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정 서울미술관 안봐도 사는데 지장없는 전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에게 안봐도 사는데 지장없는 전시라고 하니 더더욱 보고 싶다. 타이틀 그대로 안봐도 사는데 지장은 없을 거 같은데, 봤으니 조금은 달라진 듯 싶다. 반복되고 무의미한 나의 일상도 예술이 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부암동에 있는 석파동 서울미술관이다.
어제 포스팅한 석파정이 미술전보다 백만배 더 좋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아니 볼 수 없다. 안봐도 사는데 지장없는 전시, 청개구리를 유혹하기에는 겁나 달콤하다. 고로 덥썩 물어버렸다.
"몰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어 보이는 예술이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 이 전시를 통해 반복적이고 무의미했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예술적 심상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즉, 안봐도 사는데 지장없는 전시가 아니라, 안보면 사는데 지장을 주는 전시라는 의미다. 본 전시는 하루 24시간 동안 무의미하게 스쳐지나가는 순간들을 아침, 낮, 저녁 그리고 새벽순으로 담아냈다. 전체적으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미알못임에도 재미나게 즐겼다.
7:15. 오정우 작가의 모닝시리즈 중 오르세 미술관. 작가는 최소한의 단서와 흑백처리의 구성을 통해 우리의 지나간 시간과 공간을 이야기 한다. 자세한 안내문이 나와 있지만, 개인적은 느낌은 반영이 참 좋다. 그리고 저곳에 가고 싶구나.
7:30. 황선태. 노을이 내리쬐는 계단.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을때, 카메라 플래시(가 없기도 하지만) 보다는 자연광을 더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햇살이 사선으로 내리쬐는 아침과 해질녘을 가장 좋아한다. 작가는 여러 층의 스크린 위에 드로잉과 LED 빛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11:00. 작가 노연이. 혼밥과 혼술을 즐겨하는 나를 위한 작품같았다. 작품에 대한 안내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혼자 있는게 편해요." 시대를 잘 반영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공감이 많이 됐던 작품이다.
12:10. 작가 문제이. 다양한 군중들 속에서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인물들을 포착해 만든 'Alone Buddy' 혼자 있는 건 맞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SNS를 통해 타인과 소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인간은 혼자이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뭐 이런 심오한 뜻을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혼밥을 즐겨하지만, 솔직히 혼자보다는 여럿이 먹어야 더 맛있긴 하다.
14:00. 마운틴 스튜디오. 폴로렌스는 주인공인 폴로렌스와 공원에서 연주하는 첼리스트 크리시와의 야이기이다. 그 둘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데이트부터 첫번째 다툼, 함께 살며 서로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타협하는 어색한 일까지 단순한 미니 게임들로 진행이 된다고 한다. 메마른 연애 세포에 자극을 줄 거 같아, 후다닥 이동했다.
21:35. 김태연. 남겨진 비닐봉지를 실로 만들어, 한 올 한 올 엮어 만든 작품이다. 비닐봉지는 일회성의 특징을 지녔지만, 영원히 처리되지 못한 채, 쓰레기로 남는다.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독특한 작품이구나 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소재가 비닐이다. 일회용이라 쓰고, 영원용이라 불러야 하는 비닐, 플라스틱.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은 무서움, 공포심.
24:00. 이영은. 작가는 나와 타인의 자아가 소통하고 동시에 경계 짓는 요소를 옷가지로 이야기 하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영화를 보지만, 극장은 딱 거기까지다. 두시간이 넘도록 앉아있지만, 옆에 어떤 사람이 앉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아니 애당초 관심조차 없다. 극장은 영화를 보겠다는 목적으로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04:30. 채우승. 안내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휘날리던 천들이 무심한 듯 벽에 걸려있습니다." 아~ 천이구나. "채우승 작가는 공간에 어우러진 백색 천 자락을 통해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단지 찰나의 순간에 스며든 대상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인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계단에 나와 있는 다양한 시간들. 개인적으로 11:11과 10:28을 좋아한다. 앞은 그저 단순하게 1이 4개라서, 뒤는 10시 28분이라 쓰고, 10월 28일이라 불러야 하니깐. 제2, 제3 전시실은 인상 깊었던 작품들 위주로, 메인이 아니니깐.
통영의 내항에서 남망산 오르는 흙길을 그린 길은 이중섭의 몇 안되는 풍경화 가운데 하나로, 단순한 사생의 수준을 넘어 뛰어난 구성과 조형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라고 한다. 맑고 푸른 바다를 가로질러, 해안을 따라 즐비한 양옥집들의 중경이 한 눈에 담기도록 구성되었다. 바다-육지-나무-마을-길의 시각적 전개로 이동되는 이 작품은, 다른 풍경화에 비해 가장 탄탄한 구성적 짜임새를 보인다고, 안내문에 나와 있다.
여름에 갈만한 곳으로 역시 미술관이 딱이다. 붐비지 않으니 작품 하나하나 공들여서 보고 또 봤다. 게다가 전시회가 까다롭지 않으니, 공감에 재미까지 있다. 8월 한달은 폭염이라고 하니, 미술관 나들이나 계속 해야겠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이라고 해서 서울시가 소유한 거 같지만, 개인소유라고 한다. 경복궁 관람료는 3,000원, 석파정은 5,000원. 고궁보다 별장이 더 비싼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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