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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있는 영화는 언제나 원작보다 재미가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소설의 모든 내용을 다 담을 수 없기에, 불필요하거나 진부한 내용은 가위질을 당하게 된다. 소설은 글로 모든 걸 표현해야 하기에, 내용이 길어질 수 밖에 없지만, 영화는 영상이니 구차한 설명보다는 장면으로 보여주면 끝이다. 주인공이 공포에 사로잡혀, 온 몸에 소름이 돋고, 팔다리가 엄청 떨린다라는 묘사는 그저 공포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주면 된다. 호텔은 바로크 시대 건축 양식으로 가구는 어떻고, 침대는 어떻고, 화장실은 어떻다라는 묘사는 배경영상으로 활용해 주인공이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 보여주면 된다. 


모티브만 비슷할 뿐 소설과 영화가 전혀 다른 내용이 될 수도 있으며, 결론까지 달라질 수 있다. 원작을 100% 똑같이 만드는 영화는 아마 없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볼때, 원작을 먼저 읽었다면 안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비트레이얼은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참 좋겠다. 스토리는 달라질테지만, 소설 속 배경이 되는 모로코의 멋진 풍경들은 다 담아낼 거 같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답답했던 적은 없었다.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작가가 너무 난해한 표현을 써서, 절대 아니다. 모로코, 카사블랑카, 에사우이라, 사하라사막, 와르자자트, 타타, 마라케시 등 책만 읽고 어떤 곳인지 떠올리기에는 내 상상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림책처럼 중간중간 사진이 있었으면 했다. 결국 책에 나오는 지역들을 검색해 사진을 보면서 읽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더글라스 케네디라는 작가를 좋아한다. 디테일한 인물 및 배경 묘사로 인해, 글을 읽고 있지만 영상이 보이는 듯한 착각을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그만큼 참 디테일했다. 그런데 비트레이얼은 혼자서 상상으로 만든 영상이 아니라, 이런 모습이라고 사진으로 딱 보여줬으면 했다. 


모로코하면 영화 카사블랑카와 가끔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게 전부인 나라다. 사막도 있고, 눈 덮인 산도 있는 개인적으로 죽기 전에 꼭 가고싶은 나라다. 그런 나라를 소재로한 소설이 나왔으니 아니 볼 수 없는 법.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막연히 동경했던 모로코가 엄청난 더위와 불안정한 치안 그리고 허름한 호텔 및 에어컨이 안 나오는 더러운 버스 등 노골적으로 민낯을 보여주는 바람에 거북했다. 원래 이런 곳인데, 그동안 과대포장만 봤던 것일까? 이러면서 모로코에 대한 동경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소설 후반부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사하라 사막에서 고립된 로빈(여주인공)을 보면서, 모로코란 나라가 아직은 위험한 곳이구나(모로코에 가려면 한참이나 남았을텐데, 미리 겁부터 먹었다)했다.



화가인 폴(남자주인공)과 회계사인 로빈(여자주인공), 둘은 부부다. 초반 그들에 대한 인물묘사가 좀 길게 나오지만, 암튼 그들은 모로코로 떠난다. 하루이틀이 아닌 3주동안 모로코 에사우이라에서 폴은 그림을 그리고, 로빈은 프랑스어를 배운다. 남편은 화가이니 이해하지만, 모로코까지 가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로빈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바로 가치관의 차이인가? 나라면 여기저기 쉬지 않고 돌아다닐텐데, 로빈은 그저 에사우이라에 있는 호텔과 주변 카페 그리고 바닷가 산책이 전부다. 


【에사우이라에서 보낸 2주는 마치 마법의 시간 같았다. 폴은 창작 리듬이 최고조에 올라 하루 여섯시간 씩 그림에 몰두했다. 폴은 에사우이라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서부터 수크의 심장부에 있는 카페 테이블을 오가며 그림을 그렸다. 폴은 에사우이라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중간생략)

내가 프랑스어를 익히는데 열중하는 주된 이유는 성취감때문이었다. 모로코에서의 시간을 보람있게 쓰고 싶었다. 폴이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해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프랑스어를 배우는데 더욱 매진했다. 폴이 내 프랑스어 실력이 나날이 향상되는 것 같다면 칭찬했다. 나는 폴이 그림에 몰두하는 자세에 크게 감명받았다. 어느새 에사우이라가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오래된 도시의 미로 같은 골목들을 파악했고, 어디에서든 헤매지 않고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본문중에서)】


달콤했던 여행은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인해 미스터리 어드벤처가 된다. 그동안 잔잔했다면, 이제는 스펙터클이다. 폴이 사라졌고, 로빈은 남편을 죽인(경찰은 죽였다고 생각함)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제부터 로빈의 엄청난 모험기가 시작된다. 엄마찾아 삼만리가 아니라 남편찾아 모로코 곳곳을 다니게 된다. 그동안 전혀 몰랐던 남편의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되면서, 왜 폴이 그렇게 모로코로 오자고 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된다. 


남편에게 기만과 배신을 당했지만, 그녀는 남편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남편을 위해서, 아니다. 그녀 자신을 위해서다. 예전에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자책감때문이다. 폴을 처음 봤을때 로빈의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폴과 니 아버지는 참 많이 닮았다. 그때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지금 그녀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소설 후반부 로빈이 당한 불미스러운 사건부터 결말까지, 미스터리 어드벤처는 판타지 동화로 순간이동을 하게 된다. 소설이 허구라고 하지만,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다. 사막에서 어린왕자를 만난 비행사처럼 로빈도 어린공주를 만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삶을 살게 된다. 


우리나라나 모로코나 미국이나 정부에서 하는 일은 다 비슷한 거 같다. 자기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일은 감춘채, 그저 좋은 말만 하니 말이다. 그걸 로빈은 받아들이고 미국 영사관은 잘했다고 칭찬을 한다.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폴의 행방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소설처럼 열린결말로 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버킷리스트에 있는 모로코 여행은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만약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보고나서 결정을 해야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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