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고, 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이 나왔던 영화 루시가 생각났다. 뤽베송과 스칼렛 요한슨 그리고 최민식 등 감독과 배우 이름만으로도 후덜덜하지만, 솔직히 이름보다는 스토리가 더 강하게 와닿았던 영화였다. 인간의 평균 뇌사용량은 10%다. 그런데 100%를 사용하게 된다면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 영화 루시는 이렇게 끝이 난다. 뇌를 100%까지 사용하게 되자,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기기로 변해버렸다.
아마 이렇게 끝이 났던 거 같다.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뇌가 이렇게나 대단한가? 인류문명부터 아니 지구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시공간을 무시하고 볼 수 있으면, 시간을 멈출 수도 있는 그동안 초능력으로만 여겼던 모든 것들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도 있구나 했다. 알파고로 인해 인공지능 로봇인 터미네이터가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굳이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인간의 뇌를 100%까지 사용하게 되면 터미네이터보다 더 월등한 존재가 될 수 있는데 말이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라플라스(1749~1827)는 '만일 우주의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해명하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 '어느 순간 모든 물질에 있어서의 역학적인 데이터를 알고 그것을 순식간에 해석할 수 있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불확실한 것은 없어져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주로 근대의 물리학 분야에서 미래의 결정성을 논할때에 가상하는 초월적 존재의 개념이라고 한다. 후에 이 존재에게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수학, 물리학, 철학, 문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이론이다. 라플라스의 마녀에서는 뉴턴의 운동방정식과 난류와의 연계 선상에서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라는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도 차용하고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30주년 기념작이자 80번째 작품인 라플라스의 마녀는 과학과 미스터리의 만남이다. 위의 글처럼 여러번 읽어야 그나마 아주 살짝 이해가 되는 암튼 난해한 과학을 미스터리 소설에 접목시켰다. 즉, 영화 루시의 스칼렛 요한슨이 라플라스의 마녀에서도 나온다는 것이다. 영화는 약물이 원인, 소설은 뇌수술이 원인.
미스터리 소설답게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스포일러이다. 한장씩 한장씩 읽어 나가야만 사건의 내막이, 그들의 존재가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마도카라는 소녀가 있다. 토네이도의 공격으로 그 자리에서 엄마는 죽고 그녀만 살아 남았다. 그리고 8년 후 마도카의 경호를 맡게 된 다케오는 그녀에게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런데 자살인지, 사고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황화수소 중독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밝히려는 경찰, 사건의 진실이 궁금한 지구과학 교수 그리고 마도카의 가출과 그녀가 찾고 있는 한 인물, 그 인물에 대한 엄청난 진실까지... 더이상 밝히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여기까지.
마도카의 이야기를 했다가, 지구과학 교수 이야기를 했다가, 마도카가 찾고 있는 의문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가, 전혀 상관없을 거 같은 새로운 이야기를 했다가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일반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밝히려는 자의 시점과 살인자의 시점으로 진행될텐데, 라플라스의 마녀는 좀 다르다. 헷갈릴 정도로 너무나 많은 시점이 나오지만, 시냇물이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듯, 하나의 굵은 시점으로 몰아간다. 점점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뇌수술에 대한 엄청난 비밀도 알 수 있게 된다.
『이윽고 그녀의 발치에서 흰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게다가 그 연기는 주위로 퍼지는 게 아니라 아래쪽으로 흘러 내려왔다. 흠칫했다. 그 연기가 무엇인지는 금세 알았다. 드라이아이스에 의한 스모크다. 아마 마도카가 물을 넣은 용기에 드라이아이스를 던져 넣은 모양이었다. (중간생략) 마침내 스모크는 아오에의 발치에 도달했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직후였다. 스모크는 그가 있는 지점을 통과하는 일 없이 그 자리에 고이기 시작했다. 흰 연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아오에의 온몸을 휘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 (분문중에서)』
영화 루시처럼, 소설 라플라스의 마녀처럼 인간의 능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정말 뇌를 100%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공지능 로봇은 필요없겠지. 알파고도 터미네이터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는 미스터리 소설을 넘어선 작품이다. 나에 대해, 우리에 대해,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느낌을 들게 만들어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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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형님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인간이 미래를 예측해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범죄자는 잡는다는 내용의 영화다.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으면서 가장 생각이 많이 났던 영화다. 그런데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미래를 예측한다면, 알파고가 바둑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듯 싶다.
지난 주말부터 정주행을 하고 있는 미드, Person Of Interest. "당신은 감시 당하고 있다. 정부는 은밀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 기계가 매일 매 시간마다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원래는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보게 됐다. 보통 사람들이 관여된 범죄까지도 보게 됐다." 이렇게 시작되는 미드다. 미드인데, 미드같지 않고, 드라마인데, 드라마같지 않다.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 거 같아, 놀랍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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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미드 이야기 하시니 "크리미널 마인드" 받아 놓고
아직 '다 못보고있네요 아들보고 좀 받아 놓으라 했거든요 ㅎㅎ
어고, 대학교 때 엄청 골아파했던 라플라스군요. ㅎㅎ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탁월한 이야기꾼 같습니다.
미드 재밌겠네요. 요즘 넷플릭스 가입을 할까 말까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루시 저도 봤었는데 인간의 능력이라...
요즘 인공지능에 대한 이슈가 핫하다보니 내용이 흥미롭네요.
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읽고 감명 깊었었는데 이 책도 궁금해지네요 ^ ^
책도 부지런히 많이 읽으시는 양파님이시네요^^
저는 당분간,, 그냥 미드나 조금 더 챙겨서 보려구요
요즘 일이 바쁜 것도 아닌것 같은데 항상 시간에 쫒기는 이상한 상황,,,ㅡ.ㅡ;
요즘 사진을 하도 막 찍어대서,,, 그것들 정리하는데 은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것 같아요
조금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ㅎㅎㅎ
덕분에 좋은 포스팅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오후 되세요^^
좋은 소설책 추천 보고 갑니다.
우리 인간의 두뇌를 이용해서 새로운 한 인간의 형태를 만든다는 착상 자체가 어쩜 무섭고 도전적이며 혁신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왠지 사회가 로봇화 되어 가는 분위기라는 느낌이네요. 리뷰글잘 봤습니다. 아주 곰곰히 생각을 잘 정리해 주셨네요.
신기한 능력에관한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거같아요! ㅋ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주 들어본 작가인데 책은 읽어보지 못했죠. 이거는 재미있을거같아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잠재적 기능까지
사실 놀라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 정보라서 사 보고 싶어요.
미드 재미있어 보이는데 테러방지법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섬뜩할 것 같네요.
저야 일본에 있으니 털릴 것도 별로 없지만 말이죠. ^^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