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그림 좀 그려보겠다고, <연필 일러스트 그리기>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결과는 내 손은 꽝손이며, 그림 그리는 재주는 어쩜 이리도 없는지, 다시한번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2년 후 이번에는 그림이 아니라, 글씨에 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천재도 아니면서, 천재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엄청난 악필의 소유자, 바로 나다.
그때는 손그림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손글씨가 유행인가 보다. 서점에 갔는데, 떡하니 캘리그라피 코너가 있다. 휙 지나쳤으면 그만일텐데, 나도 모르게 멈췄다. '나 엄청난 악필인데, 이거 고칠 수 있을까?'
손글씨 고민도 아직 안끝났는데, 어느새 내 시선은 컬러링 북에 꽂혔다. '손그림은 안되지만, 색칠은 좀 할 거 같은데...'
하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건, 책보다는 색연필이다. 어릴때 부잣집 아이들만 들고다녔던 다양한 색상의 색연필, 나는 고작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몇개 안되는 색연필에 만족해야 했었다. 그 추억때문에 색연필을 들었다가 놨다가 한참을 고민했지만, 원래 자리에 두고 옆으로 이동했다. '이번에 악필을 고치지 못한다면, 그때 너랑 놀아줄게.'
이렇게 다양한 캘리그라피 책이 있는지 몰랐다. 글씨라기 보다는 아트로 생각했던 나에게, 쉽게 배울 수 있는 책이 있었다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데, 어느새 현혹되어 버렸고, 또 어느새 어느 책을 살까요 이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근데 봐도봐도 참 예쁘다. 나만 알아보는 내 글씨랑은 차원이 완전 다르다. 나도 이럴 수 있을까? 정말 가지고 싶다. 예쁜 손글씨!!
많고 많은 책 중에서 나의 선택은, <손글씨 나혼자 조금씩>이다. 우선 제목이 너무 맘에 들었다. 이 책이 나에게 하는 말인 거 같아서다. 그래 나혼자 조금씩 하다보면 악필이 나아질 수 있겠지. 그럴 수 있겠지.
이제는 환불이 안된다. 비닐을 뜯어냈기 때문이다. 낙장불입이 됐으니, 싫어도 해야 한다.
【행복이란 건,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뿐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키보드로 치고 있지만, 담에는 예쁘게 손글씨로 써서 사진 찍어 올려야지.
연필, 색연필, 플러스펜, 만년필, 지그펜 그리고 붓펜까지 도구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주나보다. 현재의 나는 어떤 펜을 써도, 똑같은 악필인데...
손글씨 나혼자 조금씩은 베껴 쓰는 책이 아니라, 써보는 책이란다. 똑같이 흉내내지 말고, 포인트를 활용해 쓰면 된단다. 그리고 나는 왜 안되지하고 비교하거나 조급해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럼 스트레스를 받을테니, 흉내내지 말고 나만의 글씨를 쓰면 된단다. 참 작은 책 한권이 날 위로해주는 거 같다. 첨부터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하다보면 좋아질거야, 이렇게 말해주는 거 같다.
드디어 나왔다. 첫술에 배부르면 안되니, 손풀기부터 하란다. 라일락과 봄날이 'ㄹ'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이거 왠지 느낌이 좋다. 조금씩 나혼자 천천히 하다보면, 악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다.
이정도까지 왔다면, 중급반정도 될 듯. 좋은 글을 보면서 글씨를 쓰다보면, 지루할 틈도 없이 어느새 쑥쑥 성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겠지. 제발 여기까지만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마지막 페이지다. 아직은 엄두가 안나지만, 나혼자 조금씩 하다보면, 지금은 엄두가 안나지만, 그때는 이정도쯤이야~ 이런 나를 발견할 수 있겠지.
문자를 보내거나, 메일을 보내거나, 손글씨를 쓸 일이 없다. 하지만 가끔 손글씨를 써야할때는 참 난감하다. 그럴때마다 "헤헤 그거 아시죠. 천재는 악필이에요." 이렇게 말을 하거나, "나 엄청난 악필인데..."이러면서 누군가에게 대신 글을 써달라고 하던가, 아니면 글인지 글씨인지 참 애매하게 글을 쓴다. 어릴때 서예학원도 다녔고, 학교 다닐때 글씨 공부도 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나도 참 모르겠다. 이눔의 고질병이 나아질지 모르지만, 암튼 손글씨 나혼자 조금씩 해야겠다. 미래의 어느날, 어느 모임 또는 여행지에서 방명록을 작성할때 당당하게 자신있게 글씨를 쓰고 있는 나를 찾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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