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검색)
모리사와 아키오를 감성작가라고 하기에, 여성작가인 줄 알았다. 검색을 해보니 남성작가란다. 거기에 더욱 놀라운 사실은 조그맣게 나와 있는 작가 사진을 보니, 감성과는 담을 쌓고 살았을 거 같은 얼굴이다.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나 보다. 그나마 다행이다. 작가 얼굴을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봤으니깐.
나쓰미의 반딧불이 부제 우리가 함께한 여름날의 추억. 그냥 일본의 여름이야기 또는 잔잔하고 재미없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느낌은 확신이 됐고, 한동안 가방에서 짐으로만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반납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야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4시간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수북이 쌓인 휴지를 치우면서, 감성작가라고 말할 이유를 제대로 알게됐다.
저자소개에서 모리사와 아키오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설정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유쾌한 필체로 풀어낸다고 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촉촉한 감성비를 내리게 만드는 마법사라고 말이다.
어릴때 톰소여의 모험, 구니스, 인디아니존스를 읽고 보면서, 그들처럼 멋진 모험을 하고 싶었다. 선택받은 자가 되어 악당도 물리치고, 멋진 보물도 찾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는 뭐 그딴 꿈과 공상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죽지 않고 살기위해 꿈과 공상은 그저 배부른 소리가 됐다. 감정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려야 했고, 숫자(돈)만 밝히는 어린왕자 속 어른이 되고 말았다.
나쓰미의 반딧불이를 보고서야, 다시한번 나에게도 촉촉한 감성이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왜 나에게는 나쓰미와 싱고같은 여름날의 추억이 없을까? 아니면 쓸모없는 기억들때문에 정작 가슴 속에 깊이 담아둬야 하는 기억은 빙봉(인사이드아웃에서 주인공의 상상친구)처럼 내 스스로 지워버린 게 아닐까? 사라져버린 기억을 다시 재생시키는 것보다는 나쓰미와 싱고에게 부탁을 하고 싶다. 너희들의 추억 나에게도 나눠달라고 말이다.
나쓰미의 반딧불이 주요인물은 5명이다. 우선 주인공인 나쓰미와 싱고는 커플이다. 그들에게 멋진 여름날의 추억을 선물한 야스할머니와 지장할아버지는 모자사이다. 나오는 분량은 적지만 처음과 시작을 담당하고 있으며 마지막에 멋진 한방을 날리는 인물 운게쓰다.
사진학과에 다니는 싱고는 졸업작품을 만들기 위해 유치원 선생인 나쓰미와 멋진 촬영지를 찾아 다닌다. 어느날 화장실이 급한 나쓰미가 다케야라는 작은 가게에 우연히 드르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라고 했던가? 다케야에서 만난 야스할머니와 지장할아버지의 양해로 별채를 쓸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의 여름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눈앞으로 둥실둥실 날아온 반딧불이를 살짝 잡았다. 감싸쥔 양손의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초록빛이 새어 나온다. 손을 조금 벌리고 자세히 보니 몸길이가 1,5센티 정도 되는 종이었다. 맑은 물가에서만 자라는 귀중한 반딧불이다.
"나쓰미 초롱꽃에 넣어보자."
"응."
나는 나쓰미가 들고 있는 초롱꽃의 하얀 꽃잎 속으로 반딧불이를 조심스레 넣어보았다. 다음 순간, 우리 입에서 "하아!"하는 감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저 황홀했다. 하얀 꽃잎 속에서 반딧불이가 반짝이면 꽃잎 자체가 환상적인 초록빛을 발하는 듯 보였다.
"왠지, 요정들이 사용하는 등불같아…." (본문중에서)』
반딧불이를 시작으로 그들의 여름날은 그저 하루하루가 소중할만큼 황홀했다. 지장할아버지로부터 다양한 낚시법을 배우고, 잡은 물고기는 야스할머니가 맛난 요리로 만들어주었다. 새우, 게, 장어, 미꾸라지, 황어, 잉어에 붕어까지 여러 장에 걸쳐서 나오는 낚시와 음식이야기에서 내 침샘은 그저 무한대로 폭발하고야 말았다. 묘사를 어쩜 이리도 디테일하게 했는지, 흡사 내가 낚시를 하고 있는 듯 싶었고, 야쓰할머니가 만드는 음식도 내가 만들 수 있을거 같았기 때문이다.
작은 시골마을 가게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지장할아버지와 야스할머니는 싱고와 나쓰미로 인해 웃음을 되찾았고, 싱고와 나쓰미는 지장할아버지와 야스할머니로 인해 소중한 추억을 만들게 됐다. 넷은 여름이 끝나지 않기를 원했지만, 여름은 가고 가을이 찾아왔다.
싱고와 나쓰미가 다케야에서 떠나는 날, 지장할아버지가 쓰러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지장할아버지의 과거이야기 그리고 그 과거와 현재의 만남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예전에 너무 눈물이 나서 다음 장을 넘기지 못했던 책이 있었다. 조창인의 가시고기다. 앞으로는 한 권을 더 추가해야 할 거 같다. 바로 이 책이다. 나도 싱고와 나쓰미처럼 지장할아버지와 야스할머니를 바라보면서 그저 울 수 밖에 없었다. 이거 이렇게 사람을 울리면 반칙이잖아 하면서 참으려고 헛기침을 했지만, 결국 펑펑 울고야 말았다.
『"어릴때 어머니가 종종 이런 말을 해 준 기억이 있단다. 게조(지장할아버지 이름), 엄마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라고. 외동인 데다 아버지가 없어서 어린 마음에 외로웠지만, 그래도 매일 밤 이불 속에 들어갈 때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면서 이마를 쓰다듬어 주시면 왜 그런지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잠도 잘 왔던 거 같아. 나때문에 어머니가 고생한다는 걸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었거든. 마음 한구석에 늘 죄책감이 있었지….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어머니가 매일 밤 그렇게 말해줬기 때문인것 같단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정말로 후회하는 건……, 아내랑 헤어진 일이 아니라…. 내 아들에게 어머니가 해 준 말을 똑같이 해 주지 못했다는 거……."
할아버지는 그래서 사진 뒷면에 적어두고 싶었던 걸까? 이 세글자에는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본문중에서)』
고마워라는 세글자에 너무나 많은게 담겨 있다는 걸 알았다. 나도 야스할머니같은 엄마가…….
"인간은 무엇과 무엇을 비교할 때 늘 착각을 일으킨대. 그러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선 안 된다고." 지장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타인과 비교하면 내게 부족한 것만 보여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거 같다. 내가 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마지막 인물인 운게쓰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생략하기로 했다. 모리사와 아키오의 다른 작품 무지개 곶의 찻집, 쓰가루 백년 식당, 여섯 잔의 칵테일 등도 기회가 된다면 다 읽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 작가는 오쿠다 히데오, 히가시노 게이고다. 그리고 한명 더 추가를 해야겠다. 그런데 세명 다 각기 다른 캐릭터라서 겹치지 않아서 좋다. 오쿠다 히데오는 엽기, 발랄.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스터리, 스릴러. 모리사와 아키오는 감성, 눈물. 안구 건조가 심하다면, 눈물을 흘리고 싶다면, 나쓰미의 반딧불이가 어떨까? 가시고기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면, 분명 또 눈물을 흘릴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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