지 했으니 이제는 면을 풀 차례다. 젓가락으로 뭉쳐있는 면을 살살 흔들어주면 스르륵 면이 풀린다. 자~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나.

 

절대 요렇게 먹지 않는다. 그저 촬영을 위한 연출일 뿐이다. 평양냉면은 입 안 가득 면을 먹고 난 후에 까끌까끌한 면의 감촉을 느껴야 하니 국물없니 면만을 먹는다. 마치 보리밥처럼 메밀면이 입안에서 제각각 돌아댕긴다. 면을 제대로 씹기 보다는 후루룩 넘기기 바쁜데, 메밀면은 오래 씹어줘야 좋다. 그래야 식감에 이어 메밀의 구수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입만~을 해야할 이유가 없으니, 적당히 먹는다. 면만을 맛봤다면, 이번에는 면 더하기 육수를 같이 먹는다. 합치면 정이 된다더니, 각기 다른 개성이 합쳐져 진하고 풍요롭고 아니 좋을 수 없다. 면을 풀기 전에는 짠맛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적당하게 짭조름하다. 누가 메일 90% 아니랄까봐, 무심할 정도가 아니라 손대면 톡하고 터지듯 툭하고 끊어진다. 

 

고기 맛이 너무 강해 요견 별로

테이블 위에는 돼지국밥용 새우젓과 후추만 있을뿐 식초나 겨자는 없다. 필요하다면 말을 해야할 거 같은데, 평양냉면을 먹을때에는 더하지 않고 그냥 먹는 편이라서 따로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가위도 나오지 않았다. 평양냉면을 먹을때, 불필요한 도구는 없어도 된다.

 

드디어 평양냉면의 계절이 돌아왔다. 굴짬뽕과 더불어 온탕과 냉탕을 왔다갔다 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연중행사로 가는 안동장을 아직 못갔다. 다음에는 힙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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