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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유럽에 이런 나라가 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영토의 크기가 서울의 1/4 정도인,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국가다. 가문의 성을 국가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는 리히텐슈타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왕가의 보물이 전시 중이다. 우리 보물을 봤으니, 다른 나라 보물을 볼 차례다.


리히텐슈타인은 유럽의 입헌군주국이자 공국으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있는 국가다. 유럽의 수많은 왕가사이에서 900년 동안 가문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이날 처음 알았다는 사실에 살짝 부끄부끄.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은 왕실컬렉션을 통해 가문의 기원을 보여주는 문헌자료와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 화려한 생활용품과 바로크 시대의 수준 높은 미술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월 10일까지 한다.


카를 1세 대공의 초상. 빈 근방 귀족 가문에서 시작된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1608년 카를 1세(1569~1627)가 대공 지위에 오름으로서 기반을 다졌다. 이에 셸런베르크와 파두츠 지역을 구입해 신성로마제국 황실의 연방국가로 인정받았고, 라인 동맹, 독일연방 등을 거쳐 완전한 독립국가로 나아가게 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대공들을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작지만 부강한 나라로 성장하였다고 리플렛에 나와 있다.


왕들의 초상화. 굳이 이름까지 자세히 알 필요는 없을 듯.

면에 선을 새긴 갑옷으로 오스트리아 제벤슈타인 성의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양식에 따라 조화로운 비례로 제작되었고, 가슴가리개와 넓적다리 가리개 등 갑옷을 구성하는 각 부분은 못이나 끈을 사용해 연결했다. 표면에 세로로 주름선을 넣었는데, 이는 1500년대 초반에 유행한 양식으로 보인다고 한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영화에서 많이 본 거 같다.


아슈페른-에슬링 전투에서의 카를 대공과 요한 1세 대공. 1802년 작품.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귀족에서 왕가로 승격되었던 절대주의 시대에는 통치자를 인간이 아닌 신의 모습으로 여겼다. 이에 따라 대공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널리 알리고자 했고, 보통사람들과 구별되는 품격있고 화려한 생활을 추구했다고 한다. 


새장과 시계가 있는 샹들리에로 밑면에는 시계가, 내부에는 새 장식이 있다. 새 장식은 기계장치로 만들어져, 고개를 흔들고 15분마다 지저귄다. 


1625년 피렌체에서 제작한 피에트라 두라 기법의 모자이크 17개를 사용해 만든 캐비닛이다. 내부는 삼단으로 나누어 서랍을 만들고, 앞면에 색이 있는 돌을 맞춰 문양을 만드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의 모자이크를 붙였으며, 그 둘레에는 섬세하게 조각한 상아 패널을 장식했다. 딱 봐도, 호화로움이 겁나게 느껴진다. 


왼쪽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가 오스트리아 동북부 영주들에게 하사한 연회용 제복이다. 황실 공식 행사 때 예복으로 착용했으며, 요한 1세 대공의 의복으로 보인다고 한다. 오른쪽은 리헨슈타인 왕가의 남성 복식으로 프랑스풍의 연미복이다. 요제프 2세 황제의 통치기에 남자들의 공식 행사용 군복이었으나, 군 계급이 없을 때에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의상에 기반한 프랑스풍 의상을 입었다. 가구에 이어 의복도 화려함이 철철 넘쳐흐른다.


요한 1세 대공의 초상

알로이스 왕자비 하나의 초상

카롤리네 대공비의 초상

수도는 파두츠, 언어는 독일어, 종교는 로마 카톨릭이다. 11개 자치구로 구성되었고, 인구는 약38,000명이다. 리히텐슈타인 공국은 남북 25km, 동서 6km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지만, 유럽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국제적인 경제,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유럽의 왕실 중 가장 부유하고, 국민 1인당 GDP 또한 세계최고수준이다. 처음 알게 된 나라인데, 사진이 아니라 직접 가보고 싶다.


석궁과 크레인퀸

사냥으로 잡은 동물을 해체할 때 사용한 도구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전원 지대에 사냥터를 소유했으며, 이곳에서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이들에게 사냥은 취미이자 운동이었고 전쟁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승마와 사냥은 평민과 다른 신분을 보여주는 상징적 활동이었기 때문에 그를 위한 도구는 화려한 세공으로 장식되었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 (두번째 작품)

화가와 그 가족의 초상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여러 세기 동안 예술가의 작품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미술품을 구입함으로써 개인 컬렉션 가운데 최고 수준의 예술품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과 바느질, 글쓰기 등에 필요한 물품을 담았던 여행용 상자로, 귀족 여성을 위해 제작된 사치품이다. 상자 뚜껑은 빈의 풍경을 그린 회화 작품으로 장식했고, 금속과 자개 판을 둘러 꾸몄다. 이러한 상자는 실용적인 물품을 담을 수 있어 선물로 인기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았고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세련된 예술적 취향을 반영하려는 의도가 강했다고 한다. 여행용 상자라지만, 넘나 고급져서 막 들고 다니지는 못할 거 같다. 


에우로페의 납치는 황소의 모습을 한 제우스가 에우로페에게 반해 그녀를 납치하는 장면을 평화로운 모습으로 표현한 도자기이다. 엄청 고급져 보이는데, 디저트 코스용 식탁 장식물의 일부였다고 한다. 


사비니 여인의 납치가 새겨진 화려한 잔이다. 상아를 조각해 만든 잔으로, 당대 최고의 예술가인 마티아스 라우호밀러의 서명이 남아 있다. 로마 건국 초기 군인들이 행한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사건을 극적으로 구성해 군인들과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여인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뚜껑에는 사랑의 신 큐피드가 전쟁의 신 마르스를 물리치는 장면을 조각해 이야기의 결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1676년 작품인데, 제목처럼 화려함의 끝판왕이다. 


사냥한 수사슴 뿔로 만든 벽걸이 장식이다. 고대에는 사냥으로 얻은 사슴뿔을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고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도 했으나, 중세 시대에는 물건을 만들거나 꾸미기 위한 실용적인 재료로 사용했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도 사냥감의 뿔이나 가죽으로 만든 장식을 사용해 궁전의 실내를 꾸몄다고 한다.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국은 대공이 다스리는 나라다. 대공은 황제 또는 왕에게 통치권을 인정받아 독립적인 영토를 다스리며 왕위 계승권이 있는 군주를 의미한다. 왕가의 미술품 수집은 1대 대공인 카를 1세부터 시작되었고,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 대공대에 미술품 수집을 위한 지침이 마련된 후 적극적인 수집 정책을 유지해 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93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북한은 2001년에 수교를 했다.(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나라 이름은 외우기 힘들지만, 유럽에 가게 된다면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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